"봄바람은 큰집으로만 분다"…자금·인력난에 말라가는 중형 조선사

중형 선박 수주 늘었지만 수익성 낮아…HJ·대선 등 상반기 적자
정부 요청에도 금융업계 지급보증 꺼려…고질적 인력난도 발목

HJ중공업 영도조선소 전경(자료사진. HJ중공업 제공).

(서울=뉴스1) 박종홍 기자 = 국내 조선업계가 슈퍼사이클을 맞았다지만 중형 조선사들은 고전하고 있다. 대형 업체들과 달리 상대적으로 부가가치가 낮은 선박을 놓고 중국과 가격 경쟁을 펼쳐야 한다. 자금난과 인력난이 겹치면서 점점 깊은 수렁에 빠져들고 있다는 호소가 나온다.

5일 한국수출입은행에 따르면 상반기 국내 중형 선박 수주량은 54척, 124만CGT(표준선환산톤수)로 전년 동기 대비 27.8% 증가했다. 대기업인 HD현대(267250) 계열사인 HD현대미포(010620)의 수주(43척, 99만CGT)를 제외해도 중형 조선사들의 수주는 11척, 25만CGT로 같은 기간 12.8% 늘었다.

수주는 늘었지만 중형 조선사의 상반기 실적은 저조하다.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국내 중형 조선사 네 곳(케이조선·대한조선·대선조선·HJ중공업) 가운데 대선조선과 HJ중공업(097230) 등 두 곳은 상반기 각각 45억 원, 276억 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대선조선은 법정관리에 돌입한 상태이기도 하다.

부가가치가 상대적으로 낮은 선종을 주로 수주하는 중형 조선사들이 중국 업체와의 가격 경쟁에서 밀리는 탓으로 풀이된다. 상반기 우리나라가 수주한 중형선박 중 고부가가치선에 해당하는 LPG선 14척은 모두 HD현대미포가 가져갔다.

반면 국내 중형 조선사 4곳이 수주한 11척은 모두 탱커(유조선)다. 전년 동기 대비 탱커 수주 증가율도 전 세계 증가율(40%)에 미치지 못했으며 중형벌크선이나 중형컨테이너선 수주는 전무했다.

중형 조선업계는 수주 다각화를 꾀하며 반전을 시도하고 있다. HJ중공업은 반기보고서에서 "친환경 선박 개발 및 수주를 위해 선주 요구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며 "친환경 중형 컨테이너선을 중심으로 영업력과 사업 포트폴리오를 지속해서 보강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선수금환급보증(RG) 발급 같은 자금 문제나 고질적인 인력난이 발목을 잡고 있다. RG는 조선사가 주문받은 배를 건조하지 못할 경우에 대비해 은행이 선주사에 선수금을 보증하는 제도지만 국내 중형 조선사들의 재무 상태가 나빠지면서 은행의 RG 발급이 끊겼다. 인력 부족으로 외주 비용이 증가하면서 악순환의 늪에 빠지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숙련기능인력 비자(E-7-4) 쿼터를 기존 2000명에서 3만 5000명으로 확대하는 한편, 금융업계와 합심해 중형 조선사를 대상으로 한 15조 원 규모의 RG 공급을 발표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역부족이란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RG 발급 한도를 확대하라고 요청하고 있지만 금융업계에선 리스크 때문에 여전히 꺼리는 상황"이라며 "RG가 있어야 수주로 이어지는데 어렵다 보니 중소 조선소들이 자생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양종서 한국수출입은행 수석연구원은 "정책적으로 RG 발급 지원과 인력 확보를 위한 지원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며 "국내 기간산업으로서 빈틈이 있는 곳을 메우는 측면에서 중형 조선산업이 활성화되기 위한 방안을 고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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