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 포기하려는 10세 소년의 일기…'연소일기' 그 처연함에 울다 [시네마 프리뷰]
13일 개봉 영화 '연소일기' 리뷰
- 정유진 기자
* 영화의 주요 내용을 포함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서울=뉴스1) 정유진 기자 = 입시 압박이 심한 한 고등학교 교실의 쓰레기통에서 주인을 알 수 없는 유서 내용의 편지가 발견된다. 심상치 않은 내용에 정선생(노진업 분)은 일기의 주인을 찾아 나선다. 영화는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다"라는 편지 속 한 마디로 인해 자신의 과거를 떠올린 정 선생의 기억을 따라간다.
정 선생의 기억 속에는 어린 두 형제 요우제(황재락 분)와 요우쥔(하백염 분)이 있다. 실력 있는 변호사인 형제의 아버지는 자녀 교육에 대해 무척 엄격한 잣대를 갖고 있다. 그는 아이들이 경쟁 사회에서 생존해 성공하기를 바라고, 이를 위해 때때로 폭력이 좋은 처방이 된다고 생각한다. 아버지의 이 같은 교육 방침에 따라 키워진 형제는 전혀 다른 결과물을 내놓는다. 동생 요우쥔은 공부를 잘해 영재 소리를 듣는가 하면 피아노 대회에서도 상을 받을 정도로 출중한 재능을 자랑한다. 하지만 만화책 읽기를 좋아하고 상상력이 풍부한 형 요우제는 매번 반에서 하위권을 면치 못하며, 급기야는 유급을 하게 된다.
아버지는 당연한 듯 형제를 차별한다. 요우쥔에게는 인자한 미소를 지어 보이지만, 요우젠에게는 한숨과 책망, 때때로 폭행이 가해진다. 요우젠 때문에 부모는 자주 싸운다. 요우젠은 가족이 함께하는 행사에서도 종종 제외돼 없는 사람 취급을 받고, 그로 인해 소외감을 느낀다. 그런 요우젠은 우연히 홍콩대에 다니는 교장 선생의 아들이 학창 시절 매일 일기를 썼다는 말을 듣고 자신도 똑똑해지기 위해 일기를 쓰겠다 결심한다.
홍콩영화 '연소일기'는 비인격적이고 폭력적인 엘리트주의 교육을 받고 자란 남자가 과거의 트라우마를 대면하고 성장하는 과정을 담았다.
영화 '연소일기'의 힘은 처연함에서 온다. 아버지로부터 학대를 받으면서도 어린아이다운 순수함을 잃지 않는 요우제의 모습에 안쓰러움을 느끼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요우제를 연기한 황재락의 공이 크다. 그는 학대 속에서도 부모의 사랑을 갈망하는 고독한 어린아이를 깊은 눈빛과 해맑은 표정으로 애처롭게 표현해 냈다. 요우제가 겪는 고난이 심화할수록 영화가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비애감은 극대화된다. 자녀의 교육 문제로 부부가 갈등을 겪는 장면이나 아들들에 대한 사랑을 삐딱하고 비인격적인 태도로 표현하는 못난 아버지의 모습은 일견 현실적이다. 하지만 어떤 부분에서 설정의 강도가 지나쳐 조금 작위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이 없지 않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홍콩 명문 학교의 학생과 교사, 학부모들이 보여주는 성적에 대한 노골적인 집착을 지켜보다 보면, 자연히 우리의 현실과도 맞닿는 지점이 있어 씁쓸함을 느끼게 된다. 중반부 이후 등장하는 반전은 -눈치 빠른 관객이라면 알아차릴 수 있겠지만- 후반부에서도 영화의 긴장감을 유지하는 데 일조한다. 탁역겸 감독이 연출과 각본을 맡은 이 작품은 그의 장편 데뷔작이다. 탁 감독은 '연소일기'로 제60회 금마장을 비롯한 홍콩금상장영화제, 아시안 필름 어워즈, 홍콩 감독 조합상 등에서 신인 감독상을 수상했다. 러닝타임 95분. 오는 13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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