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만에 돌아온 '홍콩發 ELS 손실' 공포…쟁점은 결국 '불완전 판매'

2016년 이어 올해도 손실구간 진입한 H지수 ELS
이복현 금감원장 "은행, 판매 때 적합성 원칙 지켰는지 의구심"

ⓒ News1 김초희 디자이너

(서울=뉴스1) 김정현 기자 = 지난 2016년에도 1년 만에 '반토막' 나며 주가연계증권(ELS)의 원금 손실을 초래했던 홍콩 항셍중국기업지수(H지수)가 재차 급락하며 ELS 투자자들의 대규모 손실이 전망된다.

판매사인 은행·증권사에서도 대응에 나섰지만, 중국 증시 하락이라는 불가항력의 외부요인으로 인해 발생하는 손실에 대해 판매사 입장에서는 뾰족한 방안이 없는 상태다.

반면 금융감독원은 선제적인 점검에 나서면서 은행들의 ELS 판매 과정에서 적합성이 지켜졌는지를 살펴보겠다는 입장이다.

◇2015년에도 '반토막' 난 H지수…되풀이되는 ELS 원금손실 공포

ELS는 파생상품의 일종으로 기초자산의 가격이나 주가지수와 연계돼 수익률이 정해지는 증권이다. 지수와 연계된 상품은 만기까지 가격이 일정 수준을 유지하면 수익이 발생하지만 한 번이라도 '원금 손실 발생 구간'(녹인·knock-in)에 진입하고 만기시 최종 가격이 일정 이하가 되면 원금 손실이 발생한다.

H지수 ELS가 원금 손실 위기에 처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5년 5월 1만5000선이었던 H지수는 약 7개월만에 8000선 아래로 폭락해 녹인에 진입해 '비상'이 걸렸다.

당시 은행 PB센터 등에는 중도해지 문의가 쇄도했고, 금융당국은 'ELS 상황 점검반'을 꾸려 위험 요인 점검에 나서기도 했다.

다만 이때 판매된 H지수 ELS는 2018년 H지수가 1만2000선을 회복하며 대부분 원금 손실 없이 상환됐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다르다. 손실이 예상되는 상품은 지난 2021년 판매된 H지수 ELS 상품으로, 당장 오는 2024년 1월부터 만기가 도래한다.

현재 H지수는 현재 지난 2021년 고점 1만2000선에서 절반가량 내린 6040선에 거래되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H지수가 7000~8000 이상으로 회복하지 못할 경우, 2024년 1월부터 대규모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과 미국 사이의 무역갈등, 중국 내수 부진 등으로 오는 2024년 중국 경제성장률 회복은 어려울 전망이다.

지난 2016년에도 1년 만에 '반토막' 나며 주가연계증권(ELS)의 원금 손실을 초래했던 홍콩 항셍중국기업지수(H지수)가 재차 급락하며 ELS 투자자들의 대규모 손실이 전망된다. ⓒAFP=뉴스1

◇은행권 H지수 ELS 판매액 8.3조원…당장 1월부터 만기 도래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8월 말 기준 홍콩H지수 ELS 발행잔액은 총 20조5000억원으로 이 중 은행 판매분은 15조8000억원에 달한다. 은행 판매분 중 절반 8조3000억원이 오는 2024년 상반기에 만기가 도래한다.

현재 5대 은행의 2024년 상반기 만기도래 물량은 KB국민은행이 4조7726억원으로 절반을 넘는다. 이어 △NH농협은행 1조4833억원 △신한은행 1조3766억원 △하나은행 7526억원 △우리은행 249억원 이다.

판매 물량이 가장 많은 국민은행은 녹인 구간 진입 시 원금 손실 리스크가 더 크다고 여겨지는 '녹인형 상품'을 많이 판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은행에서는 녹인형 상품 판매 물량은 수십억원 수준으로, 주로 투자원금 손실 하한 기준이 없는 '노녹인형 상품'을 판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은행권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노녹인 상품의 원금 손실 가능성이 더 낮다고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h지수가 너무 하락해) 큰 차이가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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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금소법 시행 이후 판매상품…불완전판매 가능성 거의 없어"

은행들 역시 관련 태스크포스(TF)를 꾸리는 등 대응에 나섰지만, 모니터링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은행 관계자는 "TF를 꾸려 시황 모니터링 및 3년 전 가입한 고객들에 대한 안내, 문의사항에 대한 피드백 등 고객 관리 측면에서 운영 중"이라며 "상품 자체에 문제가 있는게 아니기 때문에 은행 입장에서도 답답한 부분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다만 현재 지적되고 있는 불완전판매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입장이다. 이번 상품은 지난 2021년 파생상품 판매 절차가 까다로워진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 시행 이후 판매된 상품이기 때문이다.

현행 금소법은 금융상품 판매업자에게 △적합성과 적정성 원칙 △설명 의무 △불공정 영업행위 △부당 권유 행위 금지 △계약 서류 제공 의무 등을 준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과거 DLF 사태 이후 파생상품 판매할 때 고객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설명해드리고, 원금 손실 발생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설명하는 모든 과정을 녹취하고 동의를 받는데, 상품 하나 판매할 때 그 과정만 30분에서 1시간이 소요될 정도로 복잡하다"며 "불완전판매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은행 관계자도 "은행 내부적으로도 불완전판매 방지를 위해 녹취, 자필서명은 물론, 폐쇄회로(CC)TV까지 본다"며 "다만 불완전판매 기준이 성립하는지 모호한 부분도 있어 분쟁조정까지 가야 실제 어땠는지 드러날 수 있는 사례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2023.11.29/뉴스1 ⓒ News1 유승관 기자

◇ELS 관련 사전점검 착수한 금감원…손실 발생하면 '불완전판매' 들여다본다

그러나 금융감독원 입장은 다르다. 특히 금소법 상 '적합성의 원칙'에 따라 판단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28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최근 일부 은행에서 ELS 관련해 소비자 피해예방 조치를 마련했다고 말하는 건 자기면피로 들린다는 생각"이라고 지적했다.

이 원장은 "(은행들은) 자필 자서를 받았다든가, 녹취를 확보했다든가 해서 불완전판매 요소가 없으니 소비자 보호를 했다는 입장인 것 같다"면서도 "금융소비자보호법의 취지와 적합성의 원칙을 생각하면 그렇게 쉽게 말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ELS라는 고위험·고난도 상품이 다른 곳도 아닌 은행 창구에서 고령자들에게 특정시기에 고액이 몰려 판매됐다는 것만으로 적합성 원칙이 제대로 지켜졌는지 의구심을 품을 수 있다"며 "ELS의 상품구조를 노령소비자, 금융투자 상품 경험이 없는 소비자가 짧은 시간 설명드려 이해시키는 것이 가능한지 자체도 고민해볼 지점"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금융감독원은 판매사인 은행을 상태로 현황점검에 나섰다. 통상적으로 금감원은 손실이 현실화되고 민원이 제기되는 오는 2024년에 검사를 나간다. 그러나 판매과정 등 사실관계 파악을 위해 일부 은행에는 현장점검까지 나간 상태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ELS와 관련해 현재 은행들의 판매현황, 민원 대응 등의 사전 점검을 위해 은행 중 가장 H지수 ELS 판매량이 가장 많은 국민은행에 사전점검차 나가있다"며 "다른 은행들에 대해서도 서면을 통해 보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이 원장은 "민원이나 분쟁조정 상황이 있기 때문에 선제적으로 챙겨보고, 우려하는 (불완전판매) 상황이 실제로 존재했다면 가능한 책임분담기준 만드는 것이 적절치 않나 싶다"고 강조했다.

Kris@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