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업계도 탄소중립 전환 급한데…정부는 '바이오항공유' 외면

정유업계, 지속가능항공유 'SAF' 시장 관망만…항공업계도 도입 로드맵 없어
美 IRA로 세액공제, EU는 규제 강화…정부 무관심 속 정치권서 지원법 추진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계류장에 대한항공 여객기가 이륙 준비를 하고 있다. 2022.9.29/뉴스1 ⓒ News1 임세영 기자

(서울=뉴스1) 한재준 금준혁 기자 = 세계적인 탄소중립 정책에 따라 항공유를 바이오 연료 등 지속가능항공유(SAF, Sustainable Aviation Fuel)로 대체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지만 국내에서 SAF 상용화는 걸음마 단계다.

유럽연합(EU)의 SAF 사용 의무화 등 탄소중립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SAF 기술 개발을 위한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4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국내 정유 4사 모두 SAF 사업 계획을 검토 중이지만 사업이 구체화한 곳은 없다.

SAF는 석유 등 기존 화석 자원이 아닌 동물성·식물성 기름이나 해조류, 도시 폐기물 가스 등 친환경 연료로 제조한 항공유로 기존 항공유보다 탄소배출량이 80%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항공·정유업계 SAF 로드맵 없어…생산시설도 검토 단계

SK이노베이션(096770)은 올해 울산콤플렉스(CLX) 내에 SAF 생산설비를 착공하기로 했으나 착공 시기가 미뤄질 가능성이 있다. 당장 시장에 진출하기에는 사업성이 떨어진다는 내부 판단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신 SK이노베이션은 향후 SAF 시장 진출을 위해 그린 연료 생산 전문 업체인 미국 인피니움 등에 투자한 상태다.

에쓰오일(010950)과 GS칼텍스도 SAF 사업 진출과 관련한 내부 검토만 진행 중이다.

국내 정유사 중에서는 HD현대오일뱅크가 유일하게 구체적인 로드맵을 내놓은 상태다. HD현대오일뱅크는 오는 2025년 상반기까지 바이오항공유 제조 공장을 완공하고 연간 50만톤을 생산할 계획이다. 이에 앞서 2024년에는 바이오항공유 해외시장 진출을 준비 중이다.

항공업계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SAF 도입을 위해 국내외 에너지기업과 협력하고 있지만 양사 모두 구체적인 SAF 도입 로드맵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기홍 대한항공 사장(왼쪽)과 강달호 현대오일뱅크 사장이 30일 오전 서울시 강서구 대한항공 본사에서 항공부문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바이오항공유 협력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있다. (대한항공 제공) 2021.6.30/뉴스1

대한항공(003490)은 현재 SAF 혼합 항공유를 의무화한 프랑스 파리 노선에만 SAF를 1% 포함한 항공유를 사용하고 있다.

국내에 SAF 생산 시설이 없는 만큼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020560) 모두 글로벌에너지 기업인 쉘과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SAF를 공급받기로 했다. 대한항공은 HD현대오일뱅크, SK에너지 등과도 SAF 도입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은 바 있다.

◇규제 강화하는데 정부 지원책 無…정치권서 제도화 첫발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현재 연 2만~3만톤 수준의 SAF 수요는 2040년 연 6000만톤으로 급증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는 'SAF Vision 2050'을 통해 2050년까지 일반 항공유를 바이오항공유로 대체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유럽환경청(EEA)에 따르면 항공기를 이용하는 승객 한 명이 1㎞를 이동하는 동안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는 285g으로 버스의 4배, 철도의 20배에 달한다. 이 같은 이유로 항공유에 대한 탄소중립 규제가 강화되고 있지만 제도 미비로 인해 국내 업계가 발빠르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의 수송 분야 탄소중립 정책이 전기차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탄녹위)가 지난달 발표한 '국가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에도 항공 분야는 SAF 활용 비중을 점진적으로 증대하겠다는 계획만 담겨 있다.

반면 주요 선진국은 SAF 산업 육성을 위한 제도적 뒷받침에 나서고 있다. EU는 오는 2025년부터 역내 항공기에 SAF 혼합 사용(2%)을 의무화하기로 했다. 2050년에는 혼합 사용 비율이 63%까지 오른다. 미국은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통해 올해부터 내년까지 자국 내에서 사용·판매되는 SAF에 갤런당 1.25~1.75달러의 세액공제를 적용하기로 했다.

인천국제공항 계류장에 항공기 모습. 2022.3.14/뉴스1 ⓒ News1 임세영 기자

SAF는 기존 항공유보다 가격이 2~5배 비싸고 투자 대비 수익성이 떨어지는 만큼 업계에서는 정부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한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SAF는 항공업계와 정유업계가 반드시 가야만 하는 길"이라면서도 "현재로서는 정부 차원의 아무런 지원책도 없다. 그러다 보니 기업들도 글로벌 시장 개화 시기만 바라보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SAF 산업 육성을 위한 제도 마련에 나서고 있다.

한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기본법' 개정안은 SAF 도입을 지원하기 위한 근거 조항을 신설했다.

개정안은 정부가 SAF 유통·활용을 활성화하기 위해 연도별 목표를 설정하도록 했으며, 정부가 SAF 산업 활성화를 위해 재정 및 세제 지원 방안을 강구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SAF 기술 개발에 세제 혜택을 주는 법안도 발의된 상태다. 홍정민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은 석유 대체 연료 기술 신성장·원천기술에 포함해 연구·인력개발비 및 통합투자에 대한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한 의원은 "바이오항공유는 세계적으로 관심이 집중되는 미래 먹거리이지만, 우리나라는 첫걸음조차 제대로 떼지 못한 상황"이라며 "바이오항공유 관련 산업의 육성을 위해 제도적 기반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hanantway@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