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건강] 눈앞 깜깜해지는 '희귀 혈액암'…"한달 약값이 400만원"

골수 기능 이상, 적혈구 과다 생성 '진성적혈구증가증'
신약 개발됐지만 비급여…국민청원 등 급여등재 목소리↑

ⓒ News1 김지영 디자이너

(서울=뉴스1) 강승지 기자 = # 매일 아침 2~3분씩 눈앞이 흐리던 김인순 씨(가명·59). 비만 오면 두통, 피로 그리고 양팔 통증이 심해 동네 이비인후과를 거쳐 큰 병원에 갔다. 혈액검사 결과, 혈액종양내과에 입원한 뒤 2020년 1월 진성적혈구증가증을 진단받았다.

항암제 '하이드록시우레아'로 치료했으나 내성이 생겨 손가락과 팔의 마비, 부기와 통증 등 심한 부작용을 겪었다. 다른 치료법이 없을지를 궁리하던 그는 '이 약'을 알았고 호전된 데 감사하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더 이상 이 약을 무료로 쓸 수 없는 처지가 될까 걱정하고 있다.

3일 의료계에 따르면 진성적혈구증가증은 골수의 체세포돌연변이가 골수 기능을 비정상적으로 활성화해 적혈구를 과다 생성하는 희귀 난치성 혈액암이다. 만 60세 이상 연령층에서 많이 발생하며 국내에 4995명의 환자가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두통, 피로, 현기증, 시력 장애, 이명, 마비 가려움증 또는 피부홍통증 등이 주 증상이다. 원인으로 'JAK2 돌연변이'가 추정되며 환자의 약 95%에서 발견되고 있다. 이 세포로 인해 골수 기능 이상과 적혈구가 과다 생성되며 백혈구, 혈소판 수치도 높아진다.

이로써 혈액의 점도가 높아지면 간, 심장, 뇌 또는 폐와 같은 주요 장기에 이어지는 동맥 혹은 정맥에 혈전증과 색전증이 발생할 수 있다. 특히 환자의 약 20%가 골수섬유증, 급성골수성백혈병과 같은 악성 혈액암으로 이행될 수 있어 적극 치료가 요구된다.

환자들한테는 적혈구 과다 생성으로 인한 합병증을 예방하고 악성 혈액암으로 진행되지 않도록 골수 내 암 유전자를 제거하는 근본적 치료가 필요하다. 주 치료제로 쓰여 온 '하이드록시우레아'는 혈구 수를 줄여 혈전증을 예방할 수 있는 데다 비용이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근본적 치료가 어렵고 일부 환자에게서는 구강, 궤양, 피부암, 용혈 빈혈 같은 이상 반응이 나타나 치료를 중단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하이드록시우레아는 환자의 약 10%에서 내성 등이 나타나는 한계점도 있다.

김 씨 역시 "진단 직후 500mL씩 총 5번의 사혈 치료를 받았다. 하이드록시우레아와 아스피린을 함께 먹기 시작했는데 1년이 지나니 부작용이 나타났다"며 "양쪽 종아리 저림, 양팔 통증과 마비 등을 겪었고 참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고 했다.

김 씨처럼 하이드록시우레아로 치료 불가능한 환자의 경우 현재로서는 신약 치료를 시도해 볼 수 있다. 골수에 변이된 세포를 선택적으로 제거하는 3세대 모노-페길화 인터페론 치료제 '베스레미'(성분명 로페그인터페론알파-2b)다.

이 약은 장기 치료했을 때 하이드록시우레아보다 높은 혈액학적 반응 및 분자학적 반응을 유지하며 치료 효과를 입증했다. 병의 원인인 JAK2 돌연변이를 제거해 근본적 치료의 가능성을 높여, 완치를 기대할 수도 있다.

김 씨는 "국내에서 임상시험을 진행한다는 소식에 담당 의료진을 거쳐 2022년 4월부터 서울대병원에서 임상 참여를 하게 됐다. 이 약으로 치료한 지 18개월 정도가 지나자, 몸이 뚜렷하게 좋아졌다. 일상생활도 어려웠는데 이제 사회생활도 가능하다"고 전했다.

ⓒ News1 DB

이어 "지금은 간수치도 정상이고, 유전자 변이율도 48.9%에서 28%까지 떨어졌다. 임상에 참여한 덕에 치료도 받고, 평생 쓸 수 있는 운은 다 썼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다른 환자는 이런 혜택을 볼 수 없다는 데 미안한 마음도 있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이 약이 아직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되지 않아 하이드록시우레아 치료 불가능한 환자는 최적의 치료를 받기 어려운 상황이다. 김 씨도 "아이들에게도 치료비 얘기를 못 했다. 자기 앞가림하기도 벅찬 아이들에게 엄마까지 부담을 줄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김 씨는 내년부터 더 이상 임상에 참여하지 못할 수 있다는 주치의 안내를 받고, 본인 돈 내고 치료를 이어가야 할 상황을 걱정했다. 이 경우, 한 달에 약 400만 원을 부담해야 한다. 김씨는 이 약의 급여화를 위해 대한혈액암협회에서 펼치는 활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김 씨는 "하이드록시우레아 부작용 때문에 일상생활이 불가능해 휴직 중이거나 퇴사한 환자도 많다. 건강만 나아지면 사회 구성원으로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는 이들"이라며 "건강보험이 적용돼 걱정없이 치료받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언급했다.

건강이 좋아지면 뭘 하고 싶냐고 묻자 김 씨는 "앞으로는 혈액암 환자들을 위해 병원 진료에 동행하는 자원봉사 활동을 하고 싶다. 직장 생활도 하고 싶다"며 "신약이 있지만 경제적 문제로 치료 못 받는 환자들이 많아 마음 아프다"고 전했다.

지난 2월에는 국민 청원에서 5만 명 이상의 동의를 받는 등 건강보험 급여 등재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업체 측도 하이드록시우레아에 불응성 또는 불내성인 진성적혈구증가증 환자를 대상으로 당국에 건강보험 급여 신청을 제출한 상황이다.

이성은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혈액내과 교수는 "하이드록시우레아 치료가 더 이상 불가한 환자들이라도 보험 급여가 적용돼 진성적혈구증가증 환자들이 희망을 잃지 않고 적극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기를 바란다"고 제언했다.

ksj@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