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비 스모커, 금연클리닉에 가다…"보건소, 가까우면서도 멀었다"

[금연! 이제 다 바꾸자⑨] 첫 방문 '상담'서 좌절…2회차 땐 '죄책감'
지역 약국 활용 해외 사례 주목해야…약국 주도 시 금연율 36%

편집자주 ..."담배? 끊긴 끊어야지." 흡연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해봤을 법한 말이다. 몸에 좋지 않다는 걸 뻔히 알지만 '난 괜찮겠지'라는 자기 확신에, 참을 수 없는 욕구에 담배를 손에서 놓지 못한다. 문제는 담배의 종류는 더욱 다양해졌고 흡연자들의 금연 의지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금연정책도 이런 세태에 발맞춰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뉴스1이 국내 흡연 실태와 금연 정책을 돌아보고 흡연자를 금연의 길로 인도할 기획 시리즈를 준비했다.

서울 시내 흡연구역에서 시민들이 흡연을 하고 있다. 2024.8.19/뉴스1 ⓒ News1 김성진 기자

(서울=뉴스1) 황진중 기자 = 19살 때부터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 기자는 하루에 한 갑 이상을 흡연하는 헤비 스모커다. 15년이 넘는 시간을 단 한 번도 담배를 끊거나 금연을 해야겠다고 생각해 본 적도, 시도해 본 적도 없다. 하지만 흡연구역이 점차 사라지고, 지인들이 담배를 끊는 것을 보면서 3주 전 금연을 결심했다. 정부에서 진행 중인 국민금연지원서비스 7개 프로그램 중 보건소에 설치된 금연클리닉을 이용해 보기로 했다.

회사에서 가장 가까운 보건소 금연클리닉 상담사의 도움을 2번가량 받았지만 금연은 성공하지 못할 것 같다. 상담과 지원은 상대적으로 합리적이었다. 다만 운영시간과 접근편의성 등 한계가 있었다. 첫 방문 땐 자신감이 있었지만 두 번째 방문부터 번거로워지기 시작하면서 죄책감과 좌절감이 들었다.

◇ 보건소 금연클리닉 첫 관문, '형식적 상담'에 와르르

서울의 한 보건소 금연클리닉을 처음 방문했을 때 상담사는 기자의 생활습관과 흡연 습관을 체크했다. 등록카드에는 음주 횟수와 흡연 종류에 대한 질문이 적혀 있었다. 상담 결과 니코틴 의존도는 6점으로 평가됐다.

금연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현실적인 충고와 함께 상담사는 기자에게 니코틴 패치와 비타민, 사탕 등을 제공했다. 니코틴 대체제를 사용할 때 주의해야 할 점과 금연이 필요한 이유도 설명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간한 '보건소 금연클리닉 이용자의 금연촉진요인과 금연저해요인'에 따르면 금연을 시도한 사람들은 금연을 저해하는 첫번째 요인으로 상담사의 '형식적 상담'을 지목했다. 지속적인 모니터링의 부재도 주요 금연 저해 요인으로 꼽혔다. 다행히(?) 기자가 만난 상담사는 합리적으로 상담을 해줬다.

상담사는 첫 방문 이후 2주 후에 다시 금연클리닉에 방문하라고 했다. 2주가 지나는 동안 니코틴 대체제 등을 활용하면서 흡연 횟수를 줄였다. 금연클리닉에서는 '금연 결심 축하한다', '유혹 잘 이겨내고 금연 초심 잃지 마라. 도와주겠다', '연휴 잘 보내고 최고의 선택 금연을 잘 유지하라' 등의 문자 3통이 왔다.

흡연 횟수를 줄였지만 담배 생각은 여전했고, 담배를 피웠다. 금연에 대한 의지가 약해지면서 두 번째 보건소 방문을 앞두고 상념에 빠졌다. "보건소가 왜 이렇게 멀지?", "상담을 받으면 정말 담배를 끊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세 번째 방문일이 가까워지고 있다. 금연 시도는 실패했다. 완전히 금연을 하지 못했고, 여전히 니코틴 패치에 의존하고 있다. 흡연 횟수를 줄였다는 작은 성과가 있었지만 죄책감과 부끄러운 감정이 들었다.

일터에서 최대한 가까운 보건소를 선택해 방문하고 있지만 보건소 가는 것 자체가 번거로웠다. 금연클리닉 운영시간은 통상 직장인들의 근무시간과 같은 오전 9시부터 저녁 6시까지다. 자주 가진 않았지만 근무시간 중 편도 30~40분을 들여 보건소에 도착해 20~30분 상담을 진행하고 다시 돌아오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근무시간을 탄력적으로 활용할 수 없는 사람은 방문이 어려울 것 같았다.

보건소는 가까운 곳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운영시간과 거리 등을 감안할 때 심리적으로 먼 곳에 있었다. 2회차 방문 시 시간에 맞춰 갔음에도 보건소 상담사는 기자가 오지 않을 줄 알았다고 말했다. 곧 세 번째 방문일이 다가온다. 금연에 도전한 지 한 달째 되는 날이다. 금연에 실패했다고 상담사에게 사실대로 말해야 할 듯하다.

◇국가금연지원서비스 실효성 의문…참가자 줄고 예산 삭감 '악순환'

정부는 금연율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국가금연지원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문제는 실효성이다. 효과가 떨어지니 참가자가 줄고, 관련 예산이 삭감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

금연 예산부터 살펴보자. 병의원 금연치료 서비스를 제외한 금연지원서비스에 배정된 예산은 국민건강증진부담금에서 배정된 국고로 운영된다. 건강증진기금은 지난 2020년 4조 2448억 원에서 올해 3조 1040억 원으로 감소했다. 같은 기간 정부 금연사업 예산은 1220억 원에서 1000억 원으로 줄었다. 건강증진기금에서 금연정책에는 단 4%만이 배정된 셈이다.

참여자 수가 줄다 보니 배정된 예산 집행률이 떨어져 예산이 계속해서 줄어들게 된 것으로 전해진다. 보건소 금연클리닉 방문자 수는 지난 2019년 35만 8955명에서 2022년 15만 4702명으로 떨어졌다. 3년 새 절반 이상(57%) 쪼그라든 것이다. 같은 기간 금연치료 건강보험 지원사업 이용자 수는 28만 9651명에서 15만 5021명으로 46% 줄었다.

금연클리닉 등 이용자 수.(보건복지부, 백종헌 의원실 자료)/ 뉴스1 ⓒ News1 윤주희 디자이너

2022년 국민영양조사 결과를 토대로 분석한 금연클리닉 이용자 비율은 약 307만명의 금연 시도자 중 5%에 불과했다. 금연을 시도하는 대다수 흡연자들은 금연클리닉을 이용하기보다 개인 의지에 의존해 담배 끊기에 도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개인 의지에 의한 금연 성공률은 3~5%대에 그친다.

해외 금연 선진국에서는 금연상담과 금연 보조제 복약지도가 체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맞춤형 접근을 통해 금연 성공률을 높이고 있다.

약국에서는 흡연자의 금연에 효과적인 니코틴 껌, 패치 등 니코틴 보조제를 판매 중이다. 니코틴 보조제는 국내에선 활용도가 낮은 편이지만 올바르게 사용할 시 금연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니코틴 보조제는 올바르게 사용해야 금연 성공률이 높기 때문에 정확하고 구체적인 복약지도가 필요하다. 다만 우리나라 약국은 흡연자에게 자세한 복약지도를 하기 위한 시간과 비용, 인력 등 인프라가 부족하다. 니코틴 보조제 복약지도와 관련한 약사 교육 프로그램 등도 전무하다시피 한 상황이다.

◇해외선 지역 약국이 금연 지원 체계적 제공…상담 수가 등 정책 마련 시급

호주와 캐나다에서는 금연상담이 흡연자의 개별적 상황에 맞춰 세밀하게 제공된다. 상담 과정에서는 흡연의 원인, 스트레스 요인, 흡연 욕구 관리 방법 등을 다루면서 금연 의지를 지속적으로 강화한다. 약사들의 상담은 주정부나 보건당국 차원에서 일정부분 상담수가 등 재정적 지원 속에 이뤄진다.

캐나다는 각 주의 주관하에 금연지원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공통적으로 약국을 통한 금연상담이 가능하다. 약료 관리 시스템, 금연 환자 관리 시스템에 환자를 등록하게 되면 약사에게 소정의 상담 수가가 지급된다.

2019년 발표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약국이 주도하는 금연지원프로그램에 참여한 흡연자 중 36%가 6개월 이상 금연을 유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약국 도움 없이 6개월 이상 금연한 비율 7%와 비교해 5배 이상 높다.

약국 활용 금연지원서비스 해외 사례.(각 국가 보건당국 등)/뉴스1 윤주희 디자이너

호주는 약국 금연상담 시 사용 가능한 가이드라인을 정부차원에서 배포하고 있다. 약사의 상담 서비스는 호주 약국들의 협업체인 CPA(Community Pharmacy Agreement)에서 운영하는 약국 보조금 프로그램 등을 통해 재정적으로 지원을 받고 있다.

국내에서도 약사들의 전문적인 금연 상담을 제도적으로 지원했을 때 금연율을 끌어올리는 데 도움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3년부터 시행된 서울시의 세이프약국이 그 예다.

세이프약국은 약력 관리부터 금연·자살예방 등에 이르기까지 종합적인 보건서비스를 제공하는 약국을 지칭한다. 금연상담도 서비스 제공 항목에 포함됐다. 총 4주간의 금연서비스를 약국에서 제공했다.

해당 사업을 분석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세이프약국 금연서비스에 참여한 흡연자 중 절반이 넘는 59%가 4주째 금연을 유지했다. 해당 연구에서는 성공 요인으로 약국의 높은 접근성을 꼽았다.

한 약사는 "고령화로 인해 약사는 단순한 약 조제를 넘어 통합적인 건강관리와 지역 보건의료 시스템에 참여하는 등 역할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면서 "모든 건강 관리의 시작이자 기본이 되는 금연도 마찬가지로 접근성이 좋은 약국이 지역 사회에 일차 보건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다양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에는 약국에서 가능한 금연상담 제도가 마련돼 있지 않다"면서 "해외 사례와 세이프약국 등을 통해서 알 수 있듯 약국의 금연상담이 활성화되면 금연율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고려해 국내 국가금연지원서비스에서 약국의 역할 확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ji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