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꾼 남편도, 대기업도 치를 떤다…'악플'·'사이버 렉카'에 멍든 사회

21대 국회서 허위 악성 댓글 규제 강화법안 다수 발의됐지만 29일 자동폐기 운명
기업·개인 모두 회복하기 힘든 피해…22대 국회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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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이동희 기자 = 2016년 A사는 현대자동차가 자기 기술을 탈취했다고 주장하며 10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현대차 측은 기술 탈취가 없었다고 반박했고, 사법부는 1심과 항소심, 상고심에서 모두 현대차의 손을 들어줬다. 기술 탈취 등 부당한 행위는 없었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소송 기간 '협력사는 안중에 없냐' 등 대기업을 향한 근거 없는 비방 댓글에 시달렸다. 기술 탈취 의혹은 벗었지만, 악성 댓글은 고스란히 남아 여전히 현대차의 발목을 잡고 있다.

차기 22대 국회에서는 악의적 허위 사실 및 미확인 정보로 얼룩진 인터넷 악성 댓글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1대 국회에서도 관련 규제 강화 법안이 다수 발의됐지만, 여야의 무관심 속에 우선순위에서 밀리며 4년의 국회 임기가 끝나는 오는 29일 자동 폐기될 처지다.

23일 재계 등에 따르면 악의적인 허위 사실을 퍼 나르는 '사이버 렉카'에 개인과 기업들이 막대한 피해를 보고 있다. 사이버 렉카는 사실 확인보다는 선정적 제목과 내용 짜깁기로 허위 사실을 확산시키는 주범이다.

지난 2월 한국언론진흥재단 조사에 따르면 국민 92%는 사이버 렉카가 사회적 문제라고 공감했다. 권리 침해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가해자에 대한 처벌 강화(94.3%)가 가장 많이 꼽혔고, 이어 △피해자 구제제도 강화(93.4%) △플랫폼 자율규제 강화(88.2%) 등으로 나타났다.

사이버 렉카가 활개치면서 기업은 회복 불가능한 치명적 손실을 보고 있다. 악성 허위 정보로 고객 신뢰가 무너질 수 있어서다.

최근 법원은 2017년 경쟁업체에 대한 허위 비방 댓글을 조직적으로 작성해 손해를 끼친 한 유아매트 업체 B사 대표에게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경쟁사 제품의 친환경 인증이 취소되자 불법적으로 구매한 수백 개의 계정을 이용해 맘카페 등에서 후기와 댓글을 조작한 혐의로 유죄를 받았다.

당시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은 친환경 인증 취소에도 경쟁사 매트의 인체 위해성은 없다고 밝혔지만, B사 대표 등은 경쟁사 매트를 '독극물 매트'라거나 경쟁사 매트를 없애니 아이 아토피가 없어졌다는 둥 거짓 후기와 댓글을 다수 퍼트렸다.

그 결과, B사는 업계 1위에 올라서며 현재도 승승장구하고 있다. 반면 피해를 본 경쟁사는 매출 90% 감소와 적자 전환 및 공장 매각 등 존폐 위기에 놓였고 7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피해를 복구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기업뿐 아니라 많은 연예인이 악성 댓글이나 사이버 렉카로 인한 극심한 피해에 시달리는 것은 물론 일반인이라도 예외가 아니다. 최근 꽃축제 뉴스 인터뷰에서 "아내와 꽃이 구분이 안 된다"는 다정한 멘트로 누리꾼에게 훈훈한 웃음을 전한 사랑꾼 남편이 악성 댓글을 남긴 악플러들에게 법적 대응을 예고하기도 했다.

YTN 화면 갈무리

현행법상 허위 사실을 유포하거나 위계 등으로 업무를 방해했다면 5년 이하 징역 또는 15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악성 댓글에 악의적 허위 사실이 포함돼 있는 경우 정보통신망법에 따라 7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 벌금형도 가능하다.

하지만 댓글 작성자를 일일이 특정하기도 어렵고 찾아내도 200만 원 이하 벌금형이 대부분이다. 초범은 기소유예 처분에 그치는 경우가 많고, 단순 일회성 악성 댓글은 사실상 처벌이 어렵다.

2020년 한국리서치 조사에서 국민 10명 가운데 8명은 악성 댓글 규제에 찬성했다. 공감대가 충분한 만큼 오는 30일 개원하는 22대 국회에서 악성 댓글에 대한 실효성 있는 민∙형사적 규제 강화에 조속히 착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악성 댓글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재발 방지와 피해자 보상을 모두 달성할 수 있는 현실적인 규제라는 평가도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허위 사실임을 입증한 뒤에도 악성 댓글은 그대로 남아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피해 보상도 쉽지 않다"며 "조속한 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앞으로도 많은 피해자가 양산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yagoojoa@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