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호 감독 "신념은 어느 순간에도 무너질수있다" [N인터뷰]

16일 개봉작 '보통의 가족' 허진호 감독 인터뷰

허진호 감독 / 하이브미디어코프

"우리가 살아가면서 신념처럼 갖고 있던 윤리, 도덕적 기준이 어느 순간에도 무너질 수 있다는 걸 가져가고 싶었어요."

(서울=뉴스1) 장아름 기자 = 16일 개봉작 '보통의 가족'은 각자의 신념을 갖고 살아가던 네 사람이 아이들의 범죄 현장이 담긴 CCTV를 보게 되면서 모든 것이 무너져가는 모습을 담은 웰메이드 서스펜스 영화다. '8월의 크리스마스'(1998) '봄날은 간다'(2001) '외출'(2005) '호우시절'(2009) '덕혜옹주'(2016)를 선보인 허진호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보통의 가족'은 형제이지만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진 변호사 재완(설경구 분)과 의사 재규(장동건 분)가 자녀의 범죄와 마주하면서 드러나는 이중적인 면모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관객들의 공감을 샀다. 허진호 감독의 밀도 높은 연출력, 설경구 장동건 김희애 수현의 치열한 연기 앙상블, 그리고 인간의 유약한 신념에 대한 메시지까지 담아내며 호평을 끌어냈다.

영화는 네덜란드 작가 헤르만 코흐의 베스트셀러 '더 디너'를 원작으로 한다. 네덜란드와 이탈리아, 미국에서도 영화화된 데 이어 허진호 감독이 한국적 정서로 '보통의 가족'을 풀어냈다. "이 이야기를 한국 사회로 갖고 와서, 자연스럽게 한국적 상황들을 통해서 할 얘기들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는 허진호 감독을 만나 '보통의 가족'에 대한 비화를 들어봤다.

보통의 가족 스틸

-원작 소설이 여러 번 영화화가 됐었는데, 그럼에도 영화화하기로 결심한 계기는 무엇인가.

▶먼저 '보통의 가족' 대본을 읽었고, 그 다음에 영화 2편을 찾아본 후 원작을 읽었다. 만들어진 영화가 있는 작품을 하는 건 감독으로서 좀 부담이 되긴 했다. 그럼에도 이제까지 제가 만든 영화들과 다른 부분들에 대한 얘기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처음에는 정말 고민을 많이 했지만, 이 이야기가 한국 사회로 갖고 와도 자연스럽게 한국적 상황들을 통해서 할 얘기들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한번 용기를 냈다. 또 만들어진 영화가 훌륭한 만큼, 이전 작품들보다 잘 만들어져야 하지 않나. 그런 부분들이 걱정이 됐지만, 해외 영화제를 다니면서 '영화가 좋다'는 얘길 들어서 용기를 받은 것 같다.

-원작의 가장 큰 매력은 뭐라고 생각했나.

▶우리가 살아가면서 갖고 있는 어떤 기준들이 있지 않나. 거창하진 않지만, 저마다 살아가는 데 기준들이 있을 것 아닌가. 자기가 믿었던 도덕적, 윤리적 신념 이런 것들이 어떤 경우에 허물어져 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문제에 있어서 어떤 행동을 취할지 저도 자신이 없더라. 어떻게 보면 사람의 양면적인 면에 대해 전부터 관심이 좀 있었고 그런 부분들이 굉장히 흥미로웠다. 물론 원작은 지금 영화보다 조금 더 복잡한 부분들이 있지만 행복한 가정에서 자녀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이들을 흔들어 놓는가 하는 부분들은 원작과 비슷하게 가려 했다.

-영화화 과정에서 한국적인 상황들을 담으려 했는데, 한국적인 것은 어떤 것이라고 봤나.

▶한국적인 상황은 재규와 연경(김희애 분)이 자녀 시호의 대학 진학을 위해서 강남 쪽으로 전학을 온 설정, 재규 연경이 노모를 모시고 사는 그런 부분이지 않을까 한다. 현재 우리나라 교육 문제도 심각하다. 또 경제적인 이익을 좇는 게 아니라 타인을 위해 봉사하는 것을 우선으로 생각한 부부와 또 다른 한쪽은 경제적인 이득을 취하는 것이 자기 삶의 목표가 되는 그런 형제들의 대비는 이전작하고 다른 부분이 있는 것 같다.

-결말 또한 충격적이었다.

▶결말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어떤 차별점을 줄 수 있을까 그 부분이 연출하는 데 있어 매력적이었다. 영화가 충격을 주기도 하지만, 대중영화로서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는 조금 더 다른 부분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고민을 많이 했다.

보통의 가족 스틸

-설경구 캐스팅 이유는.

▶설경구 배우는 제가 '8월의 크리스마스' 촬영이 끝난 후 일본의 한 영화제에서 우연히 처음 만났는데, 당시 저도 신인 감독이었고 설경구 배우도 영화제 이런 것이 낯설었었다. 그 낯선 느낌에 둘이 잘 어울렸었고 술을 꽤 많이 마시면서 친해졌다.(웃음) 굉장히 좋은 기억이었다. 딱 만났는데 확 친해진 경우다. 같이 작업을 하고 싶었었는데 이게 참 어렵더라. 작업하기가 쉽지 않았었는데 이번에 딱 잘 맞았고, 재완의 느낌이 좀 있었다. 냉철하고 거리도 있으면서 설경구 배우의 모습도 있었던 것 같다.

-장동건과도 재회했는데.

▶'위험한 관계'를 함께 하면서 중국에 오래 같이 있었다. 재규는 보기에 선했으면 좋겠다 했는데, 오랫동안 가까이에서 지켜봤던 장동건 배우 생각이 딱 들었다. 장동건 배우가 강한 연기도 많이 했었는데, 이런 연기는 처음인 것 같더라. '연기를 어떻게 할까' 고민할 때 '동건 씨 같이 했으면 좋겠다'고도 했었다. 영화 초중반까진 캐릭터에 배우 본인의 모습이 있는데, 다른 것들을 크게 보여주지 말고 본인의 모습을 연기하면 어떨까 얘기를 했던 기억이 있다.

-김희애와 호흡은.

▶김희애 배우는 제가 영화 시작하기 전 한참 전부터 굉장히 좋아하는 배우였고 작업하면서 편했다. 네 배우가 모여 식사하는 장면은 굉장히 힘든 장면인데 김희애 배우는 어떻게 보면 저보다도 훨씬 경험이 많으신 분 아닌가. 그럼에도 겸손하다고 해야 할까. 정말 놀랐다. 정말 리드를 많이 해주시기도 하셨고, 목소리만 출연하는 데도 자기가 안 나오는데도 우는 장면에서 실제로 울기도 하셔서 다른 배우들도 다 열심히 똑같이 할 수밖에 없었다. 감정 연기라는 건 그렇게 계속할 수가 없는데 그걸 계속하니까 저도 많이 놀랐던 부분이다.

-수현은 '보통의 가족'으로 한국 영화 데뷔를 했다.

▶수현 배우는 할리우드 영화를 통해 몇 번 봤지만 실제로 만났을 때 밝았다. 그늘이 없고 밝은 느낌이더라. 지수라는 인물이 나이 많은 남자와 결혼해서 호감이 가지 않을 수 있는 인물이었는데, 결국 촬영하면서 '지수만 제일 정상 아니냐' 이런 말도 많이 나왔던 만큼, 그런 느낌을 잘 표현할 수 있겠다 싶더라.

보통의 가족 스틸

-장동건 배우가 앞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허진호 감독과 나눈 이야기를 언급했다. "언제까지 서로의 대표작이 '태극기 휘날리며'와 '8월의 크리스마스'냐"고 했다고 했는데.

▶너무 오래된 영화다. 하지만 감독은 항상 최근작의 대표작이 되고 싶어 하지 않나. 저도 그렇고 장동건 배우도 누가 나를 소개할 때 "'8월의 크리스마스' 만든 감독입니다"라고 소개를 했을 경우에 도대체 "그 영화가 언제 적 작품인가" 할 수 있지 않나. 소개를 하는 입장에선 더 많이 아는 것을 레퍼런스로 얘길 하는데, 최근 작품으로 소개되는 감독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그건 물론 배우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한다. 30년이 다 돼가는 영화를 기억하고 얘기해 주는 것도 고맙긴 하다. 최근 런던 한국 영화제에서 '보통의 가족'을 개막작으로 틀고 '봄날은 간다'도 틀었다. 두 작품 GV를 하루에 했었는데, '이런 작품을 했던 내가 이런 것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은 들었다. 그전에 그런 멜로를 했었지만 '보통의 가족'과 같은 양면적인 모습, 좀 더 긴장이 되는 장르를 해보고 싶었던 부분이 있던 것 같다. 어쨌든 지금의 내가 사는 사회 문제에 대한 어떤 질문들은 한번 해보고 싶었던 생각이 있었다.

-그럼에도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 등 여전히 국내 영화계를 대표하는 멜로 영화를 만든 감독으로 많은 기대를 받고 있다. 앞으로 멜로 작품을 기대해도 좋을지.

▶멜로 영화를 만든 지 오래됐다. 그런데 이제 멜로 영화라는 게 극장에서 보기가 힘들어지지 않았나 싶다. 장르적으로 어떻게 보면 상업적인 힘이 많이 약해진 것 같다. 이제 그럼 어떻게 대중적인 힘을 가져가게 만들 것인가 진짜 고민을 해봐야 할 것 같고 감독으로서도 새로워져야 할 것 같다. 저는 멜로 영화를 좋아한다. 감정이 막 움직이지 않나. 좋았다가 질투도 했다가 원망도 했다가 그리워도 했다가 이런 감정을 보여주는 장르가 많지 않은 것 같다. 이 장르는 배우들이 그런 연기를 할 때 재밌기도 하다. 어떻게 보면 가장 현실에 가까운 연기다.

-'보통의 가족'을 통해 감독으로서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신념처럼 갖고 있던 윤리, 도덕적 기준이 어느 순간에도 무너질 수 있다는 걸 가져가고 싶었다. 저도 개인적으로 살면서 갖고 왔던 기준이 무너질 때가 있다. 제가 재규처럼 아들이 있는데 '난 재규처럼 아이를 위해 대치동으로 이사 가고 이런 건 절대 못 할 거야' '아이들 교육에 과연 그런 게 좋을까' 할 수 있는데 막상 아버지가 되니까 '그래도 대학에 가야 해'라는 이중적인 모습이 나올 수 있는 거다. 사람들은 자신은 이런 기준을 안 어길 것처럼 행동할 때가 있는데 '그렇지 않다'는 얘길 해보고 싶었다.

aluemchang@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