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놓친 삼성전자의 '반성문'…반도체 50주년 '쇄신 태풍' 온다
반도체 수장 이례적 사과 메시지…HBM 실기로 반도체 영업익 4조원대 추정
삼성SDI 50주년 '혁신' 주문한 전영현, 삼성 반도체 쇄신작업 돌입할 듯
- 한재준 기자
(서울=뉴스1) 한재준 기자 = 삼성전자(005930)가 3분기 저조한 실적 성적표를 내놓았다. 인공지능(AI)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업계 호황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 핵심인 고대역폭메모리(HBM)에서 경쟁력을 회복하지 못하면서 나홀로 겨울을 맞이했다.
삼성전자 반도체 수장은 3분기 잠정 실적이 발표된 8일 이례적으로 고객·임직원·투자자에게 메시지를 내 부진한 실적에 대해 사과했다. 대대적 쇄신을 통한 경쟁력 제고도 약속했다.
전영현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 반도체) 부문장(부회장)은 이날 3분기 잠정 실적 결과에 대해 "시장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과로 근원적인 기술 경쟁력과 회사의 앞날에 대해서까지 걱정을 끼쳤다. 송구하다"며 "모든 책임은 사업을 이끌고 있는 저희에게 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 최고경영진이 실적 발표 후 별도의 메시지를 발표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만큼 비상한 상황이다. 삼성전자는 3분기 시장 예상치(10조 7717억 원)를 한참 밑도는 9조 1000억 원의 영업이익을 내는 데 그쳤다.
DS부문의 수익성 악화가 부진한 실적으로 이어졌다. 최근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HBM 등 AI 메모리를 중심으로 성장하고 있는데 삼성전자는 여전히 범용 제품에 대한 의존도가 크다. HBM 최대 고객사인 엔비디아 납품 지연으로 마진이 큰 HBM으로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5세대 HBM(HBM3E) 8단 제품 양산은 시작했지만 엔비디아 성능 검증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이 가운데 모바일 고객사의 재고 조정과 중국 메모리 업체의 공급 증가로 범용 메모리 평균판매가격(ASP) 상승세가 주춤하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및 시스템LSI의 계속되는 적자도 실적 악화에 영향을 미쳤다.
삼성전자 DS부문의 3분기 영업이익은 시장 예상치(5조 원대)보다 낮은 것으로 추정된다. SK증권은 DS부문의 전체 영업이익을 4조 4000억 원으로 분석했다. 메모리에서 5조 8000억 원의 영업이익, 파운드리 및 시스템LSI에서 1조 4000억 원의 적자가 예상된다. 3분기 6조 7559억 원의 영업이익이 예상되는 SK하이닉스에 영업이익이 밀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전 부회장이 직접 고개를 숙인 것은 반도체 사업 부진으로 인한 주가 하락과 기술 경쟁력 우려 등 삼성의 위기론을 조기에 불식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로 해석된다.
전 부회장은 이날 위기 극복 방안으로 △기술 근원적 경쟁력 복원 △보다 철저한 미래 준비 △조직문화와 일하는 방법 혁신을 제시하며 조직 쇄신을 시사했다.
삼성전자 안팎에서는 전 부회장의 이 같은 메시지를 두고 DS부문의 대대적인 변화를 점치고 있다. 지난 5월 반도체 부문 지휘봉을 잡은 전 부회장이 기술경쟁력과 효율적인 조직문화를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삼성 반도체 50주년인 올해를 변화의 기점으로 만들겠다는 전 부회장의 의지도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 부회장은 삼성SDI 사장으로 일할 당시에도 50주년 행사에서 초격차 기술 확보와 일류 조직문화 구축을 주문한 바 있다.
전 부회장은 이날도 "기술과 품질은 우리의 생명이며 결코 타협할 수 없는 삼성전자의 자존심"이라며 "단기적인 해결책보다는 근원적 경쟁력을 확보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가진 것을 지키려는 수성(守城) 마인드가 아닌, 더 높은 목표를 향해 질주하는 도전 정신으로 재무장하겠다"며 "두려움 없이 미래를 개척하고, 한 번 세운 목표는 끝까지 물고 늘어져 달성해내는 우리 고유의 열정에 다시 불을 붙이겠다"고 했다.
업계에서는 연말 정기인사에서 DS 부문을 중심으로 임원진을 대거 교체할 거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이와 함께 부서 간 소통의 벽을 허무는 조직문화 개편 작업도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전 부회장은 부서 간, 리더 및 구성원 간의 소통 부재와 비현실적 계획을 보고하는 문화가 위기를 키웠다고 분석하며 새로운 조직 문화인 '코어(CORE) 워크'를 제시한 바 있다. 이를 바탕으로 반도체 고유의 치열한 토론 문화를 재건하겠다는 구상이다.
hanantway@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