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방비 폭탄에 화두된 횡재세…정부·전문가는 '갸우뚱'
야권 "'운 좋게' 거둔 이익으로 고통분담"…정부 "동의할 수 없어" 일축
전문가들 "정당성 없고 형평에 어긋나"…"국민들도 기업 고통 분담 했는데"
- 김유승 기자, 한종수 기자
(서울=뉴스1) 김유승 한종수 기자 = 국제 에너지 가격 인상에 따른 '난방비 대란'에 서민 고통이 가중되고 있지만 정유업계는 큰 수익을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야권을 중심으로 사회적 고통 분담 차원에서 '횡재세'를 도입하자는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다. 하지만 시장경제 체제에서 정당성을 얻기 힘들 뿐만 아니라 원유를 대부분 수입하는 국내 정유업계 특성상 부적절하다는 비판에 맞닥뜨린 상황이다.
30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가스요금(주택용 기준)은 지난해 4·5·7·10월 4차례 걸쳐 메가줄(MJ)당 5.47원 올라 지난해에만 42.3%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도시가스 요금에 연동되는 액화천연가스(LNG) 가격이 급등했기 때문이다.
올겨울 한파가 덮치면서 '가스비 폭탄'에 대한 하소연은 늘고 있지만, 정유업계는 오히려 호황을 누린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석유협회는 지난해 SK에너지,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등 국내 정유사들의 석유제품 수출액이 약 73조7400억원이라고 밝혔다. 지난 2012년 532억5100만달러 이후 사상 최대치를 기록한 것이다.
지난해 1~3분기 전년보다 186% 증가한 4조309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둔 GS칼텍스는 최근 임직원에게 기본 연봉의 50%에 달하는 성과급을 지급하기로 했다.
이에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은 위기 상황에서 이익을 거둔 이들 정유사에 횡재세를 걷어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놨다.
횡재세란 대외 환경 변화 등의 상황에서 기업이 '운 좋게' 초과 이익을 얻을 경우, 해당 부분에 대해 추가 징수하는 소득세를 일컫는다. 현재 영국, 독일, 이탈리아 등 유럽 국가들이 공동체 고통 분담 차원에서 횡재세를 부과하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25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부에서 전기, 가스요금을 대폭 올리는 바람에 취약계층의 고통이 매우 심각하다"며 "정유사와 에너지 기업이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국민이 입는 고통을 상쇄해 줬으면 하는 만큼, 이번 기회에 다른 나라들이 다 시행하고 있는 횡재세도 제도적으로 확실하게 도입하는 것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성만·강득구·민병덕·위성곤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10명은 지난 17일 이같은 내용이 담긴 '소상공인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해당 법안은 석유·가스 기업에 횡재세를 징수하고, 그중 일부 세액을 소상공인의 에너지 이용을 안정화하는 일에 사용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하지만 정부는 횡재세 도입에 전혀 동의할 수 없고, 검토하고 있지도 않다며 선을 그은 상태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26일 출입기자간담회에서 "특정 기업이 특정 시기에 이익 난다고 해서 횡재세 형태로 접근해 세금을 물리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며 "횡재세 도입에 전혀 동의할 수 없고,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추 부총리는 유럽 일부 국가들이 횡재세를 도입한 데 대해선 "유럽 정유사들은 유전을 개발하고 유전을 통해 채유하고 정제해 수익을 만들어내는 구조이기 때문"이라며 "우리는 원유 수입해서 정제해서 판매하는 구조여서 그들 국가와 기본적으로 이익 구조도 다르다"고 일축했다.
전문가들도 정유사들을 대상으로 횡재세 도입하는 데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우연한 기회로 거둔 이익에 추가로 세금을 매기는 행위는 시장경제 체제에서 정당성을 가지기 힘들뿐더러 형평성 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유 회사들이 이익을 볼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정부가 또 지원을 해주는 것인가"라며 "고금리에 은행, 고환율에 수출 업체들이 돈을 벌었는데 이들에게도 횡재세를 도입할 건가"라고 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미 수익이 나면 이에 따른 세금을 다 매기기로 돼 있는데 여기에 갑자기 횡재세를 더 매기면 정책 일관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했다.
원유를 대부분 수입해 정제하는 우리 정유업계 구조상 횡재세 도입이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지난 26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유럽의 경우에 횡재세는 에너지를 직접 개발했는데 갑자기 에너지 가격이 올라 횡재 이윤을 얻은 회사들에 부과를 한다"며 "그런데 국내 정유사는 중동에서 석유를 사와서 휘발유, 경유와 같은 고부가가치 제품을 만들어 70%는 해외에 수출해서 돈을 번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거기에 횡재세를 부과하게 되면 기업이 열심히 일할 요인도 없게 되고 석유에서 번 돈을 천연가스 쪽에 지원한다는 게 양쪽의 균형에 맞지 않는 문제도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횡재세에 대해 시장경제 관점을 넘어 공동체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IMF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 때 국민들도 세금과 공적 자금 투입 등을 통해 기업들이 망하지 않게 고통 분담에 나섰다"며 "기업들에 대해 상당한 보조금도 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기존 예산으로 난방비 상승에 다른 고통을 분담할 수 있으면 횡재세 논의가 필요없지만, 지금은 정부가 국채를 발행하는 것도 부담스러운 상황"이라며 "공동체 지속의 관점에서 타인의 고통을 대가로 돈을 버는 부분에 대한 횡재세 도입을 논의해 볼 여지가 있다"고 했다.
ky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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