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들은 주가에 관심 없어요"…상속세에 흔들리는 '경영권'

[K-밸류업 성공조건]주가 상승 시 상속세 증가…대주주 밸류업 반대 이유
"상속세 낮추는 대신 지배구조 투명화·주주환원 확대 유도해야"

편집자주 ...'한류'가 전세계를 사로잡았습니다. 'Korea'도 몰랐던 세계인들이 한국의 음악을 듣고, 한국의 음식을 먹고, 한국의 콘텐츠를 즐깁니다. 그런데 유독 주식 시장만 '코리아 디스카운트'로 체면을 구기고 있습니다. 한국 증시는 자조의 뜻이 담긴 '국장'(국내 증시)으로 불리며 평가절하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기업가치도 '제값'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제값을 받자"는 의지의 발로가 최근 정부가 두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밸류업'입니다. 미운오리 새끼에서 백조로 거듭나는 과정은 한순간에 이뤄지지 않습니다. 은 밸류업이 한때의 '유행'으로 그치지 않도록 'K-밸류업의 성공조건'을 끊임없이 진단하며 '제값'을 넘어 '프리미엄'도 노리는 K-증시의 변화를 도모하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 News1 윤주희 디자이너

(서울=뉴스1) 신건웅 기자 = "기업들이 굳이 주가를 높일 대책을 발표할 이유가 없지 않나요?"

정부의 '밸류업 지원방안 세미나' 후 모 기업 관계자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그는 자율적으로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한 대책을 내놓기에는 인센티브가 턱없이 부족하다고 봤다.

특히 대주주 입장에서 기업 밸류업은 여전히 부담스럽다는 반응이다. 기업가치가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상속이나 증여 때 내야 할 세금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경영권 승계를 염두에 둬야 하는 입장에서 주가 상승을 누르는 것이 유리하다. 주가가 오르기만 바라는 소액주주와는 애초에 이해관계가 다르다.

기업들은 밸류업 동참을 위해 세제혜택을 강조했다. 상속세와 증여세를 낮춰 경영권 승계 부담을 줄이고, 주주환원에 나설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상속세에 흔들리는 '경영권'…승계 위해 주가상승 막아야 하는 실정

29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의 직계비속에 대한 기업승계 관련 상속세 최고세율은 50%에 달한다. 여기에 최대주주 주식 할증과세까지 더하면 60%까지 늘어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가 중 가장 높은 수치다.

덕분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상속세와 증여세 비중은 0.7% 수준으로 최상위권이다. 세수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OECD 평균은 0.4%인데 반해 한국은 2.4%로 높다.

세율이 워낙 높다 보니 경영권 승계를 항상 염두에 둬야 하는 오너가(家) 입장에서는 주가 상승이 부담스럽다. 자칫 기업가치 상승으로 내야 할 세금이 늘어나면 지분 매각 등으로 경영권이 흔들릴 수 있다. 주가가 하락할수록 세금을 적게 내고 상속받을 수 있는 셈이다.

김수현 DS투자증권 연구원은 "국내 중견 지주회사 오너들과 미팅을 해본다면 그들 상당수가 주가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며 "주가를 최대한 낮춰야 상속세를 절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60%에 달하는 상속세율이 적용되는 기업의 경우, 경영권을 유지하기 어려운 구조다. 100% 기업 지분을 보유한 창업 1세가 2세에게 기업을 승계하면 2세 지분은 40%로 줄어든다. 3세까지 승계하면 지분율은 16%만 남는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세금 문제 등으로 가업 승계 대신 매각이나 폐업까지 고려했다는 기업은 42.2%에 달한다.

이러다 보니 경영권을 포기하는 사례까지 나오고 있다. 앞서 넥슨(NXC)은 고(故) 김정주 창업주가 별세 후 유족들에게 약 6조 원 규모의 상속세가 발생했다. 막대한 세금에 유족들은 NXC 지분 29.3%를 정부에 물납하며 경영권을 포기했다. 이후 정부는 두 차례 공개입찰 시도했으나, 모두 유찰됐다.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041510) 대표 프로듀서도 자녀에게 지분을 넘기는 대신 매각을 택했다.

'밸류업 모범생'으로 꼽히는 메리츠금융지주(138040) 역시 지난 2019년 최대 주주가 승계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후에야 지배구조를 전면 개편하고 주주환원을 대폭 늘렸다.

일본의 밸류업 정책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도 기업의 소유구조가 한국과 달랐기 때문이다. 일본의 시가총액 상위 10개사를 살펴보면 이 중 대부분이 공적연금 혹은 금융회사가 소유하고 있다. 실제 소니의 최대주주는 블랙록이며, 미쓰비시는 신에쓰화학공업, 히타치는 공적연금이 가지고 있다. 일본전신전화는 일본 재정부 소유다.

일본의 경우 '재벌'이라는 개념이 거의 없다 보니 대주주와 개인주주의 이해관계가 일치할 수 있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26일 서울 영등포구 한국거래소 컨퍼런스홀에서 열린 '한국 증시 도약을 위한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 세미나'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있다. 2024.2.26/뉴스1 ⓒ News1 김도우 기자

◇ 상속세 낮추려면…대주주 신뢰회복·주주환원 늘려야

기업들은 밸류업의 성공을 위해 최대주주 할증과세를 폐지하고, OECD 평균(25%) 수준까지 상속세를 낮춰야 한다고 봤다.

이미 OECD 35개국 중 11개 국가가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상속세를 폐지한 바 있다. 대신 호주, 캐나다, 스웨덴 등은 자본 소득세로 이를 대체했다.

한국도 밸류업을 위해 대주주의 세금 부담을 줄여주는 대신 의무적으로 소액주주 및 해외투자자 등과 소통을 강화하고, 기관투자가의 경영 참여를 늘리자는 주장이다. 또 배당을 확대하고, 자사주 매입·소각 등을 확대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정부도 현재 상속세가 과도하다는 데 공감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17일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개최한 민생토론회에서 "상속세가 과도한 할증 과세라는 데 국민적 공감이 필요하다"며 상속세 개편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다만 세제개편에 앞서 대주주의 신뢰 회복이 먼저라는 지적도 있다. 최근 3년간 금융감독원이 적발·조치한 미공개 정보 이용 사건은 56건(혐의자 170명)이다. 이중 절반이 대주주와 임원들이다. 대주주가 사익만 챙기고, 소액주주들은 피해를 보는 사례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상속세 개편은 여론의 지지를 얻기 힘들다. 대주주의 인식전환부터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남우 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세제 개편을 하되 경영진이 주주환원이나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하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keo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