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갈등 6개월…의대 교수들 "뼈를 갈아 환자 봐, 장기전 대비"
격무에 지친 30~40대 서울의대 교수들 대책 모색
전공의 없이 병원 돌아갈 방안, 정부에 요구해야
- 강승지 기자
(서울=뉴스1) 강승지 기자 = 의대증원으로 불거진 의정갈등이 7개월째로 접어들며 의대 교수들의 피로감이 극에 달하고 있다. 전공의 공백을 감당해야 하는 데다 본연의 업무도 해내야 하는 상황에 맞닥트리면서 교수들 사이에선 "뼈를 갈아넣어 버티고 있으나 더는 지쳤다. 떠나겠다"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
보건복지부는 9일부터 하반기 전공의 추가 모집에 나서지만, 사직 후 미복귀 전공의들의 지원 가능성은 크지 않을 전망이다. 앞서 지난달 31일 마감됐던 하반기 전공의 모집은 7645명 모집에 104명(1.4%)만 지원했다.
의대 교수들은 이번 사태 장기화로 인한 과도한 격무는 물론 연구 같은 자기 계발을 할 여건도 되지 않는 상황이라며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 이에 일부는 병원에 요구안을 만들어 자구책을 모색하는가 하면, 상당수 교수들이 사직을 심각히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는 '미래세대 지원팀'을 꾸려 교수협 협력하에 격무 상황 등을 개선하기로 했다. 이들이 지난달 9일 30~40대 교수진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 대다수가 주당 70시간 이상 근무하고 있었고, 100시간 이상 근무하는 경우도 확인됐다.
24시간 당직 후 휴게시간도 보장되지 않을뿐더러 대부분 '심한 스트레스'를 토로했다. 연구 실적에 대해 "전혀 하지 못한다" 또는 "3분의 1 수준만 진행 중"이라는 답변이 응답자의 68.2% 수준이었다.
전임의와 젊은 조교수들은 당직·대기 업무 현실화와 외래진료를 줄이더라도 적정 근무시간과 연구시간이 보장돼야 한다는 의견을 개진했다. 또 진료보조인력을 확충하며 의사 업무를 재정립하자는 이야기도 나왔다.
비대위 미래세대 지원팀은 지난 5일 서울의대 교수 총회에서 이런 활동을 공유하며 "조만간 병원 집행부와 만날 예정이다. 각 진료과별 여건의 차이도 있지만 그 차이와 불만을 줄일 수 있도록 조치를 요구하겠다. 단순 진료량은 줄이고 연구 시간을 확보할 때"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한 대학병원 외과 A 교수는 "전공의들은 안 돌아온다. 이제 누가 필수의료를 하겠는가"라며 "교수 몇몇이 모여 병원을 차리는 일에 몇 개월 걸리니까 아직 잠잠할 뿐이다. 곧 있으면 교수들도 대거 그만둔다"고 우려를 표했다.
다른 대학병원 필수과 B 교수도 "외래진료나 수술을 한 뒤 당직 근무까지 하는 건 정말 힘들다. 취소되는 학술대회도 많고, 연구 여력은 없다"며 "뼈를 갈아 버티며 환자 보고 있다. 병원에 남은 교수들을 일부 전공의들은 욕한다는데 서글픈 일"이라고 토로했다.
연세대학교 의료원은 세브란스병원 전공의 부재로 인한 업무 공백을 퇴임 교수를 재고용하는 방안으로 대응하고 있다. 최근 이뤄진 비상 정책이사회에서 허동수 연세대 이사장은 "인건비를 조정해서라도 유능한 퇴임 교수를 적극 활용하라"고 주문했다.
이에 금기창 연세대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은 "제도를 마련했으며 현재 일부 퇴임 교수가 진료하고 있다"면서도 "가장 큰 문제는 당직 의사 부족인데 퇴임 교수가 당직의를 대체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따라서 앞으로 전공의 없이 병원이 운영되도록 정부는 물론 병원장, 교수들도 고민할 때라는 의견도 나온다. 대학병원 내과 C 교수는 "이번 모집은 글렀고 상황이 좋아져야 내년 3월이고, 그때까지 교수들이 버틸 수 있도록 잘 준비하는 게 현실적"이라고 진단했다.
C 교수는 "전공의 없이 운영될 수 있도록 인건비 등 보상 방안, 진료체계 개편 방안을 교수들도 제안할 때가 됐다"며 "특히 명확한 명분과 근거가 필요하다. '병원이 힘들다'는 하소연보다 명확히 요구해야 국민도 의료 현장 상황을 정확히 알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또 "의대증원 원점 재검토만 얘기할 수 없다. 병원이 다시 안정을 찾기 위해서는 이런 게 필요하다는 메시지가 확실해야 국민도 동의해 줄 수 있다. 구체적이지 않은 요구는 외면받을 뿐"이라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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