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서둘러 금리 인하"…한은의 신중 태세 배경은

국내 명목 중립금리 1.8~3.3%…기준금리 3.5% 인하 시점 '안갯속'
인하 1회에도 '통화완화' 전환 여지…지표 확인 후 신중 결정 필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뉴스1

(서울=뉴스1) 김혜지 기자 = 쉽게 꺾이지 않는 물가와 최근 환율 상승, 가계부채 증가 등에 한국은행의 연내 기준금리 인하 시점이 점차 안갯속에 갇히고 있다.

한은은 "천천히 서두른다"는 신중한 태도를 향후 통화정책 결정에 있어 지침 격으로 제시했다. 시장은 오는 8월 또는 10월 인하를 예상 중이다.

3일 한은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콘퍼런스에서 도경탁 한은 통화정책국 정책분석팀 과장은 '한국의 중립금리 추정' 논문을 발표했다.

도 과장은 발표에서 올해 1분기 기준 한국의 중립금리를 최저 마이너스(-) 0.2%에서 최고 1.3% 수준으로 추정했다.

중립금리란 물가 상승이나 하락 압력 없이 잠재 경제 성장률을 달성할 수 있는 이론적인 금리 수준을 뜻한다. 물가와 성장이 서로 균형점을 찾는 금리로서, 정확한 측정 방법은 없고 추정만 가능할 뿐이나 각국 중앙은행이 정책금리를 결정할 때 준거 금리로 활용하곤 한다.

통상 정책금리가 명목 중립금리보다 높으면 통화 긴축, 낮으면 완화 상태에 있다고 본다. 시장에서는 실질 중립금리에 물가 안정 목표(2%)를 더한 값을 명목 중립금리로 추정한다.

이 같은 추정에 따르면 명목 중립금리는 1.8~3.3%로 계산된다. 현 기준금리 3.5%는 중립금리를 웃돌아 통화 긴축 상태를 가리키고 있다.

문제는 향후 기준금리가 인하될 경우 중립금리 최상단인 3.3%가 기준금리인 3.25%보다 높아 통화 완화 상태를 시사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통화 긴축의 강도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아예 통화 완화 정책 노선을 전환하는 것은 물가 상방 압력을 높일 수 있어 물가 안정이 제1 설립 목표인 한은으로서는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최근 미국의 정책금리 인하 기대가 더욱 지연돼 환율이 1380원 선을 뚫고, 가계부채가 지난 4월 증가 전환한 점도 섣부른 금리 인하에 대한 경계감을 키운다.

한은 통화정책국 정책총괄팀 소속 박영환 팀장과 성현구 과장은 지난 29일 한은 공식 블로그에 올린 '향후 통화정책 운용의 주요 리스크' 글에서 "계량모형을 통해 분석한 결과 코로나19 이후 환율의 물가 전가율이 상승한 것으로 추정됐다"고 밝혔다.

가계부채에 대해서도 "향후 정책기조가 전환될 경우 주택가격 상승 기대를 자극하면서 가계부채 증가세를 확대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상존해 있다"고 지적했다.

그나마 중립금리 최하단인 1.8%의 경우 기준금리를 1.7%포인트(p), 다시 말해 베이비 스텝(한 번에 0.25%p 인하) 기준 6차례까지 인하해도 통화 긴축 기조를 유지할 수 있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이에 한은은 물가, 환율, 가계부채 등의 지표 확인을 꼼꼼히 한 이후 통화정책 전환 속도를 더욱 정확히 가늠할 수 있는 시기에 금리 인하를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박 팀장과 성 과장은 "너무 일찍 정책 기조를 전환할 경우 물가 상승률의 둔화 속도가 느려지고 환율 변동성과 가계부채 증가세도 확대될 리스크가 있다"며 "반대로 너무 늦게 정책기조를 전환할 경우는 내수 회복세가 약화되는 가운데 연체율 상승세 지속 등으로 시장 불안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 따라서 하반기 이후의 통화정책은 이러한 양 측면의 리스크를 종합적으로 점검하면서 결정해 나갈 필요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과거 로마의 전성시대를 열었던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천천히 서둘러라(Festina Lente)'를 정책 결정의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삼았다. 균형적인 정책 결정이 중요하다는 의미"라며 "이런 'Festina Lente'는 국내외 중앙은행이 앞으로의 통화정책을 결정해 나가는 데도 중요한 지침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icef08@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