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총재 "차선 바꾸고 방향 전환할 준비…시장 기대는 과도"[문답]

"과도한 시장 기대 인한 부동산 가격 상승 바람직하지 않아"
"물가안정 추세…금리인하 시점은 금융·가계부채 함께 봐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1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4.7.11/뉴스1 ⓒ News1 사진공동취재단

(서울=뉴스1) 손승환 기자 =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11일 "현 상황은 물가 안정 추세에 진전이 있는 만큼 이제는 차선을 바꾸고 적절한 시기에 방향 전환을 할 상황이 조성됐다"고 밝혔다.

이 총재는 이날 서울 중구 한은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 통화정책방향 회의 후 기자 간담회에서 "지난 5월에는 깜빡이를 켤 상황이 아니라 금리인하 준비를 위해 차선을 바꿀지 말지 고민하는 상태였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총재는 다만 시장의 조기 금리 인하 기대에 대해서는 "방향 전환을 언제 할지에 관해선 외환시장, 수도권 부동산, 가계부채 움직임 등 위험 요인이 많아 아직 불확실한 상황"이라면서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며 경계했다.

이 총재는 "기준금리를 인하할 것이란 (시장의) 기대가 선반영됐다는 점을 부인하긴 어려울 것 같다"며 "현재 당면한 물가, 금융 안정 상황 등을 고려해 볼 때 시장에 형성된 금리 인하 기대는 다소 과도한 측면이 있단 게 대다수 금통위원의 생각"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특히 이런 기대가 선반영돼서 부동산 가격 상승 기조가 형성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한은이 유동성을 과도하게 공급한다든지, 금리 인하 시점에 대해 잘못된 시그널을 준다든지 해서 주택가격 상승을 촉발하는 정책 실수는 하지 말아야 된다는 데 금통위원 모두 공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금통위는 이날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연 3.50% 수준으로 유지하기로 했다.

이로써 기준금리는 지난해 1월 마지막 인상 이후 1년 6개월간 같은 수준을 이어가면서 '역대 최장기간' 동결 기록을 갖게 됐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1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4.7.11/뉴스1 ⓒ News1 사진공동취재단

다음은 취재진과 이 총재 간의 일문일답.

-물가 상승률 둔화에 대한 확신이 지난 5월 통방보다 강해졌다고 볼 수 있는지.

▶6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4%로 안정 추세를 보이는 것은 매우 긍정적인 변화이고, 저희가 예상했던 바에 부합하는 결과다. (특히 통방문에서) '금리 인하 시기 고려'라는 표현을 쓴 건 물가만을 봤을 땐 예상했던 추세를 계속하고 있어서다. 물가 안정만을 본다면 이제는 금리 인하를 논의할 분위기가 조성됐다.

-그렇다면 금리 인하 '깜빡이'를 켤 시기가 됐다는 의미인가.

▶지난 5월에는 깜빡이를 켤 상황이 아니라 금리인하 준비를 위해 차선을 바꿀지 말지 고민하는 상태라고 말씀드렸다. 현 상황은 물가 안정 추세에 진전이 있는 만큼 이제는 차선을 바꾸고 적절한 시기에 방향 전환을 할 상황이 조성됐다고 말씀드릴 수 있다. 다만 방향 전환을 언제 할지에 관해선 외환시장, 수도권 부동산, 가계부채 움직임 등 위험 요인이 많아 아직 불확실한 상황이다.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미국의 금리인하 여부와 관계없이 우리나라가 먼저 내려도 괜찮다고 보는지.

▶당연히 미국의 정책 결정은 외환시장, 특히 환율에 주는 영향이 있기 때문에 중요한 고려 사항이다. 그렇지만 이번 발표에서 강조했듯 가계부채, 수도권 부동산 가격 등 국내 금융 안정도 그에 못지않은 고려 사항이다. 이를 종합적으로 판단해 시기를 결정할 것이다.

-다른 금통위원들의 향후 3개월 내 금리 전망이 궁금하다.

▶이와 관련해선 저를 제외한 금통위원 여섯 분 중 네 분은 3개월 후에도 3.50%로 유지하는 것이 적절하단 견해를 나타냈다. 다른 두 분은 3.50%보다 낮은 수준으로 인하할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단 의견이었다. 우선 네 분은 인플레이션 안정에 많은 진전이 있었지만 금리인하 기대가 외환시장, 주택 가격, 가계부채 등 금융 안정에 미치는 영향을 좀 더 점검하고 확인할 필요가 있단 의견이었다. 반면 나머지 두 분은 물가 상승률이 기본적으로 많이 낮아졌기 때문에 인하 가능성을 열어두고, 외부 움직임을 지켜보잔 입장이었다.

-금통위원 네 분은 3개월 후인 10월에도 3.50%를 유지해야 한단 입장이란 뜻인지.

▶'포워드 가이던스'는 앞으로 3개월 동안 안 바꾼다는 것이 아니라, 현시점에서 봤을 때 앞으로 3개월간은 3.50%로 유지될 가능성이 크단 의미다. 조건부라는 말씀을 드린다. 8월과 9월 데이터를 보면서 또 바뀔 수 있다.

-농산물 가격은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물가 목표를 농산물을 뺀 근원물가로 설정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이런 견해는 예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논쟁 중이다. 저희도 한때 근원물가를 타깃 삼은 적 있었다. 그러다 다시 '헤드라인 물가'(일반적인 소비자물가)로 왔다. 통화 정책은 기대 인플레이션 관리가 중요하다. 기대 인플레이션은 근원물가보단 헤드라인 물가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런 측면에서 헤드라인 물가를 타깃으로 하고, 근원물가는 참고하고 있다.

-정부의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2단계 두 달 연기가 대출 '막차' 수요를 키웠단 목소리도 있는데.

▶전날(10일) 국회에서도 많은 논의가 있었는데 최상목 부총리가 밝혔듯 PF(프로젝트파이낸싱) 구조조정안 확정 및 일치성 등을 확인하기 위해 연기한 것으로 알고 있다. 9월부터는 시행될 것이라 생각한다.

-장기간 고금리가 이어지면서 국민들의 피로감이 커지고 있는 것 같다.

▶우선 상대적으로 고금리가 상당 기간 지속되면서 고통받는 국민들이 많은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물가 상승률이 2.4%까지 낮아지는 성과를 얻은 것은 고통스럽지만 고금리를 유지한 통화 정책이 기여하는 바도 크다고 생각한다. 사실 고금리 유지로 인해 피해를 보는 정도는 저마다 다르다. 수출업자와 수입업자가 느끼는 정도가 다르고, 취약계층이나 자영업자는 굉장히 어렵지만 이자를 받거나 연금 수급자 입장에선 혜택을 본다. 이런 복합적인 요인을 균형 잡힌 시각에서 보고 통화 정책을 하는 것이 한은의 중요한 업무라 생각한다.

-기준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가 시장금리에 선반영된 모습이다. 시장이 너무 앞서나갔다고 보나.

▶금통위원들과 이 문제를 논의했다. 지금 장기 국채 금리가 다른 나라보다 상당히 많이 하락한 것에 대해 한은이 곧 기준금리를 인하할 것이란 기대가 선반영됐다는 점을 부인하긴 어려울 것 같다. 현재 당면한 물가, 금융 안정 상황 등을 고려해 볼 때 시장에 형성된 금리 인하 기대는 다소 과도한 측면이 있단 게 대다수 금통위원의 생각이다. 특히 이런 기대가 선반영돼서 부동산 가격 상승 기조가 형성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통방문에서 '향후 통화 정책은 긴축 기조를 충분히 유지'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만약 기준금리를 3.25%로 0.25%포인트(p) 낮춘다면 이것도 긴축 기조인 건가.

▶금융 안정에 대한 고려가 지난 5월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커졌다. 3.25%가 긴축적인가에 대해선 말씀드리기가 어렵다. 성장의 모멘텀이나 물가 상승률이 떨어지는 것, 금융 상황이 변하는 것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있다.

-최근 환율 상승 원인이 한미 간 금리 격차 때문이란 지적이 있다.

▶경제 이론적으로 환율에는 금리 격차 외 다른 영향이 굉장히 많다. 그렇기 때문에 금리 격차가 환율에 영향을 주는 것만은 아니란 생각에 변함은 없다. 다만 재작년과 지난해에는 미국이 금리를 굉장히 빨리 올릴 때는 우리 환율이 절하되더라도 이것이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닌 다 같이 가는 것이란 말씀을 드렸다. 현 상황에서 금리 변화가 환율에 더 민감한 영향을 주냐고 한다면 다른 요인이 굉장히 많아서 일반적으로 말하기 어려울 것 같다. 경제 요인뿐 아니라 주요국의 정치 일정 등과도 많은 연관이 있다.

-최근 중부 지방에 많은 폭우가 내렸다. 추후 물가 상승률이나 통화 정책에 미칠 영향은.

▶지난 한두 달은 농산물 가격이 좀 안정되는 기조였다. 사실 태풍 시즌이 돌아오는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또다시 가격이 올라가서 물가 추세가 변하면 당연히 통화 정책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물가 상승률 둔화 추세가 지속될지 지켜봐야 한다고 말한 것도 이러한 이유다.

-향후 기준금리 인하가 가계부채나 주택담보대출을 자극할 가능성을 어느 정도로 판단하나.

▶우선 수도권 부동산 가격을 유심히 보고 있다. 지난 5월 금통위 이후 5월 말에서 6월, 7월 동안 가격 상승 속도가 예상보다 빨랐다. 한은이 특정 지역의 주택 가격을 조절할 순 없지만 수도권 주택 가격 상승은 (전체) 가계부채에 굉장히 유의미한 영향을 준다. 중장기적으로 가계부채 수준을 낮춰가는 게 한은의 중요한 정책적 목표라는 점에서 유의해야 할 시점이 왔다고 본다. 정부와의 정책 공조도 중요할 것이다. 특히 한은이 유동성을 과도하게 공급한다든지, 금리 인하 시점에 대해 잘못된 시그널을 준다든지 해서 주택가격 상승을 촉발하는 정책 실수는 하지 말아야 된다는 데 금통위원 모두 공감하고 있다.

ssh@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