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생태계 장악한 엔비디아…'유일 갑' 젠슨 황에 목맨 메모리업계

엔비디아 1Q 어닝서프라이즈…AI 가속기 수요 폭발에 내년까지 공급 부족
HBM 비중 늘리는 메모리 업계…유일한 매출처인 엔비디아 공급에 사활

캘리포니아주 산타 클라라에 있는 엔비디아의 본사. ⓒ 로이터=뉴스1 ⓒ News1

(서울=뉴스1) 한재준 기자 = 인공지능(AI) 칩 절대강자 엔비디아가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며 생태계를 장악하고 있다.

AI용 그래픽처리장치(GPU) 시장이 사실상 엔비디아 독점 체제로 굳어지면서 메모리 반도체 업계의 '엔비디아 의존도'도 커지고 있다. 엔비디아에 공급하는 고대역폭메모리(HBM) 물량이 곧 수익으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26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엔비디아의 올해 1분기 매출액은 260억 달러(약 35조 원)로 전년 동기 대비 262% 증가했다. 월가 전망치(246억 9000만 달러)를 상회했다.

영업이익은 169억 달러(약 23조 원)로 지난해 1분기보다 약 8배(690%) 늘었다. 조정 주당순이익(EPS)은 461% 늘어난 6.12달러로 집계됐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18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새너제이에서 진행된 엔비디아 주최 연례 개발자 회의 'GTC 2024'에서 생성형 인공지능(AI) 모델을 겨냥한 차세대 그래픽처리장치(GPU) 블랙웰(제품명 B200)을 공개하고 있다. 2024.3.18. ⓒ AFP=뉴스1 ⓒ News1

◇엔비디아 없인 AI 못 돌린다…독주 체제 지속

엔비디아의 폭발적인 실적 성장은 데이터센터용 GPU가 견인했다. AI 사업에 뛰어든 빅테크들이 서버 구축을 위해 엔비디아의 AI 칩(AI 가속기) H100을 대거 사들이면서 매출과 영업이익이 껑충 뛰었다.

업계에서는 엔비디아의 AI 칩 시장 점유율이 90%를 웃도는 것으로 보고 있다. 엔비디아 제품 없이는 AI 플랫폼 구동이 어렵다는 뜻이다.

인텔, 메타, 아마존, 애플 등 굴지의 기업들이 엔비디아의 독점 구도를 깨기 위해 자체 AI 칩을 내놓고 있지만 AI 프로그래밍 소프트웨어인 쿠다(CUDA) 생태계를 구축해 놓은 엔비디아의 아성을 흔들지 못하고 있다. 쿠다는 엔비디아의 GPU에서만 구동된다.

이 같은 엔비디아 독주 체제는 상당 기간 유지될 것으로 전망된다. 엔비디아는 2분기 매출액을 월가 예상치(266억 1000만 달러)보다 많은 280억 달러(약 38조 원)로 예상했다. 또한 엔비디아 칩에 대한 수요가 공급보다 많은 상황이 내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봤다.

ⓒ News1 양혜림 디자이너

◇엔비디아에 HBM 납품 못하면 경쟁 밀려…올인하는 메모리 업계

엔비디아 중심으로 구축된 AI 생태계는 메모리 반도체 업계의 판도도 뒤흔들고 있다. AI 칩에 필수적인 HBM 때문이다.

HBM은 GPU 프로세스 옆에 탑재돼 수많은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게 돕는 메모리다. 여러 개의 D램을 수직으로 쌓아 만든 HBM은 데이터 용량과 처리 속도를 극대화한 제품으로 가격도 일반 D램 대비 수십에서 많게는 100배 이상 비싸다. D램에 미세한 구멍을 뚫고 연결하는 첨단 패키징 공정이 필요한 고난도 제품이기 때문이다.

현재 시장에서 유통되는 4세대 HBM3과 5세대 HBM3E의 평균판매가격은 각각 233달러, 372달러로 추정된다. 16기가바이트(GB) DDR5(3~4달러)와 비교하면 각각 약 58배, 93배 비싸다. 일반 D램 대비 HBM의 마진은 5배 이상으로 알려져 있다.

HBM의 비싼 가격과 높은 수익성 때문에 메모리 반도체 업계 매출에서 HBM의 비중은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000660)의 D램 매출에서 HBM이 차지하는 비중은 올해 30~35%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삼성전자(005930) 또한 15~20% 정도를 HBM이 차지할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엔비디아가 AI 칩 시장의 90% 이상을 장악하면서 고부가가치 제품인 HBM의 최대 수요처도 한정돼 있다는 점이다. 엔비디아에 HBM을 공급하지 못하면 메모리 반도체 시장 경쟁에서 뒤처지게 되면서 업계의 엔비디아 의존도가 커지는 모습이다.

현재 엔비디아에는 SK하이닉스가 사실상 HBM을 독점 공급하고 있다. 4세대(HBM3)는 물론 5세대(HBM3E)도 SK하이닉스 제품이 가장 먼저 테스트를 통과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오른쪽)과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최태원 회장 SNS 갈무리)

반면 삼성전자는 5세대 제품인 8단 및 12단 HBM3E 테스트 통과에 난항을 겪고 있다. 최근 삼성전자가 반도체 수장(DS 부문장)을 전격 교체, 전영현 부회장을 앉힌 것도 이와 관련한 내부의 위기의식을 반영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메모리 업계는 HBM 생산능력 확대에도 나서고 있는데 이 또한 엔비디아 AI 칩에 대한 수요 폭증 때문으로 분석된다.

마이크론 테크놀로지는 최근 HBM 설비 증설을 위해 올해 설비투자 계획을 75억 달러에서 80억 달러로 상향 조정했다. 마이크론은 엔비디아 H200에 사용될 HBM3E를 양산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SK하이닉스는 충북 청주에 건설 중인 신규 팹 'M15X'를 HBM 생산라인을 구축하기로 했다. 향후 시장 대응을 위해 해외 생산기지 설립 가능성도 시사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최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AI 열풍에 따른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 급증에 대비해 국내 생산설비 증설과 함께 해외 투자도 고려할 수 있다며 "일본이나 미국 등 다른 나라에서 (HBM을) 생산할 수 있는지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hanantway@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