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간호사도 골수 검체 채취 할 수 있다"…의료계 '술렁'

의사단체 "고도의 전문지식 필요…환자 안전 우려"
전문간호사 역할 확대될 듯…"법적 안전망, 수당 마련해야"

PA(진료지원) 간호사의 의료 행위를 법으로 보호하는 안을 골자로하는 간호법이 여야 합의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가운데 28일 대전 중구의 한 병원에서 간호사들이 환자를 돌보고 있다. 2024.8.28/뉴스1 ⓒ News1 김기태 기자

(서울=뉴스1) 김규빈 기자 = 골수 검사를 위해 검체를 채취하는 업무를 간호사가 할 수 있다는 대법원의 판단을 두고 의료계가 술렁이고 있다. 의사단체는 '골막천자'와 같은 침습적 의료행위는 고도의 전문지식을 요구하기 떄문에 간호사가 수행할 경우 환자에게 위해가 갈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간호사들의 의료공백 사태에서 암암리에 해왔던 일이 인정된 것이라며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14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지난 12일 의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아산사회복지재단에 벌금 20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 동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사건의 발단은 대한병원의사협의회가 2018년 서울아산병원이 간호사들에게 골수 검사에 필요한 골수 검체를 채취하는 '골막 천자'를 시켰다고 고발하면서다. 이로인해 아산사회복지재단이 의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사건의 쟁점은 골막 천자가 '진료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였다. 의료법상 진료는 의사만 할 수 있고, 간호사는 의사의 진료를 '보조'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1심은 무죄를 선고했다. 골막 천자를 의사가 직접해야 한다고 명시한 규정이 없는데다, 의사의 지시를 받은 간호사들의 행위는 무면허 의료행위가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2심은 골막 천자 수행은 진료 보조가 아닌 '진료 행위'에 해당한다며 유죄 판단을 내렸다.

그러나 대법원은 "골수 검사는 의사만이 할 수 있는 진료행위 자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며 "의사가 현장에 입회할 필요 없이 일반적인 지도, 감독 아래 골수 검사에 자질과 숙련도를 갖춘 간호사로 하여금 진료의 보조 행위로서 시행하게 할 수 있는 의료행위라고 보아야한다"고 했다.

의사단체는 환자의 안전이 우려된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대한의사협회는 판결 직후 입장문을 통해 "단순 숙달되는 것에 의해 면허 범위 외 의료행위가 가능하다는 주장은 간호사 뿐만 아니라 간호조무사, 의료기기 업체 영업 사원도 의사 지도, 감독 없이 의료행위를 수행할 수 있다는 논리와 무엇인 다른가"라며 "의협에서 운영 중인 '간호사 불법진료신고센터'를 통해 간호사의 불법행위에 대해 지속적으로 고발 등의 조치를 통해 보건의료체계 붕괴로 인한 국민 피해를 방지할 것"이라며 비판했다.

대한병원협회도 성명을 통해 "대법원에서 간호사가 골막천자를 할 수 있다고 판결해버리면 골막천자는 모두 제대로 숙련을 받았는지도 알 수 없는 간호사가 하게 될 것"이라며 "전국적으로 발생할 심각한 의료사고와 피해는 환자들이 입을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내과의사회는 전날 입장문을 통해 "골수천자 검사와 같은 의료행위는 의학적으로 고도의 전문성을 요하는 절차로, 간호사가 독립적으로 시행한 것은 분명한 의료법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의료 현실을 고려한 어쩔 수 없는 판단이라는 견해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대학병원 교수는 "전공의들이 사직을 하고 나간 상황에서 교수들이 (전공의들이 하던) 골수천자까지 하면 수술방을 도저히 열 수가 없다"며 "의료공백이 심화되면 골수천자는 물론 침습적인 시술은 점점 더 간호사의 업무범위로 넘어가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국전문간호사협회는 "전문간호사는 양질의 교육과 자격시험을 통과한 질적인 인력으로서, 이번 대법원 판결 과정에서 치료의 질이 유지되는 인력임이 증명되었다"며 "올해 의정갈등으로 인한 전공의 공백으로 전문간호사를 비롯한 간호사들이 의료공백을 채우면서 했던 역할들이 수면위로 드러난 것"이라고 주장했다.

간호계에서는 이번 판결로 진료지원(PA) 간호사들의 의료행위 범위가 더 넓어질 것이라고 보고있다. 현재 간호법이 제정돼 시행되고 있지만 PA 간호사의 구체적인 업무 범위를 정한 시행령, 시행규칙은 마련되지 않았다. 이번 대법 판례에서 골수검사를 PA 간호사의 업무 범위로 인정한 만큼 2025년 6월 시행될 간호법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빅5 대학병원 소속 간호사 A씨는 "빅5 병원 중에서도 골막 천자 등 침습적 시술을 했을 경우 수당을 추가로 주는 경우는 몇 없다"며 "무작정 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늘리기 전에 법적 안전망과 수당 등을 마련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또 다른 빅5 대학병원 소속 간호사 B씨도 "전문간호사의 경우 대학원을 졸업하고, 병원에서 교육을 추가로 듣기 때문에 숙련도나 자질에서 문제될 것은 없다"며 "하지만 골수천자 후 합병증이 생길 것이 높은 환자나 소아 등은 의사의 지도나 감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rnki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