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 부는 반도체 시장…한·미·일 '쩐의 전쟁' 격화
반도체 업황 회복에 생산, 수출 등 각종 경제지표 '개선'
패권 경쟁 재점화…'돈' 쏟아붓는 美·日, 韓도 직접지원 검토
- 이정현 기자
(세종=뉴스1) 이정현 기자 = 세계 반도체시장이 회복세에 접어들면서 수출을 근간으로 한 우리나라 무역수지도 개선세가 뚜렷하다. 다만 업황 회복에 따른 세계 각국의 반도체 패권 경쟁에 다시 불이 붙으면서 이른바 '쩐의 전쟁'은 더 격화하는 모습이다.
1일 산업통상자원부와 반도체업계 등에 따르면 올 들어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견고한 수출 증가세가 이어지면서 우리나라 무역수지 개선세가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강경성 산업부 1차관은 지난 19일 '3차 수출 품목 담당관 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반도체 등 정보기술(IT)품목을 중심으로 주력품목 수출 호조세가 지속되면서 이번 달(3월)에도 수출 증가세와 흑자흐름이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강 차관의 언급대로 반도체 업황 회복 신호는 각종 데이터에서도 드러난다.
지난달 29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4년 2월 산업활동동향'을 보면 2월 전(全)산업 생산지수(계절조정·농림어업 제외)는 115.3(2020년=100)으로 전월보다 1.3% 늘었다.
지난해 11월 0.3% 반등한 이후 12월(0.4%)과 1월(0.4%), 2월(1.3%)까지 4개월 연속 증가세를 기록한 것은 약 2년여 만이다.
여기에는 반도체가 있다. 지난 1월 8.2% 감소했던 반도체 생산이 2월에는 4.8% 증가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65.3% 급증한 것이다. 반도체 재고도 전달보다 3.1% 줄었다.
반도체 생산 증가는 여타 관련 투자로도 이어졌다. 2월 설비투자는 전달보다 10.3% 증가했는데, 이는 지난 2014년 11월(12.7%) 이후로 9년 3개월 만에 가장 높은 증가 폭이다.
운송장비(23.8%)와 기계류(6.0%) 모두 전월보다 투자가 늘었다. 반도체 업황 개선에 따른 제조용 기계 투자, 선박 등 운송장비 투자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출 면에서도 반도체 실적 회복에 따른 개선세가 뚜렷했다.
산업부에 따르면 지난 1~2월 누적 수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11.2% 증가한 1072억 달러를 기록하는 등 5개월 연속 플러스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이 기간 품목별로 반도체 수출이 61.4%(전년동기대비 기준) 늘면서 증가세를 견인했다.
'2024년 2월 ICT 수출입 동향'에서도 인공지능(AI) 시장 성장이 반도체 수요 증가를 이끌면서 메모리(108.1%), 시스템(27.2%) 반도체 수출이 모두 증가했다. 4개월 연속 두 자릿수 상승세를 이어가며 99억6000만 달러를 수출했다.
반도체 시장에 훈풍이 돌면서 각종 경제지표는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반도체 패권을 둘러싼 이른바 세계 주요국의 '칩워(Chip War)'는 다시 격화하는 모습이다.
중국 견제를 목적으로 수출 통제 조치로 선제공격에 나선 미국과 주요국들은 '보조금 지원'을 무기로 자국에 대한 투자를 이끌고 있다. 미국··일본 등 선진국들이 거액의 보조금으로 유수의 반도체 기업 생산시설을 유치하면서 소위 반도체발 '쩐의 전쟁'을 심화하고 있다.
미국은 이른바 '반도체법'을 만들어 자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기업에 5년간 527억 달러의 생산 및 연구개발(R&D)비를 지원한다. 텍사스주 파운드리 공장에 170억 달러(약 22조 8000억 원) 이상을 투자한 삼성전자의 경우에도 60억 달러(약 8조 원)의 보조금을 받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지난 1980년대까지 반도체 왕국으로 군림해 온 일본도 제2의 부활을 꿈꾸며 통 큰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최근 세계 최대 파운드리 업체인 대만 TSMC 1공장이 일본에 문을 열었는데, 여기에는 일본 정부의 막대한 선물보따리가 있었다.
일본 정부는 TSMC에 설비투자액의 절반에 가까운4760억 엔(약 4조 2000억 원)을 지원할 것으로 전해진다. 또 TSMC가 오는 2027년 말 가동을 목표로 구마모토현에 지을 예정인 제2공장에도 약 7300억엔(약 6조 5000억 원)을 지원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두 공장에만 10조 원이 넘는 일본 정부 보조금이 투입되는 셈이다.
이들 나라의 공세에 맞서 우리 정부의 전략도 재점검해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우리나라의 경우 투자 시 세제혜택 등 간접 방식의 지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이를 직접 지원형태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실제 지난 2월 경계현 삼성전자(005930) 반도체(DS) 부문장(사장), 곽노정 SK하이닉스(000660) 사장 등 반도체 기업인들은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의 간담회에서 투자 보조금 신설,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기반시설 지원 확대, 소부장(소재·부품·장비) 테스트베드 구축 등 투자환경 개선을 건의하기도 했다.
이후 정부는 지난달 27일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5차 국가첨단전략산업위원회'를 열고, 반도체 등 첨단산업특화지역의 전력·용수 등 기반시설 구축에 대한 지원방향을 내놨다. 다만 반도체 산업 등에 대한 직접적인 투자 보조금 지원 여부 등은 더 시간을 두고 검토하기로 했다.
경희권 산업연구원 신산업실 부연구위원은 "일본은 자국 반도체 기업에 직접 보조금을 지급하고, 미국은 투자 시 세액공제에 직접 보조금을 더해 50% 가까이 지원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들 경쟁국과의 수준을 맞추기 어렵더라도 최근 반도체 시장이 바닥을 쳐 기업 수익성이 급감하거나 할 경우 긴급하게 직접 자금을 수혈해 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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