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세계 속 'K-원전'의 위상…美웨스팅하우스와 담판에 달렸다

한국수력원자력이 '24조 원' 규모의 체코 신규 원전 건설사업을 수주하는데 성공했다. 원전 수출로는 사상 최대이자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수주 이후 15년 만에 이룬 쾌거다. 사진은 체코 신규원전 예정부지 두코바니 전경. (한국수력원자력 제공)2024.7.18/뉴스1
한국수력원자력이 '24조 원' 규모의 체코 신규 원전 건설사업을 수주하는데 성공했다. 원전 수출로는 사상 최대이자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수주 이후 15년 만에 이룬 쾌거다. 사진은 체코 신규원전 예정부지 두코바니 전경. (한국수력원자력 제공)2024.7.18/뉴스1

(세종=뉴스1) 이정현 기자 = 한때 사양 산업으로까지 내몰리며 '애물단지' 취급을 받던 원전이 한국 전략산업의 대들보로 자리매김 중이다. 2022년 출범한 윤석열 정부는 '친(親)원전' 기조 속 전 정부에서 쇠퇴했던 원전 생태계 복원을 강력히 추진했고, 마침내 노력의 결실을 보고 있다.

최근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을 주축으로 한 우리 기업들이 프랑스를 제치고 24조 원 규모 체코 신규 원전 건설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면서 전 세계에 우리나라 원전의 우수성을 입증했다. 내년 3월 본 계약서에 도장을 찍으면 UAE(아랍에미리트) 바라카 원전에 이은 '한국형 원전(K-원전)'의 두 번째 해외 진출 사례가 된다. 유럽 진출로는 첫 사례다.

국내 원전 관련 업체들의 기대감도 한껏 고조되고 있다. 대규모 사업 수주에 따른 일감 공급에 대한 희망에 현장에는 다시 활기가 도는 모습이다. 국내 원전산업은 현 정부 출범 이후 빠르게 회복하고 있다. 일각에는 이미 완전한 복원에 성공했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실제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1년 8개월(2022.5~2023.12) 만에 원전 설비수출 계약액은 4조 원을 넘어섰고, 지난 5년간 실적(2017~2021, 5904억 원)의 6배 이상에 해당하는 성과를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속 우리 원전산업은 빠르게 회복했고, 그 결실이 이번 체코 원전 수주라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최종사업자 선정까지는 절차가 남아 있지만, 우선협상대상자에 선정된 것만으로도 세계시장에서 'K-원전'의 기술력이 인정받았다는데 상징적인 사례다. 만약 최종 수주까지 확정 짓는다면 세계 속 'K-원전'의 위상은 더욱 공고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넘어야 할 벽이 만만치는 않다. 과거 1980년대 우리 원전산업이 첫걸음마를 떼던 시절, 기술을 전수해 준 미국과의 관계다.

'원천 기술' 전수를 주장하며 사사건건 특허 침해를 주장하는 미국기업 웨스팅하우스는 우리나라가 2017년 원전 3대 핵심기술의 독자적인 기술개발에 성공한 이후에도 한국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이번 체코 원전 수주 건도 마찬가지다. 웨스팅하우스는 애초 한수원의 원전 건설 기술은 '자사 기술을 활용했다'며 특허 침해를 주장하고 나섰다. 최근 체코당국에 이 같은 내용의 진정서도 접수한 것으로 전해졌는데, '한수원의 원전 기술은 원래 자신들의 것이니 계약하면 안 된다'는 논리다.

웨스팅하우스는 2년 전에도 수주전을 앞두고 미국 법원에 소송까지 내며 우리 발목을 잡은 바 있다. 지난해 9월 미 워싱턴DC 연방지방법원이 이에 대해 '수출통제 소송 건의 주체는 미국 정부'라며 웨스팅하우스의 문제 제기를 각하하면서 1차전은 한수원의 승리로 끝났다.

하지만 당시 법원은 소송 제기의 주체와 관련한 절차적 문제에 대해 각하 결정을 내렸을 뿐, 사건의 핵심인 지재권 침해와 관련한 법적 판단은 내리지 않았다.

결국 지재권에 대한 명확한 법적 판단이 내려지지 않으면서 매번 같은 상황이 되풀이되고 있다. 지재권 침해 여부에 대한 판단은 법적 다툼을 통해 시시비비를 가릴 수 있다.

다만 결과 여하를 떠나 '원전 동맹'인 미국과의 어색한 관계는 양국에 서로 득이 될 수 없다는데 소송만이 해법이 아니라는 조언도 나온다. 업계 전문가들에 따르면 웨스팅하우스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만, 이미 시공 능력 면에서는 우리의 원전 건설 기술력에 크게 뒤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문가들은 이 부분에 집중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극단적인 대립으로 가기보다 한미 원전 동맹 속 공동의 이익을 위한 상생의 접근이 필요하다는 조언이다. 윤석열 대통령도 굳건한 '한미 동맹' 기조 속 원만한 사태 해결을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29일 취임 2주년 기자회견을 연 윤 대통령은 웨스팅하우스의 소위 '발목 잡기'에 대해 "원전 수주는 기업 간 이뤄지는 것이지만, 대개 국책기업이 많다. 그래서 원전은 전략산업이다"라며 "그렇기 때문에 국제적으로 원전 수주 경쟁, 발주를 어디에 할 것인지에 대해 국가 간 기업 간 경쟁이 치열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체코 원전)최종계약서에 사인할 때까지 안심할 수는 없다"면서 "정부와 민간기업이 전부 힘을 합쳐 뛰어야 한다.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내년 3월 공식 계약서에 사인할 수 있도록 저부터 열심히 뛰겠다"고 답했다.

어느 때보다 대한민국 정부의 외교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위기를 기회로 삼아 'K-원전'이 세계 속 우뚝 설 날을 기대해 본다.

이정현 뉴스1 경제부 기자

euni1219@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