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진 칼럼] ESG 정쟁과 SEC 친환경 공시
(서울=뉴스1)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 2024년 3월 6일 미국 증권관리위원회(SEC)는 3:2 의결로 기후변화 관련 공시 규정을 채택했다. 당초의 시도보다는 다소 약화된 내용이지만 향후 미국의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기업들은 기후변화와 관련된 다양한 정보를 공시해야 한다. KT, 포스코홀딩스, KB금융그룹 등 국내의 10개 기업이 미국 증권시장에 상장되어 있는데 이 회사들은 새 규정에 따른 공시의무를 진다.
새 규정은 관보 게재 후 60일 후부터 단계적으로 발효된다. 회사 규모에 따른 차등도 있다. 2022년 3월에 시작해서 무려 2년이 걸려 완성된 것이다. 그동안 SEC에는 2만2500건의 의견이 접수되었다고 한다. SEC 역사상 최다 기록이다. 그 결과 초안에 들어있던 여러 규정이 삭제되거나 적용 범위가 축소되었다.
향후 재계와 환경단체 양쪽으로부터 소송도 제기될 것으로 예상된다. ESG에 회의적인 각 주 정부도 소송을 제기할 것이다. 웨스트버지니아주 법무장관은 10개 주가 연합해서 새 공시 규정에 대한 소송을 제기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이번에 채택된 규정은 상장기업의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상세 정보 공개를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금도 그와 관련된 공시가 이루어지고는 있지만 기업별로 천차만별이고 일관성도 결여되어 있다는 문제가 있다. 투자자 보호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새 규정의 채택에 반대한 2인의 SEC 위원은 새 규정이 SEC의 권한 범위 밖에 있다는 점과 새 규정의 준수에 상장기업들이 과도한 비용을 지출해야 될 것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원안에는 기업들이 공급망 관련 간접적으로 발생시키는 온실가스 배출도 공시하라는 규정이 있었는데 최종안에서는 사라진 이유다.
SEC의 이번 규정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캘리포니아주는 SEC의 새 규정보다 더 엄격한 규제를 이미 도입한 바 있고 EU와 영국도 유사한 규제를 도입했다. 그 외, 상당수 대기업들이 원료나 부품, 상품 공급자들에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정보 공시를 거래 조건에 이미 포함시키고 있다.
그러나 미국 증시에 상장된 국내 10개 기업은 물론이고 미국 기업의 공급망에 포함되어 있는 국내 다수 기업들은 이번 SEC의 규정에 새로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게 된다.
ESG가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지 이제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다. 학술적, 실무적 논의가 실제 법규로 연결되는 데는 항상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는데 ESG의 경우 그동안 동력을 많이 잃은 상태다. ESG의 대부 블랙록의 래리 핑크도 ESG 개념이 문화투쟁의 도구가 되었다며 더 이상 쓰지 않겠다고 한다. 그러나 초창기에 준비되기 시작한 규제는 이제야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여기서 혼란이 발생할 것이다. SEC의 새 규정이 시장에서 호응을 받을지는 지켜볼 일이다.
ESG의 G에 대해서는 누구도 이의가 없다. 가장 논란이 많은 문제는 S이고 다음이 E다. 워런 버핏은 “아무도 수술실에 들어갔을 때 실력있는 의사들 보다는 다양한 의사들이 모여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하지 않는다”고 했다. DEI를 핵심으로 하는 S가 영리기업의 운영 목적에 부합하는지는 지속적인 논쟁거리다. E도 사회 전반의 규칙으로서는 아무도 이의가 없지만 영리기업에 적용하는 문제는 다르다. 이번 SEC의 규정 제정으로 논란은 새 단계에 접어든다.
뉴욕증권거래소에만 45개국 약 530개 외국기업들이 상장되어 있다. 이들 기업에는 미국법과 규정이 모국법보다 덜 무섭지 않다. 이들을 통해 미국의 규제가 그 45개국의 법률에 전이되는 효과도 예상된다. 이제 우리 금융 당국과 기업들은 우선 SEC가 이번에 내놓은 850페이지가 넘고 3241개 각주가 달린 새 규정을 공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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