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규제 12년, 실효성 논란 上] 10년 째 표류 중인 '유통法'

주변 상권 보호 취지 무색한 상생법…소비자 불편·혼란도 가중
실효성 검증 필요·개정안 목소리에도 유통 규제 개혁 '회의적'

편집자주 ...대형마트 의무휴업 규제를 둘러싼 아젠다(Agenda, 의제)가 12년 째 유통업계 숙원이 되고 있다. 전통시장과 골목상권 보호를 위해 2012년 도입된 '유통산업발전법'은 국내외 e커머스의 부상과 급변하고 있는 유통 시장 환경에 실질적인 규제로 작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국민 불편 해소를 위해 규제 완화 정책을 펼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지만 개정안은 폐기 위기에 처해있다. 10년 넘게 규제를 받고 있는 주요 대형마트들은 폐점 위기를 맞고 있다. 본 취지와는 다르게 '불공정 규제'로 지목되는 '유통법'의 문제점과 실효성, 향후 개선안의 필요성 대두 등을 짚어본다.

ⓒ News1 김초희 디자이너

(서울=뉴스1) 김명신 기자 = "마트에 장보기 전 매번 홈페이지나 기사를 통해 휴무일을 확인해요. 일요일 휴무인 곳도 있고 평일인데 월요일이나 수요일이라는 곳도 있고 해서요. 일요일 휴무 적용 때도 지역마다 달라 불편했는데 평일 휴무 전환도 다 달라서 혼란스럽네요."

서울 강서구에 거주하는 이 모 씨(61)는 온라인보다 오프라인 마트 쇼핑이 여전히 편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의무휴업일 변경에 따른 지역별 휴무일도 달라 매번 확인 해야 해 불편을 호소했다.

소비 패턴의 변화에 따른 온·오프라인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오프라인 대형마트가 설 자리를 잃고 있다고 우려한다. e커머스의 시장 확대와 맞물려 가격 경쟁력으로 대응에 나섰지만 '초저가' 중국 e커머스까지 압박하고 있다.

여기에 10년 넘게 대형마트에만 적용되는 각종 규제까지 발목을 잡으면서 이중고를 겪고 있다. 업계에서는 유통업계 온·오프라인 유통의 초격화 시대를 예고하면서 대형마트의 쇠퇴기는 이미 시작됐다는 경고음까지 나오고 있다.

◇ 불공정 규제…"객관적 실효성 검증 필요"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을 보호하자는 취지로 2012년 제정된 유통산업발전법(유통법)은 소비자 혼선과 소상공인 상생을 둘러싼 실효성 논란 속 12년째 유통업계 아젠다(Agenda 사회적 의제)가 되고 있다.

유통법의 골자는 유통구조의 선진화와 유통기능의 효율화, 유통산업에서의 소비자 편익 증진, 지역별·종류별 균형발전 도모, 공정한 경쟁 여건 조성 등이다. 이에 대형마트는 한 달에 2차례 의무적으로 휴업해야 하며 휴업일에는 자정부터 다음 날 오전 10시까지 영업할 수 없고 온라인 배송도 금지된다.

문제는 온·오프라인 쇼핑 패턴 변화에 따른 소비자 편익 증진 효과, 소상공인과 균형발전 및 공정한 경쟁 여건 조성에서 실질적인 성과를 내고 있는가다.

ⓒ News1 양혜림 디자이너

현재 각 지방자치단체장이 조례 개정을 통해 의무휴업일을 평일로 조정할 수 있다. 지자체 조례사항이다 보니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이 지역마다 달라 여전히 혼선을 빚고 있는 배경이다.

대구, 청주 등이 의무휴업을 일요일에서 평일로 전환한 가운데 서울 서초구·동대문구, 부산 등 전국 76개 기초지자체(출점 지자체 중 44%)가 의무휴업일을 평일로 전환하고 있다.

현재까지 전국 대형마트 평일 전환 현황을 보면, 롯데마트는 전국 111개 점 중 평일 휴무로 전환한 점포는 29개 점으로, 82개 점이 일요일 휴무다. 이마트는 전체 점포 132개 점 중 45개 점, 홈플러스는 130개 점 중 42개 점이 평일 휴무로 전환해 일요일 영업을 하고 있다. 평일 휴무 요일 역시 지역마다 다르며 부산 강서구의 경우 일요일 의무휴업 지정을 철회하면서 365일 영업한다.

'소상공인과의 균형발전' 측면에서도 한국체인스토어협회의 신용카드 빅데이터 활용 분석 자료에 따르면 주변 반경 3km 이내의 주변 상권 매출 추이에서 유통법 규제 초기인 2013년 36.9%에 달했지만 2016년 6.5%로 감소했다. 의무휴업일과 비(非)의무휴업일의 소비금액 분석에서도 의무휴업일 주변 점포 소비금액은 8~15%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형마트와 전통시장을 동시 이용하는 고객 수는 대형마트 출점 직후 1년은 25.55명에서 3년 후에는 39.15%로 증가했다. 반면 대형마트가 폐점할 경우 주변 상권의 매출은 반경 0~1km에서 4.82%, 1~2km에서 2.86% 각각 감소했으며 무엇보다 반경 3km 이내 범위의 주변 상권에서 429명의 일자리가 감소했다.

특히 전국 최초로 시행한 대형마트 의무휴업일 평일 전환한 대구의 경우 '대구시 의무휴업일 분석 결과' 자료에서 평일 전환 후 6개월간 대구광역시에 있는 슈퍼마켓, 음식점 등 주요 소매업(대형마트, SSM, 쇼핑센터 제외)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9.8%, 전통시장은 2.4% 증가했다.

대형마트가 규제 대상이 아닌 지역상권 활성화를 위한 상호보완과 상생협력의 대상으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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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무휴업 규제에도 중소유통 위축 문제 지속…"비정상화의 정상화 시점"

무엇보다 '공정한 경쟁 여건 조성' 측면에서 유통시장 환경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는 '불공정 규제'라는 지적이다. 유통업계에서는 지난 10여 년 전과 크게 달라진 유통의 환경과 구조의 변화, 온라인의 성장과 오프라인의 쇠퇴에 주목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업태별 매출 비중에 따르면 온라인이 50.5%를 차지한 가운데 대형마트는 백화점(17.4%), 편의점(16.7%)보다 낮은 12.7%로 나타났다. e커머스의 초경쟁 시대가 초래한 상황에서 오프라인 대형마트만 규제 대상이다.

특히 대형마트 규제 완화에도 지역상권 매출이 증대됐다는 분석이 이어지면서 유통법의 실효성에 대한 객관적 검증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유통 환경의 현실화 대응을 위해 정부는 의무휴업 규제 완화, 새벽배송 허용 등 유통규제 완화 정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만 유통법 개정안 논의가 21대 국회에서 미뤄질 공산이 커지면서 유통규제 개혁에 회의적인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22대 국회에서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법 개정의 목소리에 힘을 싣고 있다. 소관 상임위원회인 산업통상자원특허소위원회의 회의록에서 김회재 민주당 의원은 "대형마트에 가지 않고 온라인 배송을 받으면 더더욱 골목상권은 죽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지향 국민의힘 의원도 '서울시 유통업 상생협력 및 소상공인 지원과 유통분쟁에 관한 조례 개정안'이 지난달 24일 통과되자 "지난 4년 동안 약 22곳의 대형마트가 폐점하면서 청년, 여성 등이 지역에서 일자리를 잃고 주변 상권도 함께 무너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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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국내 유통업체들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여야의 초당적 협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국경제인협회에 따르면 매출액 1000대 기업을 대상으로 '기업이 바라는 22대 국회 입법방향 설문조사'에서 응답 기업의 60.6%는 22대 국회 중점 추진과제를 '경제활력 회복'으로 답했다.

그러면서 21대 국회 경제 관련 계류법안 중 통과를 희망하는 법안 중 하나로 유통법을 꼽았다.

업계 관계자는 "유통법 규제 후 대형마트가 직격탄을 입은 것은 사실"이라면서 "상권보호 취지와 달리 소상공인의 매출 추이에서도 의무휴업일의 평일 전환 시점을 전후 집계에서도 유통법 실효성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실적인 어려움이 반영된 규제 완화나 폐지가 필요하다고 보지만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회 통과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돼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lila@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