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빌론', 할리우드 향한 애증 폭발한 '라라랜드' 심화편 [시네마 프리뷰]

'바빌론' 스틸 컷
'바빌론' 스틸 컷

*영화의 주요 내용을 포함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서울=뉴스1) 정유진 기자 = 빛이 밝을수록 그림자는 짙다. 영화 '바빌론'(감독 데이미언 셔젤)이 그리는 1920년대~30년대의 할리우드는 환상(illusion)과 실체의 격차가 극심했던 시대다. 관객들은 반짝이는 은막 위 아른거리는 빛을 선망하지만, 정작 이것을 만드는 이들은 드글거리는 욕망으로 가득한, 아름답지만은 않은 속물들이다.

영화는 1926년 무성영화 시절, 할리우드 큰손 돈 월락의 파티에서 첫 만남을 갖게 되는 매니 토레스(디에고 칼바 분)와 넬리 라로이(마고 로비 분)의 모습을 그리며 시작한다. 경험이 일천한 무명 배우 넬리 라로이는 빈털털이지만 스스로를 타고난 스타로 여기고 있으며 적당한 기회를 노리는 야심가다. 멕시코 출신으로 파티의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는 웨이터 매니는 성공에 대한 열망을 가득 품은 젊은이다. 매니는 파티장에서 만난 넬리에게 반하고 두 사람 사이에는 사랑인 듯 우정인 듯한 감정이 피어난다.

두 사람 모두 돈 월락의 파티 이후 기회를 잡는다. 넬리 라로이는 어느 영화 속 천박하지만 매력적인 캐릭터로 대중의 주목을 받게 되고, 매니는 당대 톱스타 잭 콘래드(브래드 피트 분)의 눈에 들어 영화 촬영 스튜디오에 입성하게 된다.

1920년대 중반 할리우드의 영화 촬영장의 시스템은 한마디로 엉망진창이다. 무성영화시기이기에 촬영장은 온갖 소음으로 가득하며, 대사는 시도때도 없이 바뀐다. 배우들은 약이나 술에 늘 취해 있으며, 카메라는 준비돼 있지 않은 상황이다. 한쪽에서는 임금 체불에 항의하는 스태프들의 시위가 한창이며, 촬영장에는 제대로 된 안전망이 갖춰지지 않아 죽거나 부상을 입는 이들이 수두룩하다. 데이미언 셔젤 감독은 엉망진창인 당시의 할리우드의 상황을 블랙 코미디 장르로 연출하며 보는 이들에게 큰 웃음을 준다.

카메라를 둘러싼 상황은 난리통이지만, 결국 카메라 안에서 완성된 작품은 아름답기만 하다. 흑백의 무성영화 속 해가 진 노을을 배경으로 연출된 남녀 배우의 키스신, 눈물을 흘리는 여배우의 순수하고 매혹적인 클로즈업 쇼트는 뭉클한 정도로 눈부시다.

영화는 이처럼 치열했던 그 시절의 할리우드를 양가적인 감정으로 좇는다. 할리우드으로 상징되는 쇼비즈니스의 세계는 고대 제국의 타락한 도시 '바빌론'을 떠올릴 만큼 천박하고, 저급하며 때로는 인간의 본성 밑바닥을 확인시켜줄 만큼 추악하다. 무성 영화시대에서 유성 영화시대로, 또 흑백영화시대에서 컬러영화의 시대로 시간은 흐르고 기술은 발달하며, 그에 따라 영화예술의 사조와 외양은 달라질지만 산업의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그 안에서 할리우드의 화려한 불꽃놀이에 빠져있던 사람들은 기계의 부품처럼 제 역할을 끝낸 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영원히 남는 것은 그들이 필름 위에 찍어서 남긴 영화, 오직 그것 뿐이다.

브래드 피트가 연기한 잭 콘래드는 산업의 발달 안에서 결국 소외되고 마는 인간을 상징한다. 재능이 넘치는 배우였던 그도 결국 시간이 지나면 한물간 구시대의 유물 취급을 받는다. 마고 로비가 연기한 넬리 라로이는 할리우드 그 자체다. 관객을 상징하는 듯한 매니의 시선 안에서 넬리는 천박하지만 매력적이고, 얄미울 정도로 엉망이지만 끝내 사랑할 수밖에 없는 데이미언 셔젤의 할리우드, 우리의 할리우드다.

189분이라는 어마어마한 러닝타임이 아깝지 않다. '라라랜드'에서도 한 차례 할리우드와 꿈에 대해 다룬 데이미언 셔젤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는 매니 토레스와 넬리 라로이, 잭 콘래드의 이야기를 통해 100여년 넘게 이어져 온 할리우드와 관객의 로맨스를 화려하고 원초적으로 그려냈다. 유쾌한 미소 안에 권태와 우울을 담고 있는 스타 잭 콘래드를 연기한 브래드 피트와 통통 튀는 마고 로비, 매력적인 신예 디에고 칼바의 앙상블이 훌륭하다. 1일 개봉했다.

eujenej@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