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 공항대교 구현…韓재난영화 스킬 향상은 성과" [여름대전: 제작자들]

'탈출' 제작자 블라드 스튜디오 김용화 감독 인터뷰

편집자주 ...영화계와 관객들 모두 기다렸던 '여름 시즌'이다. 국내 극장가는 올해 역시 상황이 녹록지 않지만, 이번 여름에도 기대작들은 존재하기에 '희망'은 계속되고 있다. 올 여름 한국 영화 기대작들을 탄생시킨 제작자들과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김용화 감독 / CJ ENM 제공

(서울=뉴스1) 장아름 기자 = 지난 12일 개봉한 영화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감독 김태곤/이하 '탈출')는 짙은 안개 속 연쇄 추돌 사고가 일어나고, 붕괴 위기의 공항대교에 풀려난 통제불능의 군사용 실험견들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극한의 사투를 벌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지난 2023년 제76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으로 초청을 받은 것은 물론, 프랑스과 미국,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홍콩, 일본 등 전 세계 140개국에 선판매 쾌거를 이뤄 개봉 전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다.

블라드 스튜디오를 이끌고 있는 김용화 감독은 '탈출'의 성과 중 하나로 이전보다 진보한 한국 재난영화의 스킬을 꼽았다. '탈출' 제작진은 영화 속 배경인 공항대교를 모형이 아닌 실사 수준의 세트로 짓기 위해 1500평 크기의 세트장을 섭외했고, 바닥에 아스팔트를 직접 깔아 실감 나는 대교를 완성했다. 또한 100중 추돌 사고 장면을 위해 300대 이상 차량을 동원해 생생한 재난 현장을 담아냈다. 여기에 VFX(시각특수효과)로 완성한 실험견 에코의 비주얼까지, 놀라운 기술력도 보여줬다.

김용화 감독은 지난 2011년 VFX 전문회사 덱스터 스튜디오를 설립한 뒤 2020년에는 제작사 블라드 스튜디오를 설립했다. '오! 브라더스'(2003) '미녀는 괴로워'(2006) '국가대표'(2009)로 국내 흥행 감독으로 자리매김한 뒤 덱스터와의 시너지로 영화 '신과 함께-죄와 벌'(2017) '신과 함께-인과 연'(2018)의 쌍천만 흥행을 이뤘고, '더 문'(2023)으로 국내 SF 장르의 진일보를 이뤄냈다. 제작자로는 '백두산'(2019)과 '모가디슈'(2021)로도 흥행을 거둔 데 이어 블라드 스튜디오에서의 신작 '탈출'로 또 한 번 더 한국 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VFX 불모지에서 기술력을 끌어올리고, 한국 영화의 외연 확장을 이뤄가고 있는 제작자로서의 김용화 감독을 만나 '탈출' 비화를 들어봤다.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 포스터

-'탈출' 개봉 소감은.

▶최선을 다했다. 영화가 코로나 한참 전에 기획됐었다. 재밌게 보신 분들은 만족하시고, 안 그러신 분들은 아쉽다고도 하시더라. 티켓 가격도 상당히 높아졌고 그런 의미에서 과거와 달리 콘텐츠를 보고 즐기는 것에 있어서 이전과 같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앞으로 관객분들에 발맞춰 (취향과 선호도를) 현실적으로 반영한 작품을 충분히 잘 고려해서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많이 하고 있다.

-'탈출'이 여름 개봉작으로 추진된 과정은.

▶콘텐츠 비즈니스라는 건 (개봉과 관련한) 의사 결정에 있어 파이낸싱의 주체가 되는 투자·배급사의 의견을 많이 들을 수밖에 없다. 요즘 안정적인 시장이 어딨겠나. 한국 영화 중흥기,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4~5년 전까지만 해도 1년에 100편 넘는 영화가 만들어졌었다. 당시 데이터들은 비교적 정확했었는데, 이렇게 지나 보니 이젠 그게 일정 부분 무의미해지기도 했다. 예전엔 8월 첫째 주가 모든 계층의 방학과 휴가가 겹치기 때문에 그 2주가량을 (관객이 많은) 최고의 황금기라고 봤는데, 이제 그것도 의미가 없더라. 패러다임이 바뀌었기 때문에 지금은 과거 데이터를 보고 추정해서 배급하는 시기가 무의미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결국 배급의 가장 좋은 시기는 특정 계절이나 날짜가 아니라 '영화가 없는 날'이라고 할 수 있는 것 같다. 제일 중요한 건 (배급 시기보다) 콘텐츠 본질이라고 믿지만.

-영화의 시작은 김태곤 감독이 국토대장정 중 만난 들개에게 영감을 받은 데서 비롯된 것으로 알고 있다. 공동 각본과 제작으로 함께 하게 됐는데. 각본에 참여하며 중점을 둔 부분은.

▶김태곤 감독과 인연은 장혜진 총괄 프로듀서가 섭외해서 맺게 됐다. 초반엔 조금 더 다크한 이야기였다. 개를 다루고 있는 시나리오였는데, 개가 인간에게 가장 친밀한 반려동물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제작진이 판단할 땐 초고는 이야기가 강했다. 이후 김태곤 감독과 박주석 작가가 좀 더 보편적이고 대중적인 이야기에 멀티플한 주인공들이 있는 이야기로 디벨롭을 했고, 저는 여기에 윤색 정도로 시작을 했다가 각본을 함께 하게 됐다. 요새는 어떤 프레임이 씌워지면 그걸 굉장히 신파적으로 이해를 하게 된다. 이걸 거북해하는 이들도 있어서 그런 부분을 줄여가자는 선택을 하기도 한다. 인물의 관계성이 있는 부분이 어떻게 빌드업이 돼서 마지막에 폭발시켜 주느냐의 차이인데 그런 부분에서 안배를 잘 하려 했다.

-당시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다른 재난영화와는 또 다른 어떤 강점이 있을 거라고 봤나.

▶기존 한국 영화에서 볼 수 없는, VFX로 구현한 실험견이 2시간 동안 나온다는 점이었다. 과거 장면에서의 실험 개 훈련 장면을 제외하고는 모든 부분을 개가 연기할 순 없었기 때문에 도전해야 하는 부분이었다. 또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이 인간을 공격한다는 부분에서 새로운 시도가 아닌가 했다. '인간의 잘못된 선택이 우리와 가장 가까웠던 동물을 악마로 만들 수도 있구나'라는 걸 상업영화, 대중영화로서도 놓치지 않고 잘 갖고 갔다는 점이 강점이라고 봤다.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 스틸

-'백두산'에 이어 '탈출'은 제작자로 참여했지만, '신과 함께' '더 문' 등 규모가 큰 작품 경험이 풍부한 감독이기도 한 만큼, 김태곤 감독 또한 조언을 구한 부분이 있나.

▶제가 감독을 할 때 어떤 제작자를 만나고 싶은가 생각해 보면 '참견을 안 했을 때가 좋았다'고 얘기하지만, 작품에 대한 만족도가 높지 않았을 때 생각해 보면 '제작자가 왜 조금만 더 강력하게 들어와서 조언을 안 해줬을까'라는 결과론적인 얘길 하게 된다. 어찌 됐든 감독은 2~3년 동안 겪어야 할 엄청난 고통이 있다. 그런 걸 알다 보니까 조언을 적극적으로 하기 어려울 때도 있어서, 후반에 조금 더 도움을 많이 주려고 노력했다. 감독으로서의 김용화가 아닌, 제작사로서의 롤이 있는데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조금 더 가감 없이 소통하고 많이 도와야겠다는 생각은 들더라.

-재난 영화다 보니 스케일과 CG 등에서 과제가 컸을 텐데, 제작자로서 고민이 컸던 부분은.

▶연출에 관한 부분이기도 한데 실제 자주 발생하지 않는 상황이라 해도 그 사건을 대하는 인물의 태도나 연기가 리얼하길 항상 바란다. 예컨대 시나리오에 어떤 자의를 갖고 관객들에게 긴장의 텐션을 풀어줘야 할 때, 동시에 설명을 잘 해야 하는 추가적인 목적이 있을 때가 있다. 이때 배우의 연기가 연출과 잘 맞물려져서 설명을 설명처럼 들리지 않게 하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인물들이 어떤 부분에 임할 때 리얼하게 임해야 하고 자기 목적에 투철하게 보여야 하기 때문에 그런 부분들을 감독과 얘길 많이 하긴 했다.

-실험견이 소재이다 보니 CG에서도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무술팀이 직접 액션을 하면서 만들어가는 과정이 있었는데.

▶한국 영화 시장 내에서 이 정도 예산으로 얼마만큼의 완성도를 갖고 갈 수 있을까 항상 고민한다. '신과 함께'도 그렇고 '더 문'도 그렇고 이 정도 예산에서 얼마큼 구현이 가능한지, 또 시청각적 체험에 있어서 어느 정도 가능한지 여부를 따져봐야 하는데, 개로 생명체를 했을 때는 불가하다고 봤다. 덱스터가 아시아에서 (VFX를) 제일 잘하는 회사임에도 인건비 대비 시간을 생각했을 때는 쉽지 않았다. 이게 생명체일 경우 털에 대한 이슈를 제외하고도 애니메이션이 굉장히 스킬풀해야 하는데 그게 어렵더라. 어렵다는 게 못해서가 아니라, 미국처럼 그 정도 시장이 확보된 상태에서 예산을 써야 하는데 그게 불가능하다고 봤다. 이물감 없이 완벽하게 했었어야 하는 것인데 이렇게 보면서도 드는 아쉬움은 예산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역시나 이 예산으로는 살아있는 개를 2시간 동안 뛰어놓게 하는 건 진짜 1억불 정도 들지 않으면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 할리우드와 국내 영화계 예산 차이는 어느 정도인가.

▶최소 3배는 난다. 요즘은 상용화된 소프트웨어들이 굉장히 좋아졌다. 덱스터를 처음 만들었을 때만 해도 차이가 컸는데 상용 툴도 굉장히 잘 나와 있고 덱스터 같은 경우 아티스트들도 이런 영화를 많이 하다 보니 굉장히 (수준이) 올라와 있다. 그다음에 어느 정도의 완성도를 올릴 것인지는 결국 시간 대비 비용이다.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 스틸

-초반 몰입도가 높았던 연쇄 추돌 장면에서 공항대교라는 공간이 중요했다. 익숙한 공간이다 보니 사실적인 구현에서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우려했던 것보다 제작진이 프로덕션에서 고생을 많이 했던 것 같다. 대전에 있는 세트가 약 1500평 크기였는데, 콘텐츠 활성화를 위해 조금 더 대형화된 세트장이 필요하다. 데이라잇(Daylight) 주간을 활용할 수 있으려면 빛의 양 때문에 3000평 정도의 크기에 높은 층고가 필요하다. 그래서 1500평짜리에 다리를 그 정도 사이즈로 옮겨놓고 라이팅을 하면 과연 그 느낌을 낼 수 있을까 해서 아예 주간을 없애고 하루 밤 사이 일어난 일로 바꿨다. 그래서 예상보다는 비주얼적으로 굉장히 잘 나온 것 같다. 미국이라면 적어도 5000평 이상 실내 세트장에서 진행했을 텐데 작은 실내 세트장에서 많은 빛을 사용하지 않고도 여러 후반 작업의 스킬도 좋아졌고, 공항대교에 있는 것처럼 무리 없이 표현이 잘 됐다는 건 일정 부분의 성과라고 느껴진다.

-이선균 배우는 재난 영화를 해본 적이 없었다고 하더라. 정원 역할로 이선균 배우를 떠올린 이유는.

▶이선균 배우가 봉준호 감독님 영화 '기생충'에도 나오면서 세계적으로 얼굴이 알려지기 시작했고, 당시 배우로서 주가가 굉장히 높아졌을 때였다. 감독과 프로듀서가 이선균 씨를 꼭 했으면 좋겠다고 했었다. 결과물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어떤 상황 속에 빠져들어서 자구책을 마련하려고 하는 기민한 느낌이 굉장히 훌륭하더라. '끝까지 간다'에서도 그것이 강점이었었는데 '이 배우가 되게 훌륭한 배우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감독님 같은 경우도 재난 영화가 처음이라 규모라든지 이런 측면에서 어려워하거나 혼란스러워하는 부분도 있었는데 배우가 감독에게 연출적으로도 도움을 많이 줬던 현장도 목격을 했다. 제작진이 이 신이 굉장히 복잡하고 어려운 신이라고 하면 실제로 현장 공기가 싹 바뀐다. 그 준비가 얼마만큼 됐는지는 주연 배우가 제일 잘 안다. 자신이 속한 집단의 하나의 공동체적 목표 안에 들어와서 그걸 잘 인식한 배우의 태도인지, 스쳐 지나가는 많은 작품 중 그냥 한 작품일 뿐이라고 생각하는지 태도가 딱 두 가지인데 이선균 배우는 완벽한 전자다. 어떻게든 자구책을 마련해서 시너지를 내려 조언도 많이 하고 헤쳐 나가더라. 개인적 관계를 떠나 감독과 제작자 입장에서 보면 굉장히 훌륭하고 재능 있는 배우 하나를 잃었다는 점이 아쉽고 속상하다.

-'신과 함께' 시리즈로 함께 흥행을 이뤘던 주지훈 배우와 이번 작업은.

▶주지훈 배우와는 같은 곳에 살아서 자주 본다. 배우로서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모험을 하는 부분에 있어서 자의식이 없다. 시쳇말로 망가진다는 표현으로 가볍게 얘기하는데 배우마다 해석은 다를 수 있지만 본인이 그런 면에서 부정적이거나, 사회적 위치에서 약하거나 낮아 보이는 캐릭터를 갖고 오는 데 있어 굉장히 자신감이 있어 했다. 또 그게 작품에 도움이 된다고 하면 역할의 비중이나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그 작품에서 그 역할이 필요하다고 하면 충분한 배움을 즐기는 배우라는 큰 장점이 있다. 배우로서 어떠한 캐릭터든 모범적인 측면에서 노력하는 건 굉장히 높게 살만하다.

-홍경표 촬영 감독이 핸드헬드로 상당 부분 촬영을 했다고.

▶홍경표 감독님은 우리나라에 몇 안 되는, 손꼽는 촬영 감독이시다. 그분은 그냥 감독을 하셨어도 잘하실 분이라는 생각이 들 만큼 감성적이시다. 본인의 해석이 작품적으로 잘 맞을 때 그만큼의 동력이 나오시는 분이시기도 하다. 실제로 편집본을 보면서 든 생각은 홍경표가 달리 홍경표가 아니구나 싶을 정도로 샷을 다루는 데 있어 미학적인 감각이라고 해야 할까,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그 무엇인가가 있구나 하는 걸 많이 느꼈다.

-블라드 스튜디오 설립 후 CJ ENM, 덱스터와 어떤 시너지를 내고 있나.

▶이제 설립 3~4년 차가 됐다. 그간 지내보면서 제일 하고 싶었던 회사가 CJ ENM이었다. 막상 와서 보니 조직이나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더라. 당사와는 중장기적으로 계약을 맺어 시작했는데 저와 블라드 스튜디오에는 한국에서 만들어지기 어려운 영화를 기대하시는 것 같다. 남들이 똑같이 다 할 수 있는 것을 이 회사에서 한다는 건 큰 의미가 없을 것 같아서 조금 더 글로벌하게 할 수 있는 소재와 이야기를 계속 도전하는 게 블라드 스튜디오의 존재 이유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제작자로, 혹은 감독으로 끌리는 이야기는.

▶고통받는 인간 이야기에 끌린다. 그런 인간을 위로해 주고 싶은 게 우리의 이야기 같기도 하다. 이야기의 트렌드가 바뀐다고 하지만, 인간은 언제까지나 위로받아야만 하는 존재라고 생각을 한다. 스토리와 감정을 잘 다룰 수 있는 시나리오와 작품으로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임하고 있다.

-앞으로 차기작은.

▶'신과 함께 3편 시나리오 기초 작업에 들어갔고, 회사 내 작품 중 하나인 OTT 시리즈가 있다. 직접 쓴 게 아닌 남의 글을 보고 연출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게 처음인 만큼 잘 본 시나리오다.

aluemchang@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