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유일한 'VASP 수리' 성공…이들은 어떻게 바늘구멍을 뚫었나[인터뷰]

NH농협은행 출신 정구태 인피닛블록 대표 인터뷰
"규제 필요하지만 창업 기업 위한 단계적 적용도 고려했으면"

정구태 인피닛블록 대표가 11일 서울 강남구 인피닛블록 사무실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3.9.11/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서울=뉴스1) 김지현 기자 = 최근 가상자산(암호화폐) 업계에 하루인베스트·델리오 사태와 같은 사고들이 터지면서 금융당국이 가상자산사업자(VASP) 신고 수리 여부를 두고 신중을 기하는 모양새다. 국내 가상자산사업자이지만 고객 자산을 운용하다 사고를 친 델리오로 인해 VASP 신고를 수리한 금융당국의 책임론까지 불거지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국내에서 가상자산 사업을 영위하기 위한 일종의 '허가권'의 의미를 지니는 VASP 등록이 어려워지고 있다. 그런 가운데 올해 딱 한 군데만이 당국으로부터 VASP 신고 수리를 받았다. 법인 전용 커스터디(수탁) 회사인 '인피닛블록'이 그 주인공이다.

◇ 정구태 대표 "VASP 수리부터가 사업 시작점이라 생각…정부사업 참여에 집중"

국내 37번째 가상자산사업자이자 올해 처음으로 당국으로부터 VASP 신고 수리를 받은 인피닛블록은 NH농협은행 출신인 정구태 대표가 이끌고 있는 가상자산 수탁 업체다.

최근 <뉴스1>이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인피닛블록 본사에서 만난 정구태 대표는 우선 VASP 신고 수리를 받을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해 "최대한 현재까지 만들어진 법 테두리 안에서 사업을 지속하기 위해 노력했다"며 "VASP를 받지 않은 기업들은 국내에서 영업 행위를 할 수 없다는 점 등을 지키기 위해 1년 반 여 동안 VASP 신고 수리 직전까진 일절 영업 행위를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당국은 VASP 수리를 받지 않은 채 국내 가상자산 투자자를 대상으로 영업 행위를 하거나 한국어 서비스 등을 진행하는 이들에 대해 특금법상 5년간 VASP 신고를 제한한다고 밝힌 바 있다.

정 대표에 따르면 인피닛블록은 법인을 대상으로 하는 수탁 기업이지만, 회사 투자를 명목으로도 영업 행위를 진행한 바가 없다. 해석에 따라 나뉠 수 있는 '영업 행위'조차도 일절 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정 대표는 "VASP 신고 수리부터가 본격적인 사업의 시작이라고 생각했다"며 "이를 위해 신고 수리 직전까지 영업이 아닌 대외적인 정부 사업에 집중했다"라고 말했다.

실제 인피닛블록은 지난해 설립된 이후 적극적으로 정부 사업에 뛰어든 이후 △특허청 주관 직무발명보상 우수기업 △서울경제진흥원 주관 이노베이션 비즈교류 성과확산 지원사업 △정보통신산업진흥원 주관 블록체인 컨설팅 공모사업 △한국인터넷진흥원 주관 블록체인 기업 혁신성장 지원프로그램 선정 등의 성과를 이뤄냈다.

◇ "규제 필요하지만 창업 기업 위한 단계적 규제 적용도 고려했으면"

다만 정 대표는 국내 가상자산 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현재보다 VASP에 대한 '허들'이 낮아질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초기 단계에 위치한 가상자산 산업을 과거 초기 핀테크 산업과 비교하면서 "같은 초기 단계라고 봤을 때 가상자산 산업이 핀테크 산업보다 빡빡한 규제를 맞이한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가상자산 산업의 경우, 진입 단계부터 높은 수준을 요구하기 때문에 특히 가상자산과 관련해 초기 창업 기업들이 성과를 낼 때까지 과정을 버티기가 쉽지 않은 구조"라며 "규제의 잣대는 리스크 관리를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기업의 사업 초기 단계가 아닌 시기나 규모면에서 단계적으로 규제를 적용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가상자산 산업에 뛰어드는 창업 기업에는 돈과 인력이 필요한데, VASP 신고 수리 전 영업 행위를 할 수 없다는 국내 규제의 특성상 타 기업으로부터 전략적 투자를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사업 진행 초기부터 전략적 투자를 받지 못한다면 사업을 계속해서 진행할 수 없고, VASP 신고 수리 시점뿐만 아니라 투자를 받는 시점도 다소 불투명하다 보니 블록체인 인재를 사업 초기부터 합류시키기도 힘들다. 이로 인해 가상자산 산업이 유망 산업으로 분류되더라도 쉽게 창업을 시도하기 어렵다는 게 정 대표의 시각이다.

이에 그는 "기업의 설립 이후 일정 유예 기간을 두거나 규제 적용을 특정 기업이 실제 매출을 일으키기 전까지는 사업 단계를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들이 조금 더 열려있으면 한다"며 "그렇게 창업 기회가 넓혀질 경우, 가상자산과 관련해 다양한 기능을 가진 기업들이 생겨날 것이고 이는 곧 리스크의 분산화로 이어진다"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는 규제 허들 속에서도 가상자산과 관련된 사업을 펼치고자 하는 기업들에게 조언도 잊지 않았다. 그는 "현재로서는 금융당국이 요구하고 있는 기본적인 사항들을 '사업적인 측면에서 반드시 필요하다'라는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그래야 신고 수리를 받고 나서 본격적으로 구상한 사업의 비전을 펼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정구태 인피닛블록 대표가 11일 서울 강남구 인피닛블록 사무실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3.9.11/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초기 단계인 가상자산 산업, 리스크 최소화 위해선 산업 구조 세분화해야"

정 대표는 국내 가상자산 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현 가상자산 산업의 구조가 리스크를 분산할 수 있도록 세분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상자산 산업은 아직 초기 단계에 해당하면서도 영향력을 미치는 범위가 국내로 한정되는 것이 아닌 글로벌까지 이어져 예상치 못한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리스크가 터질 가능성도 있어, 가상자산 산업이 핀테크 산업처럼 산업 구조가 기업의 기능에 따라 세분화된다면 리스크가 연쇄적으로 발생하지 않아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는 현 가상자산 산업의 구조와 관련해 "우리나라는 거래소가 맡고 있는 기능들이 지나치게 많은 편"이라며 "가상자산 거래소가 실제적으로 거래 외에도 가상자산 보관 및 예치, 스테이킹 사업까지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거래소가 이러한 여러 기능들을 한번에 다 수행하기 보다는 예치나 수탁의 경우에는 예치와 수탁을 전문으로 하는 사업자들에게 전가하는 게 리스크 측면에서 옳다고 본다"며 "실제 국내에선 거래소가 없으면 자산 결제나 운용 사업도 향후 영위할 수 없을 수 있기 때문에 거래소 개수도 더 많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구조와 관련해서도 "국내 가상자산 시장 규모가 23조원에 달하는데 대부분이 원화마켓 거래소에 집중돼 있다"며 "5개의 거래소만이 집중적으로 거래소 사업을 영위하는 것이라면 경쟁체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이정도 자산 규모라면 최소한 10개 정도의 원화 거래소가 필요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정 대표는 "거래소 규모도 비슷한 수준이 돼야 가상자산 산업에 참여하고자 하는 기업들의 포트폴리오도 다변화될 것"이라며 "그렇게 된다면 글로벌 가상자산 시장으로부터 국내 가상자산 산업이 충격을 받더라도 리스크의 범위를 최소화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끝으로 그는 "투자에 있어서도 리스크 분산이 굉장히 중요한 덕목인 것처럼 우리나라 가상자산 시장에 있어서도 단순히 기술 발전을 통한 보안만 강화하는 게 아니라 내부통제면에서도 보안을 강화하는 게 중요하다"며 "향후 생태계가 상호 견제와 균형이 가능한 구조로 발전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mine124@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