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AI 고도화, 개별기업으론 쉽지 않아…공생 모델 찾아야"

"대기업조차 AI고도화 위한 데이터 부족…산업 인프라로 구축해야"
"지역발전, 무작정 벤치마킹 안 돼…오직 울산만의 특색·수요 살려야"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25일 울산전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24 울산포럼’ 폐회식에 참석해 기술과 문화를 활용한 울산의 혁신방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SK그룹 제공) ⓒ News1 최동현 기자

(울산=뉴스1) 최동현 기자 = 최태원 SK(034730)그룹 회장은 국내 제조업의 인공지능(AI)·디지털 전환(DX) 속도를 올리기 위해서는 다수의 기업이 데이터를 공유하고, 이렇게 모은 대규모 빅데이터로 머신러닝 속도를 배가해 AI 고도화를 앞당길 수 있는 '공생 모델'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최 회장은 25일 울산 울주군 울산전시컨벤션센터(UECO)에서 열린 '2024 울산포럼' 마무리 세션에서 "하나의 개별기업이 AI를 이용해서 경쟁력을 갖겠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AI는 엄청난 양의 데이터, 그것도 클렌징(정제)이 제대로 된 데이터를 먹어야 훈련되고 똑똑해지는데, 개별기업은 물론 대기업도 (각자가 보유한) 데이터를 갖고는 (AI를) 훈련시키기 어렵다"며 이같이 밝혔다.

"AI 고도화, 개별기업으론 역부족"…'공생 모델' 제안

최 회장은 제조업의 AI·DX 현 단계를 '초창기'로 정의하면서 "전체 데이터를 모아서, 공용으로 데이터를 쓰려는 시도가 아니라면 솔직히 '나 혼자 따로 하겠다'는 것은 비용만 엄청 들고 AI가 그렇게 효과적이진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AI시대의 도래로 국내 제조업에서 디지털 전환 바람이 불고 있지만, 개별기업이 보유한 데이터양으로는 AI 고도화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솔직히 말해서 울산에 있는 SK 관계사들이 다 모여도 (효율적인 AI 고도화는) 부족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울산시(지방정부)가 AI 기반 시설을 만들어주고, 거기 입주한 전체 기업을 모아 (데이터) 분류와 정제를 제대로 한 상태에서 들어가야만 경쟁력 있는 AI가 나오게 될 것"이라고 했다.

최 회장은 "공생의 모델을 찾아야 한다"며 "공통적인 (데이터를) 모아서 AI가 능률을 가하기 시작한다면 비용과 에너지를 훨씬 줄일 수 있고, 전체 레벨에서 움직인다면 상당한 효과를 볼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울산포럼이 필요한 이유"라고 덧붙였다.

울산포럼은 2022년 최 회장의 제안으로 시작된 사회문제 해결 플랫폼으로 올해 3년 차를 맞았다. 울산포럼은 '산업수도'로 불리는 울산시 내 제조업의 AI·DX 현황을 공유하고, 지역과 기업·문화·환경을 연계한 지방 발전 모델을 논의하는 자리다. 최 회장은 올해 포럼도 개회사부터 폐막식까지 종일 자리를 지켰다.

최 회장은 울산시가 저출생·인구소멸 위기에서 벗어날 아이디어로 '차별화된 산업·문화도시'를 제안하기도 했다. 단순히 세계적 대도시의 모습을 벤치마킹하는 것이 아닌 오직 울산시에서만 볼 수 있는 문화를 조성하고, 이것이 시장성을 띨 때 인구 유입과 관광객 유치를 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최 회장은 예술가에게 작업공간을 주고 자유로운 창작활동을 지원해 고유의 문화권을 조성하는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언급하면서 "울산에는 원유나 석유제품 저장탱크가 많은데, 필요 없는 저장탱크로 도서관을 만들면 어떨까. 밖은 산업시설인데 안은 문화시설인 도서관이라면 이건 (사람들이) 무조건 보러 온다. 공연장도 가능하고 수족관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울산시만의 특색 있고 수요가 있는 문화권이 조성되면 인구가 늘고 불균형한 성비도 맞춰져 저출생 문제도 해결될 수 있다고 봤다.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산업적으로 적용하면 AI 산업도 부흥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세력을 모아야 울산을 바꿀 수 있는 에너지가 되지 않을까"라고 부연했다.

최 회장은 포럼을 마친 뒤 기자들을 만나 울산포럼의 향후 계획에 대해 "(정부·기업·학계의) 상시 협의체로서, 포럼에서 그런 것(울산 제조업과 지역 발전)을 설명하고 발표하는 시간을 갖는 상시 협의체가 구성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포럼 현장에는 각계에서 320여 명, 온라인으로 1000여 명이 참석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왼쪽에서 세 번째)이 25일 울산전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24 울산포럼' 폐회식에 참석해 기술과 문화를 활용한 울산의 혁신방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SK그룹 제공) ⓒ News1 최동현 기자

울산 제조업 AI·DX 공유…"여성이 살고 싶은 도시 만들어야"

포럼 첫 번째 세션에서는 울산 제조업의 AI·DX 사례들이 소개됐다. 울산에 세계 최대 자동차 단일공장을 두고 있는 현대자동차는 '싱가포르 글로벌 혁신센터'(HMGICS) 현황을, SK에너지는 울산콤플렉스(CLX)에 추진 중인 스마트플랜트 2.0 과제를 선보였다.

특히 SK에너지는 울산 지역 IT 중소기업 및 스타트업과 협력해 자체 AI 설루션 프로그램을 개발·상업화한 성공 사례도 공유했다. 울산 정보통신기업 인사이트온이 참여한 설비자산관리 설루션 '오션허브'(OCEAN-H), AI 스타트업 딥아이와 협업해 개발한 비파괴 설비 자동 검사·진단 AI 모델 등이 대표적이다.

정창훈 SK 에너지 담당은 "울산CLX는 2016년 기존의 스마트팩토리와는 다른 '스마트플랜트' 개념을 업계 최초로 도입, AI를 접목해 (공정을) 지능화·고도화하고 있다"며 "SK의 60년 이상 축적된 도메인(사업 영역) 지식과 국내 IT기업의 기술을 융합해 총 40여개 과제 중 10여개 과제를 직접 개발하고, 일부 사업화에도 성공했다"고 말했다.

포스코와 HD한국조선해양도 공정에 AI·DX를 접목한 사례를 소개했다. 정규호 포스코 상무는 AI·로봇을 활용한 공정별 자동화에 대해 "과거 8일이 걸리던 공정을 3분으로 시간을 대폭 단축했다"고 말했다. 스마트 고로를 통한 탄소 저감, 밀폐공간의 유해가스 존재 여부를 사전에 감지하는 '스마트 세이프티 볼'을 활용해 안전 리스크를 최소한 사례도 언급했다.

HD한국조선해양의 DT(디지털 전환)를 담당하는 채규일 상무는 "친환경(고부가) 선박은 제조 자체부터 친(親)디지털적이어야 한다"며 AI 플랫폼을 통해 선박 물류와 블록 최적화를 제고하고, 외국인 근로자들을 위한 맞춤형 AI 번역기 'AI 에이전트'를 도입한 사례를 소개했다.

두 번째 세션은 '새로운 지역, 문화와 환경의 하모니'를 주제로 열렸다. 지역경제와 문화 발달은 울산포럼의 핵심 테마다. 저출생·고령화, 인구감소 등 총체적 위기에 직면한 오늘날 산업도시 울산의 새 도약을 위한 아이디어와 제언들이 나왔다.

진화생태학계 권위자인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울산의 성적(性的) 매력'이라는 도발적 화두의 기조연설로 눈길을 끌기도 했다. 울산은 제조업 중심 도시라는 특성 탓에 여성 인구의 유출은 많지만 유입은 현저히 적다. 저출생 문제로 지방소멸 위기에 처한 울산이 다시 부흥하려면 '여성이 살고 싶은 도시'로 탈바꿈해야 한다는 뜻이다.

최 교수는 18세기 산업혁명 시대에 대표적인 공업도시였지만 쇠퇴했던 맨체스터가 음악과 축구의 도시로 변모한 사례, 일본 도쿄의 외곽 소도시인 나가레야마가 교통 인프라 투자로 '아이 키우기 좋은 도시'로 거듭난 사례 등을 들면서 "울산을 매력적인 도시로 만드는 가장 결정적인 방법은 문화다. 울산을 어떻게 문화적으로 다양한 도시로 만들 것이냐가 숙제"라고 강조했다.

dongchoi89@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