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공백 장기화…정부, ‘전공의 없는 병원’ 전환 속도

"지금이 최악, 지금처럼 비상 진료체계 유지해야"
PA 양성·전문의 중심병원 개편, 외국 면허의사 도입 추진

21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환자와 의료진이 오가고 있다. 2024.5.21/뉴스1 ⓒ News1 이동해 기자

(서울=뉴스1) 강승지 기자 = 의대 증원에 반발한 전공의들의 이탈이 장기화 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의료공백 최소화를 위한 정부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정부는 지금처럼 비상 진료체계를 유지하면서, 병원들이 전문의 중심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진료지원(PA) 간호사 양성은 물론 외국 면허의사 도입도 타진하는 등 의료공백 대응에 나서고 있다.

23일은 빅5 병원 등 전국 수련병원 전공의들이 지난 2월 19일부로 사직서를 내고 병원을 떠난 94일째다. 정부는 사태 초기 공공의료기관의 평일 진료시간을 확대하고 군 병원의 응급실을 일반인에게 개방하는 등 필수의료 공백 방지에 주안점을 뒀다.

갈수록 전공의들의 복귀 가능성은 희박해지고 남은 의료진의 업무가 가중되자 정부는 꾸준히 공중보건의사·군의관을 파견했다. 이날부터 군의관 120명이 상급병원과 권역응급의료센터 등에 추가 투입된다. 이로써 이날 기준 의료현장에 투입된 공보의와 군의관은 총 547명으로 늘었다. 상급종합병원 치료를 받으려던 경증 환자를 종합병원이 받아, 적정 진료를 하면 인센티브를 주는 대책도 시행 중이다.

이와 함께 병원장이 정한다는 조건 아래에 의사 업무 일부를 간호사가 할 수 있도록 2월 27일부터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을 하고 있다. 앞으로 업무범위 불명확에 따른 법적 피해를 예방하고 PA 인력 양성화·제도화도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더 나아가 전공의들에 대거 의존해 온 병원들이 전문의를 활용할 수 있도록 '전문의 중심 병원'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환자에게 전문 의료 서비스를, 전공의에게 수련에 집중할 환경을 각각 만들고 이번 사태 재현은 막겠다는 취지다.

다만 전공의 연봉은 평균 7000만 원, 전문의 연봉은 2억~3억 원으로 병원 입장에서 돈이 많이 든다. 당장 고연차 전공의 2910명이 내년 전문의 시험을 보지 않을 가능성이 커, 향후 전문의 수급도 걱정되는 상황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상대책위원장은 전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내년부터 전공의 비율을 조금 낮추고 병원은 전문의 2명 정도 고용하면 된다'는 내용의 정부 관계자 인터뷰 보도를 공유하며 "세브란스병원 전공의만 800명이 넘는데 전문의 2명으로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적었다.

박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전문의 인력 채용 강화를 위한 구체적 재원이나 정책을 내놓지도 않으면서 PA 확대 등 앞장서서 불법을 자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전날 기자간담회에서 "전문의를 한 병원당 몇 명을 둔다는 건 결정된 바 없다"고 설명했다.

조 장관은 "전문의 위주로 운영하는 병원에 가서 보니 인건비가 많이 소요돼 수가 책정을 고려해달라는 요구가 있었다"며 "전문의 중심 병원이 되면 안정적 환경에서 할 수 있도록 수가체계 변경과 정부 지원책을 강구하겠다"고 언급했다.

아울러 정부는 전공의 처우 개선책의 일종인 '전공의 근무시간 단축 시범사업'을 다음 주부터 시행한다. 연속근무 시간을 36시간에서 24~30시간으로 줄이는 내용으로, 대상 기관을 조만간 확정할 계획이다.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 회장이 22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윤 대통령에게 전달할 '응급의학과 사직전공의들이 윤석열 대통령께 드리는 글'을 들어보이고 있다. 2024.5.22/뉴스1 ⓒ News1 장수영 기자

특히 정부는 '심각' 단계의 보건의료 재난 위기 경보가 발령된 경우 외국 의사 면허 소지자도 복지부 장관 승인을 받아 의료행위를 할 수 있도록 한 '의료법 시행규칙' 일부 개정안을 내놨다. 20일부로 의견수렴을 마친 복지부는 법제처 심사 등 후속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외국 의사 면허 소지자 도입 가능성에 대한의사협회 등 의료계는 "후진국 의사 수입을 하느냐"는 등 거세게 반발했다. 박민수 복지부 차관은 최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을 통해 "향후 발생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보완 조치의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박 차관은 "외국 의사는 제한된 기한 내 정해진 의료기관에서 국내 전문의 지도 아래 사전 승인 받은 의료행위를 할 수 있다"며 "어떤 경우에도 실력이 검증되지 않은 의사가 우리 국민을 진료하는 일은 없도록 철저한 안전장치를 갖추겠다"고 전했다.

이밖에 복지부는 사태 장기화 상황에서 환자들 의견을 더 적극 수렴하기 위해 환자단체의 애로사항을 듣는 담당관을 국·과장 중 지정할 예정이다. 복지부 한 고위 관계자는 향후 비상진료 대책 추가 마련에 대해 "지금이 최악"이라면서 "지금처럼 비상진료체계를 유지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의대 교수들도 사태 장기화에 대비하고 있다. 전국 의과대학 교수 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는 이날 온라인 총회를 열고 사태 장기화 대책을 논의한다. 최창민 전의비 비대위원장은 "(1주일 휴진 등) 과격한 수단은 쓰지 않을 것 같다. 내년까지 갈 거라 대책 마련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ksj@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