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 '바겐세일' 끝내자 글로벌 증시 폭락…"싸게 빌려 투자, 끝났다"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글로벌 증시 자금 회수
경기 침체 우려 겹치면서 전 세계 증시 하락

ⓒ News1 김초희 디자이너

(서울=뉴스1) 신건웅 기자 = 엔화 '바겐세일'이 끝나자 글로벌 증시가 퍼렇게 질렸다. 경기 침체 우려 속 일본서 싼 가격에 빌려 투자했던 자금이 빠져나면서 주가가 폭락했다.

6일 서울외환시장에 따르면 지난달 초 엔화 100엔의 가치는 857.41원에서 전일 953.19원까지 올랐다. 약 한 달 사이 11.17% 상승한 셈이다.

일본은행(BOJ)이 지난달 말 금리를 0.15% 인상한 데다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가 "경제·물가 추이가 전망대로 진행된다면 계속 기준금리를 올릴 것"이라고 말하면서 엔화 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했다.

여기에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 역시 엔화 절상 속도를 높였다. 다른 주요 국가가 2022년 이후 기준금리를 올렸지만, 일본은 홀로 '0%'대 수준을 유지해 왔다. 또 장기국채 매입을 장기간 지속하면서 통화 완화 정책을 장기간 고수했다.

이에 글로벌 금융시장에서는 초저금리의 엔화를 차입해 상대적으로 높은 금리 또는 다른 시장에 투자하는 '엔 캐리 트레이드'가 지속됐다. 블룸버그는 이렇게 풀린 유동성이 빅테크를 비롯한 수익 자산에 투자됐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금리 인상으로 엔화 가치가 상승하면서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이 시작됐다. 글로벌 경기 침체 우려 속 엔화를 빌려 증시 등에 투자한 자금이 빠져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전 세계 증시가 영향을 받았다.

이틀 새 미국 나스닥 지수가 4.67% 하락한 것을 비롯해 S&P500 지수는 3.18% 밀렸다. 충격은 아시아 증시가 더 컸다. 일본 니케이225는 17.48% 급락했고, 대만 가권지수도 12.4% 떨어졌다.

같은 기간 코스피 역시 12.1% 하락해 지난해 11월 7일 이후 9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종가 기준)으로 떨어졌다. 이틀 동안 시가총액 270조 원이 증발했다.

시장에서는 엔 캐리 트레이드 자금 청산에 대외 변수까지 불거지면서 불확실성이 커졌다고 진단했다.

전균 삼성증권 연구원은 "엔화 강세반전과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 위험이 다양한 경로로 파급되고 있다"며 "엔화 강세 반전에 따른 수익악화 우려 등으로 현물과 선물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매도압박을 취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리서치 회사 BMI의 세드릭 체햅 국가 리스크 책임자 역시 CNBC 방송에 "매파적 일본은행이 단기적인 캐리 트레이드의 붕괴를 일으켰다"며 "미국 제조업 지표의 부진이 시장의 불안을 키웠다"고 설명했다.

추가 충격이 있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엔 캐리 트레이드의 후폭풍으로 증시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하건형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대외 충격과 함께 미국의 금리 인하가 동반될 경우 캐리 트레이드 청산이 확대되며 금융시장 변동성을 키웠다"며 "경기 급랭 속에 급격한 금리 인하가 이뤄질 경우 엔 캐리 트레이드의 추가 청산으로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가 동반될 가능성도 잔존한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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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은행권에 따르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지난달 말 기준 엔화 예금 잔액은 1조2111억 엔(약 11조5006억 원)으로 전월 말(1조2929억 엔) 대비 818억 엔 줄었다. 월말 잔액 기준으로 올해 첫 감소다.

지난해 말 1조 엔을 돌파한 엔화 예금 잔액은 역대급 엔저 현상과 일본 여행 수요가 늘면서 올해 6개월 연속 증가한 바 있다. 특히 최근에는 외화를 사고팔 때 수수료가 부과되지 않는 상품이 나오면서 투자가 한결 간편해졌다.

그동안 엔화를 모아온 엔테크 족이 지난달 엔화 가치가 급등하면서 환차익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달 초 엔화를 사뒀다면 수익률은 11%를 웃돈다.

keo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