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려올 '총선 청구서'에 난감한 재정당국…"곧 기재부의 시간 온다"
부가세 깎고, 현금지원금 주고…여야, 총선 앞두고 과열 공약 경쟁
최상목 "한정된 재정에 어려운 과제 담아내야…기재부 시간 온다"
- 김유승 기자
(세종=뉴스1) 김유승 기자 = 여야가 4월 10일 총선을 앞두고 막대한 예산이 드는 공약을 쏟아내면서 건전재정을 유지해야 하는 기재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기재부는 겉으론 정치적 중립을 위해 침묵을 지키면서도 내심 "기재부의 시간이 오고 있다"며 긴장하는 모습이다.
2일 정치권과 관계부처에 따르면, 총선을 1주일가량 앞둔 시점에서 정치권은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거나, 나라 살림을 팍팍하게 할 수 있는 세제 지원 공약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겸 총괄선대위원장은 지난 1일 부산 사상구 지원 유세에서 "부가가치세 간이과세자 적용 기준을 연 매출 8000만 원에서 2억 원으로 상향 조정하겠다"고 밝혔다.
연 매출액이 8000만 원 미만인 개인사업자는 간이과세자로 분류돼 일반과세자(10%)보다 낮은 1.5~4.0%의 세율이 적용된다. 한 위원장의 발언은 지난 2월 윤석열 대통령이 간이과세자 기준을 8000만 원에서 1억4000만 원으로 높이겠다고 밝힌 데서 한발 더 나아간 것이다.
한 위원장은 지난달 31일엔 "내년 5세부터 무상교육·보육을 실시하고, 4세, 3세로 단계적으로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1인당 매월 28만 원씩 지원하고 있는 유아학비·보육료를 유치원은 표준 유아교육비 수준인 55만 원까지 높이고, 어린이집은 이에 더해 현장 학습비 등 기타 필요 경비 수준까지 높인다는 구상이다.
한 위원장은 지난달 28일엔 고물가 해결책으로 현행 10%인 부가세 세율을 생필품에 한해 5%로 한시 인하하겠다는 공약도 꺼내들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달 24일 국민 1인당 25만 원의 '민생회복지원금'을 지급하는 공약을 내놨다. 이를 위해 필요한 재원은 13조 원으로 추산됐다. 저출산 대책으로는 자녀 1인당 만 18세까지 월 20만 원의 아동 수당을 주자고도 제안했다.
여야가 막대한 예산이 필요한 공약들을 쏟아내면서 8월 말까지 내년 예산을 편성해야 하는 기재부는 난처한 상황이다. 정부는 출범 이후 관리재정수지 적자 규모를 국내총생산(GDP)의 3% 이내로 관리하는 건전재정 기조를 목표로 하는데, 향후 정치권 공약을 실현하려면 이같은 원칙을 지키기 힘들어진다.
정부는 '2023~2027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서 내년 관리재정수지 적자 규모를 2.9%로 예상하고 있다. 총선 공약을 하나둘 반영하다 보면 2022년(5.4%)과 지난해(3.9%)에 이어 3년 연속으로 3% 이내 적자 폭을 지킬 수 없게 된다.
기재부는 선거 중립 의무를 지키기 위해 각 공약에 대한 구체적 입장을 보류하고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2012년 총선 때 기재부가 여야 복지 공약에 드는 비용을 계산하려고 시도한 적이 있지만,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공약 비용 추계는 공직선거법 위반이라며 자제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기재부 확대간부회의에서 "이제 곧 기재부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고 발언했다. 공약에 대한 직접적 언급은 피했지만, 향후 과열된 공약 경쟁 후폭풍을 견뎌내고 건전재정을 지켜야 하는 어려움을 표한 것으로 해석됐다.
기재부 관계자는 "지금까지 많은 요구와 요청이 있는데, 그런 어려운 과제들을 어떻게 한정된 재정 상황 속에서 잘 담아내느냐가 우리의 과제고, 그런 면에서 기재부가 역할을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ky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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