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망 구축 곳곳서 발목…AI·반도체 등 미래첨단산업 어쩌나

한전, 전력망 건설 지연 사례 빈번…150개월 이상 지연 사업도
산업계 "전력망특별법 서둘러야"…26일 산자위 소위서 논의

환경운동연합 활동가들이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 전면 재검토를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2024.11.20/뉴스1 ⓒ News1 오대일 기자

(세종=뉴스1) 이정현 기자 = AI(인공지능)·반도체 등 첨단산업 분야가 수출경제를 주축으로 한 우리 경제의 미래 먹거리 산업이라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문제는 기존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와 달리 이들 첨단산업에는 막대한 양의 전력 공급이 뒷받침돼야 하는데, 현재 우리나라 송전선설비는 이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라는 점이다.

전력 수요를 감당할 생산설비 구축도 문제지만, 이를 수요처에 보낼 고속도로를 깔지 못한 채 아까운 시간만 흘러가고 있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산업계에서는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전력망특별법)'이 하루빨리 국회를 통과해야 한다는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일분일초 아까운데" 한전, 근거 없는 전자파 괴담에 송배전 설비 구축 허송세월

25일 한국전력 등에 따르면 전국 곳곳에서 전력망 건설 지연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나날이 증가하는 전력 수요에 송·배전 전력망 적기 구축이 시급하지만, 전자파 안전성 등을 이유로 건설지 인근 주민들이 반대하고 나서면서 사업에 차질을 빚고 있다.

주요 지연 사업을 보면 △500㎸ 동해안-수도권(66개월) △345㎸ 북당진-신탕정(150개월) △345㎸ 당진TP-신송산(90개월) △345㎸ 신시흥-신송도(66개월) △345㎸ 신장성S/S, 송전선로(77개월) 등이다. 이들 지역 대다수는 입지선정을 기약 없이 미루거나, 사업 인허가를 불허하는 방식으로 사업에 비협조적인 것으로 전해진다.

한전의 전력망 구축사업이 애를 먹는 가장 큰 원인은 이전부터 이어져 온 '전자파 안전성'에 대한 우려다.

발단은 과거 1979년 미국 덴버지역 소아암과 전력선 자계 노출 관련성 연구에서 '송전선로 주변 주거지역 소아백혈병 발병률이 높다'는 결과를 발표하면서 시작됐는데, 이후 이를 입증할 만한 과학적인 후속 연구 결과나 WHO(세계보건기구)의 공식입장 등은 나온바 없다는 게 한전의 설명이다.

그럼에도 막연한 불안감에 편승한 왜곡된 사실들이 확산하면서 국가정책사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부연했다.

주요 전력망 건설 지연으로 인한 피해는 전기요금 인상 요인으로 작용, 서민가구에 전가될 수밖에 없다. 특히 급증할 전력수요를 감당하지 못하게 될 경우 반도체 등 첨단전략산단 산업의 국가경쟁력도 저하될 수 있다는 점도 큰 문제다.

막대한 사회적비용은 현실화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2016~2022년 충남 당진화력-신송산 송전선로 건설 지연으로 인한 불필요한 예산 낭비만 2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송전선로를 적기 구축해 발전원가가 저렴한 발전기 가동이 이뤄졌다면 2조 원을 아낄 수 있었다는 얘기다.

김동철 한전 사장은 지난 18일 나주시 한전 본사에서 가진 '전력망 확충 역량결집 다짐대회'에서 "전력망 적기확충은 한전 본연의 업무인 '안정적 전력공급'의 핵심이자 국가 미래 첨단산업을 뒷받침하는 필수 국가과제"라고 거듭 강조하기도 했다.

서울 시내 한 음식점에 마련된 키오스크. 2024.11.12/뉴스1 ⓒ News1 DB

대한상의 "지난 20년 최대 전력 수요 98% 늘 때, 송전설비 26% 확충 그쳐"

대한상공회의소 지속성장이니셔티브(SGI)가 최근 낸 '산업계 전력 수요 대응을 위한 전력공급 최적화 방안' 보고서를 보면 최근 20년 동안 국내 최대 전력 수요는 98%가 증가한 반면, 송전 설비는 26% 늘어난 데 그쳤다.

구체적으로 우리나라 최대 전력 수요는 2003년 47기가와트(GW)에서 2023년 94GW로 올랐다. 이에 맞춰 발전 설비 용량도 56GW에서 143GW로 154% 늘었다.

반면 송전 설비는 2만8260서킷킬로미터(c-㎞·다양한 송전선 종류를 킬로미터 기준으로 계산한 단위)에서 3만5596c-㎞로 26% 증가하는 데 그쳤다. 보고서는 발전소에서 만든 전력을 적기에 필요한 곳에 공급하지 못하면서 대규모 정전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국회에서 하루빨리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을 제정해 줄 것을 촉구하고 있다.

전력망 확충법은 반도체클러스터 조성과 인공지능(AI) 산업 육성 등 전력 사용량이 큰 국가첨단산업에 대한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해 필수적인 법안이다. 핵심은 사업단위별 송전 설비 입지 결정 시한을 2년으로 제한하자는 것인데, 주민 수용성 문제로 막연하게 사업이 지연되는 현 상황을 타개해보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해당 법안은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안건소위에 오른 상태다. 국회 산자위는 26일 산자소위에서 여야 간 논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유승훈 교수는 지난 13일 열린 <뉴스1> 미래에너지포럼에 강연자로 나서 "AI 시대의 개막으로 증가하는 전력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천명한 원전의 확대와 재생에너지의 확대를 지속 추진하면서, 전력계통을 획기적으로 보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uni1219@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