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내연기관 종식은 언제? 車업체들의 복잡한 눈치싸움

'탄소중립','전동화' 내걸고도 "내연기관차 공급 계속"

(서울=뉴스1) 이세현 기자 = 지난 15일 서울 광진구 그랜드워커힐 서울에서 열린 폭스바겐코리아의 ID.4 출시 행사.

폭스바겐 브랜드 최초의 순수 전기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 출시로 기자들의 관심이 집중된 상황에서 무대에 첫번째로 등장한 인물은 사회자도, 사장도 아니라 뜻밖에도 어린아이였다.

초록색 원피스를 입은 여자아이는 울창한 숲의 풍경이 상영되는 대형 스크린 앞을 두리번거리는 연기를 하더니 곧장 맞은편에 전시된 ID.4 앞으로 다가갔다. 주위를 돌며 차를 살펴보던 아이는 차 뒤쪽에 있는 충전구를 열어 전기 충전기 포트를 연결하는 흉내를 냈다. 뒤쪽 스크린에 차가 충전하는 듯한 영상이 표시되자 아이는 발랄하게 뛰어 무대 뒤로 사라졌다.

곧이어 스크린이 양쪽으로 갈라지고 그 사이에서 ID.4가 등장했다. 무대 앞으로 이동을 마친 ID.4 조수석에서 사샤 아스키지안 폭스바겐코리아 사장이 내려 청중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근래 있었던 몇몇 오프라인 차량 출시 행사에서 볼 수 없었던 멋들어진 등장이었다. 기획력과 실행력이 어울어진 훌륭한 행사 오프닝이었음을 부정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자연 풍경과 어린아이, 그리고 전기차.

미래세대를 위한 환경 보호, 지속가능한 발전을 향한 의지로 생각됐다. 그리고 그에 따른 폭스바겐코리아의 적극적인 전동화 전략의 발표를 기대했다.

앞서 폭스바겐그룹은 지난해 파리기후변화협약에 따라 오는 2030년까지 전기차의 비중을 50%로 늘리고, 늦어도 2050년까지는 완전한 탄소중립을 달성한다는 내용의 '뉴 오토'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이날 아스키지안 사장의 발언은 다소 의외였다. 그는 "현재 전기차 시장은 과도기적 단계로 아직 긴 여정이 남아있다고 생각한다"며 "여전히 가솔린 및 디젤 엔진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최소한 2030년까지 우리는 이러한 과도기적 상태에 있을 것"이라며 "이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전문가 수준의 차량 지식을 갖추고 있는 한국 고객을 위한 최상의 가치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했다.

현시점에서 폭스바겐의 전략은 최선이라고 할 수도 있으나, 어쩐지 어린아이와 자연의 풍경을 내세운 행사의 시작과는 다른 결로 느껴졌다.

사실 내연기관의 종식 시점을 두고 망설이고 있는 것이 폭스바겐만은 아니다. 아우디코리아는 최근 열린 전기SUV 더 뉴 아우디 Q4 e-트론40 출시 행사에서 "2026년부터 글로벌 론칭 신차는 전부 전기차가 될 예정"이라면서도 "아직 내연기관 엔진에 대한 수요가 있기 때문에 고객의 요구가 있는 한 차량을 공급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페라리는 2025년 순수전기차 모델 출시를 시작하고 내연기관차와 전기차를 병행 생산한다는 방침이고, 도요타 역시 전동화를 추진하면서도 영국이 2030년부터 하이브리드차 판매 금지를 추진하자 현지 생산을 중단하겠다며 반발하고 있다. 한국도 자동차업계의 반발로 내연기관 종식 시점이 명확하게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다.

탄소 중립 달성을 통한 환경 보호는 이미 글로벌 추세이며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그러나 전기차는 아직 발전해나가는 단계이고 내연기관차의 역할도 분명히 남아있다. 오직 전동화만이 지속가능한 미래를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다음 세대를 위한 지속가능한 미래를 기치로 내걸면서도, 한편으로는 내연기관차 공급 역시 계속하겠다는 말은 모순처럼 들린다. 어쩔 수 없이 글로벌 흐름을 따라 가면서도, 되는데까지 내연기관차를 공급하겠다는 눈치싸움처럼 보이기도 한다.

자동차에 전기충전기를 꽂는 흉내를 내며 말갛게 웃는 아이 뒤에 숨어있는 어른들의 계산이 복잡하기 그지없다.

sh@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