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삿돈으로 산 160억 자사주 재단에 넘기겠다는 HL홀딩스…"밸류업 역행"

HL홀딩스, 재단 만들어 자사주 무상 출연…총발행주식 4.76% 규모
회사측 "사회적 책무 실행" 차원…주주들 "무상출연 철회하라" 반발

ⓒ News1 김지영 디자이너

(서울=뉴스1) 신건웅 기자 = HL그룹(옛 한라그룹) 지주사인 HL홀딩스가 아직 만들어지지도 않은 재단법인에 160억 원에 달하는 규모의 '자사주'를 무상으로 넘기기로 하면서 주주들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 회삿돈으로 산 자사주를 대주주 개인의 이익을 위해 활용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자사주를 재단에 넘기면 의결권이 되살아나 정몽원 회장 등 오너 일가는 사재를 한푼도 들이지 않고 우호 세력인 백기사를 확보할 수 있지만, 회사의 재무상황은 악화하고 주주가치 제고 역시 멀어질 수밖에 없다. 정부 차원에서 주도하고 있는 '밸류업'에 역행한 '밸류다운'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19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HL홀딩스(060980)는 지난 11일 오전 9시30분 목포신항만운영 대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열고, 자기주식 처분 승인의 건을 만장일치로 의결했다.

비영리재단 법인을 설립해 자사주 47만 193주(18일 종가 기준 약 160억 원)를 무상 출연하는 내용이다. 총발행주식의 4.76%이자, 보유 자사주(56만 720주)의 84%에 달하는 규모다. 나머지 16%(9만 527주)는 소각하기로 했다.

HL홀딩스는 '사회적 책무 실행'을 위한 목적이라고 밝혔지만, 주주들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통상 비영리 재단에 주식을 넘길 때는 대주주 개인 지분 등 사재를 활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재용 삼성전자(005930) 회장이 호암재단에 기부할 때나, 정몽구 현대차(005380)그룹 명예회장이 아산사회복지재단에 기부했을 때도 개인 사재를 활용했다.

회사가 보유한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지만 재단법인으로 넘기면 의결권이 되살아난다. 특히 HL홀딩스가 재단법인에 무상으로 넘기기로 한 자사주는 2020년 2월, 2021년 5월 등 두 차례에 걸쳐 사들인 것(56만 720주)으로 당시 '주주 친화 정책을 통한 주주가치 제고 목적'을 내세웠다. 이렇게 늘린 자사주를 재단에 무상으로 넘기기로 하면서 일반주주의 '뒤통수'를 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VIP자산운용, 베어링자산운용(6.59%), 국민연금(5.37%) 등이 주요주주다.

오너인 정몽원 회장은 기존 지분 31.58%(우호지분 포함)에 추가로 재단 지분이 더해져 경영권을 공고히 할 수 있지만, 일반 투자자 입장에서는 회삿돈으로 산 자사주를 오너 일가 재단에 넘겨주는 셈이다.

주식 증여는 회계상 손실로 반영된다. 가뜩이나 3분기 173억 원의 영업손실이 발생한 상황에서 163억 원의 기부금이 손실로 반영되면 재무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자사주일 때는 주지 않던 배당을 이제 재단에도 지급해야 한다.

주주 게시판에서는 철회 요구가 빗발쳤다. "정몽원 회장은 당장 자사주 무상출연 철회하고 즉시 소각하라", "기부하려면 개인 지분을 기부하면 되지 주주가치 제고하겠다고 사둔 자사주를 기부하는 게 말이 되느냐", "이래서 상법 개정해야 한다", "자사주 160억 원어치를 재단으로 넘기는 건 배임행위"라는 글 등이 올라왔다.

일각에서는 정몽원 회장이 최근 5년간 급여로 340억 원, 배당으로 255억 원 등 총 595억 원을 수령한 것을 거론하면서 "과도하게 수령한 급여와 배당은 증여를 통해 자녀들의 지분취득 재원으로 활용하면서 전체 주주 돈으로 취득한 자사주를 무상 출연한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정 회장은 지난해 말에서 올해 초 두 딸에게 재산 일부를 증여했고, 두 딸은 증여받은 재산을 바탕으로 총 2.25%에 달하는 회사 지분을 취득했다.

한 투자자는 "오너 일가의 지분 확대를 위해 일반 주주들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며 "일반주주의 이해관계를 완전히 무시한 결정으로, 이사회에서 주주들이 납득할 만한 이유를 제시해야 한다"고 강했다. 이어 "이사 충실 의무에 주주도 포함하도록 상법이 개정돼야 하는 이유"라며 "지금이라도 바로잡아야 한다"고 했다.

keo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