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대출 뇌관된 정책대출…정책 혼선이 문제 키웠다[디딤돌의 배신]①

디딤돌·버팀목 등 정책대출, 가계대출 증가 주범 중 하나로 지목
정부의 정책 혼선 및 오락가락 메시지가 더 문제라는 지적도 제기

서울의 한 시중은행에 금융당국의 정책대출 상품인 디딤돌·버팀목 대출 관련 현수막이 걸려 있다. 2024.6.12/뉴스1 ⓒ News1 박지혜 기자

(서울=뉴스1) 김현 기자 = 디딤돌·버팀목 등 정부가 확대해 온 정책대출이 가계대출 증가의 요인 중 하나로 지목되면서 금융당국이 '규제'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그러나 서민의 '주거 사다리' 역할을 하거나 투기성이 없는 정책대출까지도 규제 여부를 검토하면서 실수요자들의 반발도 커지고 있다. 일각에선 가계대출 문제는 정책대출의 탓이 아닌 정부의 정책 혼선이 불러일으킨 것이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21일 금융당국 등에 따르면 지난 9월 금융권 가계대출은 5조 2000억 원이 증가해 직전월(9조 7000억 원) 대비 증가폭이 절반으로 줄었지만, 정책대출은 오히려 늘었다. 디딤돌과 버팀목 등 정책대출은 지난 8월 3조 9000억 원이 증가한 데 이어 9월에도 3조 8000억 원이 늘었다.

이로 인해 가계대출 증가의 주범 중 하나로 정부가 공급하고 있는 정책대출이 도마 위에 올랐다.

실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안도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은행권 주택담보대출(주담대) 현황' 자료에 따르면 올해 8월 기준 은행권을 통해 집행되는 정책대출은 지난해부터 은행권 주담대의 73%를 차지해 가계부채 확대를 이끈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정부가 지난해엔 특례보금자리론, 올해는 신생아특례대출 등을 중심으로 정책금융 공급을 확대한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정부는 지난해 저금리와 고정금리 등을 앞세운 특례보금자리론(주택가격 9억 원 이하) 출시 이후 44조 원이 공급되는 등 가계대출 증가세가 커지고 집값을 부추긴다는 지적이 제기되자 올해 초 공급을 중단시키고, 소득기준(부부합산 7000만 원 이하)과 주택가격 기준(6억 원) 등을 환원시켰다.

정부는 또 기존 디딤돌 대출에 저출생 대책 차원에서 올해 1월말 소득기준(1억 3000만 원 이하)과 대상주택(9억 원 이하) 범위를 넓힌 신생아특례대출을 추가로 출시했고, 2월말 1976억 원이었던 신생아특례대출 잔액은 지난 8월 기준 4조 1315억 원까지 급증했다.

당초 올해 초 이미 정책대출이 가계대출의 뇌관으로 떠오를 수 있다는 내부 문제제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출산율 증가, 주거 사다리 지원 등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정책금융 확대에 열을 올렸다.

결국 정책대출의 급증은 집값 상승을 부채질했고, 가계대출 관리에 어려움을 더하는 등 적지 않은 우려를 낳고 있다.

우선 정책대출 대부분은 6억 원 미만 저가 주택에만 공급되지만, 해당 주택을 매도한 뒤 또 다른 대출을 더해 상급지로 이동하려는 수요를 자극하면서 집값 상승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창용 한국총재는 지난 9월 '대한민국 전환과 미래포럼' 자료집에서 "주거비 부담 완화를 위한 (정부의) 정책금융 확대와 집값 상승간 악순환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정책대출은 가계대출 규제의 예외를 만들면서 가계부채 관리에 어려움을 준다. 정책대출은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등의 적용을 받지 않는 데다 조건만 맞으면 대출을 실행해야 하는 만큼 은행 등 금융사들의 대출 총량 관리에 부담을 더한다.

이와 관련,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재섭 국민의힘 의원이 최근 공개한 '금융권 가계대출의 DSR 적용 현황' 자료에 따르면, 올 상반기 은행권 신규 가계대출(187조 원) 가운데 디딤돌(구입)·버팀목(전세) 등 정책모기지를 포함한 DSR 미적용 가계대출(118조 원) 비율이 전체의 63.3%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당국의 가계부채 관리에 있어 커다란 구멍이 존재하는 셈이다.

정책대출을 사용하는 소비자들은 대부분 실수요자지만, 가계대출 증가의 주범으로 꼽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러나 일각에선 가계부채 문제의 근본적 원인은 정책대출 자체가 아니라 정부의 정책 혼선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의 정책 혼선과 오락가락 메시지는 금융소비자들의 불안과 집값 상승을 부채질하고, 대출 수요 급증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가계대출과 관련한 정부의 정책 혼선은 지난해부터 계속돼 왔다.

정부는 지난해 특례보금자리론 공급이 크게 늘자 뒤늦게 금리를 인상하는가 하면, 공급을 조기 종료했다. 정책당국이 부동산 경기를 띄우기 위해 특례 상품을 내놨다가 가계대출이 급증하자 조기에 중단하면서 정책 신뢰도만 흔들렸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올해는 당초 7월 시행 예정이었던 스트레스 DSR 2단계 시행을 갑작스레 2개월 연기하기도 했다. 이는 당시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과 맞물려 '부동산 경기 회복' 분위기를 조장했고, 가계대출 급증을 초래했다. 7~8월 가계대출 관리 과정에서 금융당국의 오락가락 메시지는 시장의 혼란을 더 부추겼다는 지적이 나왔다.

정부는 또 21일부터 한도 축소 등 디딤돌 대출 규제를 기습적으로 시행하려다 실수요자들의 불만이 폭발하자 지난 18일 잠정 유예로 선회하기도 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정부 정책과 메시지의 혼선은 당국과 정책에 대한 신뢰도를 깎아먹으면서 소비자들의 불안을 부추겨 받지 않아도 될 대출을 받으려는 수요를 자극해 가계부채 문제를 더 키울 수 있다"며 "안정적인 가계부채 관리를 위해선 정부가 일관된 메시지를 내고 정책의 혼선을 줄이는 게 우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만 일부 전문가들은 실수요자 수요와 가계대출 관리의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선 정책대출에 있어 완화했던 요건을 강화하는 등 선별 지원을 하는 데 초점을 둬야 한다고 조언했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과 교수는 "정책자금들이 실수요자라는 측면이 강조돼 주택금융 쪽에서 많은 공급이 이뤄져 왔고, 가계부채 증가에 상당한 영향을 줬다"며 "정책자금은 꼭 필요한 분들에게 '선별 지원'을 해야 가계부채가 늘어나는 것을 줄일 수 있는 만큼 실수요자를 선별하는 방안을 적극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gayunlov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