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물가에 물 건너간 전기·가스료 인상…하반기로 '폭탄 돌리기'

가스공사, 1년간 공급비 동결 이어 5월 요금 인상도 무산
원재료 수급불안 가능성…"선제대응 없인 비상 시 충격 더 커"

서울 시내 한 주택가에 설치된 가스 계량기. 2023.1.25/뉴스1 ⓒ News1 김진환 기자

(세종=뉴스1) 심언기 기자 = 정부의 물가잡기 총력전이 지속되며 전기·가스요금 동결이 장기화할 것이란 관측이 높다. 올 상반기는 동결이 유력하고, 하반기 요금 인상 폭과 시점도 불투명하다. 요금 조정이 미뤄질수록 한국전력공사와 가스공사의 재무상황이 악화하는 만큼 '폭탄 돌리기'란 지적이 나온다.

한국가스공사는 지난달 26일 "주택용·일반용 도매공급비용은 별도의 통보 전까지 현행 요금을 적용하는 것으로 정부로부터 통보받았다"고 공시했다.

공급비는 가스공사 등의 시설·배관 등의 투자와 보수액으로, 1년에 한 차례 조정된다. 공급비가 동결되면서 2달에 한 번씩 홀수달에 결정하는 원료비에 따라 가스요금이 확정되는데, 5월은 민수용 원료비도 동결하기로 했다.

가스업계에서는 5월 인상 가능성이 유력하다는 관측이 제기된 바 있다. 동절기에 비해 가스 수요가 줄어드는 하절기 요금을 인상하면 물가 충격과 여론 저항감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인상 결정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그러나 정부가 물가안정에 최우선 방점을 찍으면서 요금은 결국 동결됐다.

다만 지난해 13조7000억 원에 달하는 민수용 도시가스 미수금 규모를 감안하면 가스요금 인상을 마냥 미루기도 힘든 실정이다. 부분자본잠식 상태에 빠진 가스공사 상황을 감안해 7월에는 요금 인상이 이뤄질 것이란 희망 섞인 전망도 있다.

한전의 재무상황은 가스공사보다 더 위태롭다. 지난해 상반기 이후 4분기 연속 요금이 동결되며 2023년 말 기준 부채는 202조 원까지 불어났다. 심각한 경영난에 허덕이는 한전은 채권 발행과 자회사 배당금을 당겨쓰며 버티고 있다.

한전은 에너지원재료 가격 안정세 덕분에 작년 하반기부터 소폭 흑자를 기록 중이지만, 4조~5조 원에 달하는 연간 이자비용을 상쇄하고 부채를 털어내긴 역부족이다. 그럼에도 수요가 급등하는 하절기를 앞두고 물가 전반에 직·간접 영향을 미치는 전기요금 인상 카드를 꺼내 들기도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당초 전력·가스 업계에서는 4월 총선 이후 요금 인상 논의가 시작될 것으로 예상해 왔다. 그러나 물가상승률이 3%대를 오르내리며 고공행진을 지속하자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와 기재부는 요금 인상에 대해 극도로 말을 아끼고 있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18일 "물가 상황이 여러 가지로 아직 어렵다"며 "공공요금에 대해 보수적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교통비뿐 아니라 전기·가스 요금 전반을 당분간 묶겠다는 정부 방침을 강력히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전기·가스요금 인상 시점이 하반기로 밀리면서 '폭탄 돌리기'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중동 정세불안까지 겹쳐 석유, 가스 등 주요 원재료들의 가격 변동성을 예측하기 힘들다는 점에서 정부의 선제적 대응이 절실하다는 목소리도 터져 나온다.

발전업계 한 관계자는 "원재료 가격이 급등한 이후 뒤늦게 요금을 조정하면 급등폭 체감이 더욱 클 수밖에 없고 국민들의 저항감도 거셀 것"이라며 "한전 부채를 조금이라도 줄여놔야 비상 시기 충격을 흡수·분산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줄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전그룹사 노조 한 관계자는 "알짜 자산들을 팔고 희망퇴직으로 직원들이 고통을 감내하고 있지만 실제 재무개선 효과는 극히 미미하다"라며 "정부는 공기업의 의무만 강요할 게 아니라 근본적인 해결책을 내놓아야 한다"라고 비판했다.

eonki@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