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가 수입산 열연강판 어쩌나…'반덤핑 제소' 놓고 쪼개진 철강업계
中·日, 한국에 저가 열연강판 '밀어내기'…수입산 열연강판 전년比 24%↑
대형 철강사 "불공정거래로 시장왜곡" 제소 검토…제강사 "대형사만 좋은 일" 시큰둥
- 최동현 기자
(서울=뉴스1) 최동현 기자 = 철강업계가 수입산 열연강판 반덤핑 제소를 놓고 물밑 갈등을 빚고 있다. 포스코·현대제철(004020) 등 대형 철강사는 과도하게 싼 수입산 철강재가 국내 시장을 교란한다는 입장인데, 중견 제강사들은 철강사의 독과점을 심화하고 열연강판의 가격 상승을 부추긴다며 난색을 보이고 있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포스코는 중국·일본 등 수입산 열연강판에 대한 반덤핑 제소를 검토 중이다. 앞서 포스코홀딩스(005490)는 지난달 31일 콘퍼런스콜에서 반덤핑 제소에 대해 "하나의 가능한 수단으로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검토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반덤핑 제소는 외국 상품이 국내 시장 가격보다 현저하게 낮은 가격에 들어와 국내 산업이 피해를 입었을 경우 추진할 수 있다. 불공정 무역행위를 방지하는 자국 산업 보호 제도의 일종으로, 제소가 받아들여지면 정상 가격과 덤핑 가격의 차액 범위 내에서 '반덤핑 관세'가 부과된다.
열연강판은 그 자체로도 쓰이지만 후공정을 통해 자동차구조용, 강관용, 고압가스용기용 등으로 제조돼 자동차·건설·조선·파이프·산업기계 등 산업 전반에 걸쳐 사용된다. 열연강판은 연간 철강재 수입량의 20~30%를 차지할 만큼 비중이 커 철강업계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품목이다.
중국과 일본은 자국에서 소화하지 못한 열연강판을 해외로 수출하고 있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열연강판 수입량은 422만톤으로 전년(339만톤) 대비 24.5% 늘었다. 무역 보호장치가 미흡한 한국이 이른바 '물량 밀어내기' 타깃이 되고 있다는 게 대형 철강사들의 주장이다.
문제는 수입산 열연강판이 국산보다 5~10% 싼값에 유통된다는 점이다. 1월 말 기준 국내산 열연강판 가격은 톤당 86만원, 수입산은 톤당 82만원이었다. 국내 대형 철강사들은 수입산 열연강판이 지나치게 싼 값으로 국내 시장에 침투해 무역통상질서를 흔들고 있다고 보고 있다.
포스코 관계자는 "국내 철강업계가 중국 등 신흥국 수입재 유입과 반덤핑 등 불공정 거래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열연강판뿐 아니라 다른 철강재도 외국의 덤핑 대상이 되면 한국 철강시장 전체의 교란을 야기할 수 있다"고 했다.
반면 동국씨엠(460850)·세아제강(306200)·KG스틸(016380) 등 중견 제강사들은 열연강판 반덤핑 제소를 반기지 않는 분위기다. 이들은 철강재를 공급받아 후공정한 제품을 판매하는데, 반덤핑 관세로 수입산 열연강판의 가격이 오르면 원가 비용이 증가해 수익성이 악화하기 때문이다.
반덤핑 제소가 고로(용광로)를 보유한 소수 철강사들의 독점 체제만 강화할 것이란 지적도 있다. 국내에 고로를 가진 철강사는 포스코·현대제철 두 곳으로 포스코의 열연강판 국내시장 점유율은 80%에 달한다. 수입산 열연강판 가격이 오르거나 수입이 줄면 반사 이익은 독점기업에만 돌아가고, 후공정사들은 비용만 떠안게 될 것이란 논리다.
업계 관계자는 "동국씨엠·세아제강·KG스틸의 연간 생산능력은 약 800만톤인데, 열연강판의 가격이 톤당 5만원 오를 경우 연간 부담은 약 4000억원 증가한다"며 "최종 가격에 비용 인상분을 반영하면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가격을 올릴 수도 없다. 결국 제강사들이 피해를 모두 감내해야 하는 구조"라고 했다.
열연강판 반덤핑 제소를 둘러싼 신경전을 놓고 업계에선 '불황 속 갈등'이라는 자조도 나온다. 국내 철강업계는 글로벌 시황 악화와 철강 가격 하락으로 산업 전체가 부진을 거듭 중이다. 포스코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2조830억원으로 전년 대비 9.2% 줄었다. 동국제강그룹 열연철강사업회사 동국제강의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은 786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5.5% 감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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