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유학생에게 아이돌봄을?…노동계 "최저임금 차등적용 지침 격" 반발

"대통령이 법망 밖으로 외국인 대학생·결혼이민자를 밀어내는 셈"
정부 "외국인 근로여건 보호할 구체적 방안 검토"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입국장에 외국인 근로자가 입국하고 있다. ⓒ News1 임세영 기자

(세종=뉴스1) 나혜윤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외국인 유학생과 결혼이민자들을 최저임금 미만을 받을 수 있는 가사노동자 취업 허용 추진 방안을 지시하면서 노동계와의 마찰을 빚고 있다. 가뜩이나 열악한 돌봄노동자에게 저임금이 강요되고, 이주 노동자들을 값싼 노동력으로 차별하겠다는 발상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6일 대통령실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지난 4일 민생토론회 후속조치 점검회의 모두발언에서 "국내에 이미 거주 중인 16만 3000명의 외국인 유학생과 3만 9000명의 결혼이민자 가족분들이 가사, 육아 분야에 취업할 수 있도록 허용해 주는 것이 효과적인 방법"이라며 "그러면 가정 내 고용으로 최저임금 제한도 받지 않고 수요 공급에 따라 유연한 시장이 형성될 것"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이같은 제안은 외국인 유학생과 결혼이민자 가족이 가사, 육아 분야에 취업할 수 있도록 비자 체계를 개편하고, 최저임금 미만을 받을 수 있는 가사노동자로 일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비슷한 정책 제언으로 한국은행도 지난달 초 돌봄서비스 인력난 완화를 위해 개별 가구가 사적 계약 방식을 통해 저렴한 임금으로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는 방식을 제안한 바 있다. 실제 사적계약 방식으로 개인 간의 고용계약서를 작성하게 될 경우에는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값싼' 돌봄서비스 노동 계약 추진은 2022년 6월부터 시행 중인 가사근로자법 취지와 배치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사근로자법은 정부에서 인증받은 서비스 제공기관과 근로계약을 체결한 가사노동자에게 최저임금과 사회보험 등을 보장하는 법이다.

이 때문에 노동계에서 윤 대통령의 발언은 외국인 유학생들과 결혼이민자를 현행법이 적용되지 않은 비공식적인 노동시장으로 내모는 것이라는 비판을 제기한다.

한국노총은 성명을 통해 "틈만 나면 법치를 강조하는 대통령이 현행법을 무시하고 외국인 유학생과 결혼이민자 가족들을 법망 밖으로 밀어내도록 유도하고 있다"면서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이 있다. 저임금에는 그에 맞는 서비스가 뒤따를 뿐이다. 돌봄서비스의 질을 높이기 위해선 돌봄노동자들의 임금과 처우가 개선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노총은 "높은 임금을 개별 가정에서 전적으로 감당하기 힘들다는 데는 공감한다"면서 "그래서 국가가 해야 할 일은 노동자들의 임금을 깎아서 질 낮은 일자리를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가정에 바우처를 제공하든 믿고 맡길 수 있는 질 높은 보육서비스를 제공하는 국공립 시설을 늘리든 하는 방식으로 가정과 노동자가 모두 행복한 방향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광주 북구청직장어린이집 아이들이 전남대학교 잔디밭에서 비눗방울 놀이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2023.5.3/뉴스1 ⓒ News1 이수민 기자

일각에서는 윤 대통령의 발언을 두고 본격적으로 심의가 시작될 내년도 최저임금 수준을 결정할 최저임금위원회에 '업종별 차등적용'에 대한 일종의 지침을 내렸다는 비판도 제기하고 있다. 실제 이번 최저임금 심의에서 업종별 차등적용 여부 문제는 한은 보고서에서 제기된바 있는 외국인 근로자 차등화 언급으로 인해 뜨거운 감자로 부상 중이다.

민주노총은 "최근 시작된 최저임금위원회의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이는 '업종별 차등적용'에 정부가 일종의 지침을 내린 셈"이라며 "국적에 따라 노동자의 처우를 차별하는 제도를 만들겠다면서 '노동자의 보수와 처우가 향상되도록 하겠다'는 대통령의 말에서 진심도 논리도 찾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우선 정부는 윤 대통령의 언급이 있었던 만큼 외국인력의 근로여건을 보호하고, 지속 가능한 돌봄서비스가 이뤄질 수 있도록 구체적인 제도 마련에 나서겠다는 계획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맞벌이 부부의 육아 부담을 덜어주지 않고서는 저출산 문제로 인한 심각한 국가적 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면서 "우리 사회생활에 이미 적응해 있고 언어능력도 높은 국내 체류 외국인을 활용한다면, 당사자들에게는 일할 기회를 제공하고 이용자들에게는 다양한 돌봄서비스 수요 충족을 위한 선택권 확대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외국인 유학생을 활용하는 방안이 육아부담을 덜어주는 본질적인 방안이 아니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서울에서 3살·5살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40대 A 씨는 "당장 우리 국적의 대학생에게도 육아 경험이 없어 아이를 맡기는 게 망설여지는데 외국인에게는 어떻게 맡기겠나"라면서 "부모가 어린이집 등·하원을 가능할 수 있도록 노동시간 유연화와 같은 우리 사회의 노동문제를 해결하는 게 더 우선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freshness410@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