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이런 규제는 없었다" 공정위, 사상 초유 PB '진열 규제'
고물가 겪은 주요국, PB산업 성장하며 관련 유통사 매출도↑
국내선 산업위축 우려…"해외는 노출 우선순위 규제 없어"
- 서미선 기자
(서울=뉴스1) 서미선 기자 = 공정거래위원회가 쿠팡이 알고리즘을 조작해 자체브랜드(PB) 상품을 부당하게 우선 노출했다고 판단, 제재하자 업계에선 "세계 최초의 상품 '진열 규제'"라는 우려가 나온다.
해외의 경우 유통사 PB 매출 비중이 80%에 육박하는 경우도 있는데, 국내에선 각 사의 고유 권한인 영업 전략에 속하는 제품 진열 방식마저 제한하려 해 산업이 위축되는 것 아니냐는 취지다.
13일 공정위는 쿠팡과 그 자회사 CPLB가 공정거래법이 금하는 위계에 의한 고객유인행위를 했다고 판단, 시정명령과 과징금 1400억 원을 부과하고 두 회사를 검찰에 고발하기로 했다.
온라인 쇼핑시장에서 '심판이자 선수'인 쿠팡이 검색순위 '쿠팡랭킹'과 관련해 자사 PB가 결과값 상위에 노출되도록 알고리즘을 조작하고 임직원을 통한 구매후기 작성 및 높은 별점 부여를 했다는 이유다.
쿠팡은 "쿠팡 랭킹은 빠르고 품질 높고 저렴한 상품을 '추천'하는 서비스로 고객은 차별화된 로켓배송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쿠팡을 찾는다"며 "전 세계 유례없이 상품진열을 문제 삼아 과도한 과징금과 형사고발까지 결정한 공정위 조치에 유감"이라고 밝혔다.
PB는 마진을 최소화해 가격 경쟁력을 높인 상품이 많아 일반 대기업 브랜드(NB)보다 비교적 저렴하다. 전 세계적 고물가로 장바구니 부담이 커지면서 PB는 물가 안정에도 일부 기여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스태티스타가 전 세계 주요 50개국 PB상품 비중을 조사한 결과 지난해 1분기 기준 한국은 43위(3%)에 그친 반면 스위스는 52%, 영국은 46%, 미국은 17%, 홍콩은 14% 등이었다.
한국보다 앞서 인플레이션이 온 국가들에서 가성비를 찾는 소비자가 많아지며 PB 수요도 증가했다는 의미로 보인다.
일례로 독일 기반 유통사 알디에서 판매하는 브랜드 90% 이상은 PB상품이다. 초저가 사업 모델을 채택한 알디는 매출이 성장세를 보이며 유럽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사업확장을 노리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선 공정위가 쿠팡이 '쿠팡랭킹'을 통해 자사 PB를 부당 우대해 관련법을 어겼다고 판단하며 e커머스 업체들이 상품 진열에 더 고심하게 됐다.
공정위는 다른 e커머스도 PB상품을 상단 노출하는 데 대해 "쿠팡과 같이 심판이자 선수로 이중적 지위를 남용해 불공정하게 소비자를 유인하고 경쟁사업자를 배제한 혐의가 발견될 시 법위반 여부를 조사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쿠팡은 대형마트 등 오프라인 업체가 소비자 동선과 마케팅 전략을 반영해 상품을 진열하는 것처럼 온라인에선 검색 순위가 곧 진열 방식이고, 이를 규제하는 건 유통업의 본질 부정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공정위는 온라인에선 등록된 모든 상품을 탐색하는 게 불가능하고 검색에서 우선노출된 상품 위주로 구매하지만, 오프라인에선 모든 상품을 탐색하기 수월하고 매장 전체를 보며 상품을 구매할 수 있어 경우가 전혀 다르다고 봤다.
업계 일각에선 이른바 'C커머스'가 국내 유통업계에 공습해 오는 상황에 국내 유통업 경쟁력이 약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공정위는 유럽연합(EU) 경쟁당국이 아마존이 자기 상품을 '바이(buy) 박스'에 우선노출한 행위를 동의의결을 통해 시정하도록 한 사례를 들어 이번 조치가 세계 최초이고 유일한 것이라 보기 어렵다고 했다.
다만 이는 특정상품을 검색한 소비자에게 1개 상품을 최우선 노출시키는 것으로, 이번 사례보단 쿠팡의 아이템위너와 비슷하단 게 업계 설명이다. 아이템위너는 동일제품을 1개 대표이미지로 팔며 조건이 가장 좋은 판매자를 단독 노출하는 시스템이다.
쿠팡 등 e커머스를 넘어 이번 제재가 업계 전반을 향하지 않겠냐는 걱정 섞인 관측도 있다. 공정위가 입법을 추진했던 플랫폼공정경쟁촉진법(플랫폼법)의 불씨가 남아 있어서다.
이 법은 소수 독과점 플랫폼을 사전에 지배적 사업자로 지정한 뒤 자사우대 등 독과점 남용 금지행위에 대한 입증책임을 사업자에 부과하는 게 골자다.
전문가 사이에서는 정부가 PB산업에 대해 접근할 때 해외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는 제언이 나온다.
최영홍 한국유통법학회장은 "월마트 등 해외에서도 상품 노출 우선순위를 자체 결정하지만 규제는 없었다"며 "한국 유통산업이 위축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언급했다.
smith@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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