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잡겠다면서 소비촉진책 '모순'…'총선용 포퓰리즘' 경방 논란

카드 소득공제 확대, SOC 집행 상반기 집중 등 '물가 자극'…"총선용 아니고서야"
전기·가스 등 공공요금은 상반기 동결 기조…한전 누적적자는 50조 육박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2024년 상반기 경제정책방향 합동 브리핑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전병극 문화체육관광부 제1차관, 오영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최 부총리,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 김주현 금융위원장. 2024.1.4/뉴스1 ⓒ News1 허경 기자

(세종=뉴스1) 김유승 기자 = 정부가 발표한 2024년 경제정책방향 내용 중 상당수가 올해 상반기에 집중되면서 '총선용 선심성 대책'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는 물가를 상반기까지 조기에 2%대로 잡겠다면서도 이와 상충되는 내수 진작 대책을 상반기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한전 누적 적자가 5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도 공공요금 인상을 하반기로 미루겠다고 했다.

고물가 상황에서의 선심성 정책이 자칫 고물가·고금리 시기를 늘려 경제침체기가 길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5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정부가 전날 발표한 '2024년 경제정책방향' 내용 중 상당수가 올해 상반기를 겨냥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4월 총선을 겨냥한 '포퓰리즘 정책' 아니냐는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정부는 경제정책방향에서 올해 상반기까지 3% 내외의 물가 상승률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서민 생활 안정을 위해 상반기 2%대 물가를 조기 달성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와 상충되는 내수진작 대책이 함께 담기면서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을 불러 왔다.

정부는 올해 카드 사용액이 전년보다 5% 이상 증가하면 증가분에 대해 10% 추가 소득공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특히 소비 부진이 예상되는 상반기 카드 사용액 증가분의 경우 20% 추가 소득공제를 적용할 계획이다. 중앙정부 차원에서 올해 SOC 예산 26조4000억원 중 65%를 상반기 조기 집행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SOC 예산을 상반기 조기 집행하면 정부 쪽에서 서비스와 상품에 대한 수요가 증가해 추가 물가 상승요인이 된다"며 "카드 소득공제도 수요를 늘려 물가를 끌어올릴 수 있는데, 그렇게 되면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인하에 나서기 어려워 고금리 시기도 길어진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제 전문가는 "정부 스스로 물가가 아직 잡히지 않았다고 인정한 시점에서 경기 부양을 하겠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며 "총선을 치르기 전 경기 부양을 위한 목적이 아니라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번 경방에 물가 안정 대책 일환으로 담긴 공공요금 상반기 동결 기조를 두고도 논란이 많다. 정부는 중앙·지방 공공요금을 동결하는 데서 나아가 물가 안정 기여를 경영평가에 반영하겠다며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공공기관의 건전성도 같이 봐야 하지만, 공공기관이기 때문에 우리 경제 전반, 특히 민생 경제와 관련된 부분도 (봐야 한다)"며 "그런 부분들은 다 감안해서 (동결) 기간 등을 정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전 누적 적자가 곧 50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당장의 효과를 위해 에너지 공기업 건전성을 한층 더 악화시키는 꼴이라는 비판이 따른다.

공공요금 인상을 잠시 뒤로 늦출 뿐이어서 물가 안정에 효과가 있겠냐는 의문도 제기된다. 석 교수는 "공공요금을 상반기 동결하더라도 이후 인상해 물가가 오르면 하반기에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하하지 못할 가능성이 커진다"며 "결국 고금리 시기만 늘어뜨릴 수 있다"고 했다.

서울 중구 한국전력공사 서울본부. 2023.12.20/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정부는 1분기 중 노인과 취약계층의 직접일자리 지원 인원 90% 채용을 목표로 조기 시행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는데, 윤석열 정부가 출범 당시부터 직접일자리 효과에 대해 비판해 온 터라 이 역시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의 포퓰리즘이란 지적이 따른다.

2022년 공공기관 혁신가이드라인을 통해 공공기관 정원을 감축한다고 했던 현 정부가 올해 신규 채용 규모를 2만2000명 이상으로 늘리겠다고 한 것도 기존과 결이 다르다.

갑작스러운 시점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금융투자소득세를 폐지하겠다고 밝힌 것 역시 결국은 개미 투자자를 겨냥한 선심성 대책이란 비판이 거세다.

금투세는 문재인 정부 시절인 지난 2020년 '자본시장 선진화 방안'으로 도입돼 지난해부터 시행될 예정이었으나, 증권업계 준비 미비, 투자자 반발 등을 고려해 여야 합의로 도입을 2025년까지 2년간 유예했다.

윤 대통령의 금투세 폐지 발언은 비슷한 시기에 나온 경방에 담기지 않아 소관부처인 기재부와 충분한 협의가 있었는지 의문이 제기됐다. 또 이와 함께 들여다봐야 하는 주식양도세 및 증권거래세에 대한 논의는 빠져 총선용이란 의심이 증폭됐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금투세가 2025년부터 시행되면 3년간 세수가 4조328억원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금투세 폐지가 현실화되면 한 해 1조3443억원 세수가 줄어드는 셈이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금투세는 정부에서도 오랫동안 논의했던 것이고, 시장에서도 기대했던 것들이 다 있는데, 갑작스레 바뀌면 시장에 불확실성 요인이 될 수 있다"며 "세수가 감소하게 돼 정부의 재정 운용 측면에서 우려되는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kys@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