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먹고 발 빼자"…사전공시 의무제도 앞두고 블록딜 기승
엔켐·에코프로머티·HD현대중공업 등 블록딜 쏟아져
"블록딜 사전공시 의무제, 시장 투명성 강화 도움"
- 문혜원 기자
(서울=뉴스1) 문혜원 기자 = '사전공시 의무제도' 시행을 한 달여 앞두고 주요주주가 블록딜(시간 외 대량매매) 방식으로 지분을 처분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18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전날 엔켐(348370)은 전 거래일 대비 2만 1000원(7.07%) 급락한 27만 6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주가 급락은 엔켐 재무적투자자(FI)가 블록딜에 나섰다는 소식이 전해진 영향이다. 엔켐 주식 70만 5384주가 전날 개장 직전 블록딜 방식으로 체결됐다. 주당 매매가격은 지난 14일 종가(29만 7000원)에 할인율 6.90~8.92%를 적용한 27만 500원~27만 6500원으로 알려졌다. 매각 규모는 1908억 원~1950억 원이다.
이처럼 주요주주가 블록딜에 나서는 경우가 최근 연이어 등장했다. 에코프로머티리얼즈(450080) 2대 주주인 블루런벤처스(BRV)는 블록딜 방식으로 지난달 2046억 원을 매각한 데 이어 지난 13일 2509억 원 규모 지분도 처분했다.
이 밖에도 HD현대중공업(329180)(5월 17일·3497억 원), 에스엠(041510)(5월 28일·684억 원 규모), DS단석(017860)(5월 29일·234억 원) 등에서 블록딜을 통한 주요주주의 대규모 현금화가 이뤄졌다.
문제는 회사의 '기습' 블록딜 공시로 일반 투자자들은 손쓸 겨를도 없이 주가 급락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실제로 블록딜 소식이 알려진 당일 △에코프로머티(1차 -12.52%, 2차 -15.96%) △HD현대중공업(-7.33%) △에스엠(-5.23%) △DS단석(-14.30%) 등이 폭락했다.
블록딜은 다음 달 24일부터 시행될 사전공시 의무제도를 앞두고 쏟아지는 것으로 풀이된다. 블록딜 사전공시 의무제도에 따라 상장사 임원 혹은 10% 이상 보유한 주요주주는 발행 주식 수 1% 이상을 거래할 때 가격, 수량, 기간 등을 최소 30일 전에 공시해야 한다.
제도가 시행되면 모든 투자자가 최소 1개월 전에 블록딜 사실을 인지할 수 있고 이에 따른 매도 압력도 높아진다. 주요주주들은 최대한 많은 주식 매각 대금을 쓸어 담기 위해 블록딜을 서둘러 진행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수정 메리츠증권(008560) 연구원은 "제도 시행 전 블록딜을 완료하려는 니즈가 증가했다"면서 "최근 발생한 블록딜 이외에도 LG에너지솔루션, SK바이오 계열사, 카카오 계열사 등이 블록딜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고 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블록딜 사전공시 의무제도가 시행되면 국내 자본시장이 더욱 투명해질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내놓고 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블록딜 제도 자체는 주가에 중립적인 제도이기 때문에 투자자들은 (사전공시에서) 블록딜 조건 등을 확인하고 투자 의사를 결정할 수 있다"며 "시장에 정보가 사전적으로 제공된다는 점에서 시장 투명성을 강화하는 데 도움 되는 조치"라고 평가했다.
지난 21대 국회에서 관련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던 이용우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투자자들이 대량의 물량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염두하고 거래할 수 있게 하는 취지"라면서 "(블록딜이 예정돼 있을 때) 주식을 팔지 말지, 팔게 되면 어떤 결과가 있을지 미리 알고 있어야 주주가 행동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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