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 약 드실 시간이에요"…민간공공협력 후 결핵환자 5만→2만
[요즘 질병청 뭐함?] 전담간호사 294명…"가장 중요한 역할"
치료 어려운 고령 환자 비율 증가…결핵 관리 중요성↑
- 조유리 기자
(서울=뉴스1) 조유리 기자 = 가족 없이 혼자 사는 77세 이정숙 씨(가명)는 치매를 앓고 있다. 평소에는 일상적인 대화가 가능하지만 치매 증세가 심해지면 최근 있었던 일을 기억하지 못하며 대화를 나누기 어려운 상태가 된다. 이런 이 씨는 지난 4월 치료가 어려운 다제내성결핵에 걸렸다.
다제내성결핵은 전체 결핵 환자의 3%가량을 차지한다. 결핵균에 의한 질병이라는 점에서 약이 잘 드는 일반 결핵(감수성 결핵)과 같지만 주요 결핵 치료제인 이소니아지드, 리팜핀에 모두 내성을 보인다. 이 때문에 감수성 결핵과 약제 구성이 다르고 치료 기간, 부작용 빈도가 모두 높다.
감수성 결핵은 통상 완치에 6개월이 소요되지만 다제내성결핵은 일반적으로 6~20개월이 필요했다. 올해부터는 다제내성결핵도 6~9개월 만에 치료를 끝낼 수 있는 치료법이 개발됐다. 그러나 두 결핵 모두 약을 중단하면 재발하거나 내성이 생겨 치료 완료 시까지 지속적인 약 복용이 매우 중요하다.
이 씨의 치료를 맡게 된 백형자 고려대학교 구로병원 결핵전담간호사는 "유선으로 복약관리를 하던 중 어르신과의 상담 진행이 원활하지 않아 방문 관리 등 직접적인 복약관리가 필요해 보여 관할 보건소로 바로 연락했다"고 말했다.
연락을 받은 구로구 보건소는 시니어 복약 지원사업을 통해 이 씨의 집에 원격화상복약기기를 설치했다. 실시간 약 복용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다. 동시에 가정방문을 진행하며 치매안심센터의 치매 케어와 결핵 진료를 원활히 받을 수 있게 도왔다.
질병청 관계자는 고령층 환자관리가 중요한 이유에 대해 "이미 만성질환 등 타 질환 약제를 복용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 결핵약제복용이 어렵거나 타 질환으로 인한 건강 상태가 나쁜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대한결핵협회가 지원하는 시니어 복약 지원사업은 이 씨와 같은 65세 이상 중 중·고위험군 환자 및 다제내성결핵환자, 치료 완료에 어려움이 있는 비순응·취약계층 환자를 중심으로 주기적인 방문관리 등을 통해 복약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민간공공협력(Public-Private Mix, PPM) 병원의 결핵전담간호사와 지자체의 결핵관리전담요원의 긴밀한 협조로 이 씨는 23일 현재 치료종료를 앞두고 있다.
민간공공협력 결핵관리사업은 정부가 민간의료기관에 백 씨와 같은 결핵관리전담간호사를 배치해 환자관리를 지원하는 등 민간의료기관과 정부, 지자체가 협력해 결핵환자를 관리하는 사업이다.
국가가 나서서 결핵 관리를, 그것도 전액 무료로 지원하는 이유는 우리나라 결핵 발생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2위이기 때문이다. 사망률은 4위 수준이며, 2022년 코로나19 다음으로 높은 국내 감염병 사망 원인은 결핵이었다.
이러한 불명예를 극복하고 결핵 확산을 막기 위해 보건당국은 PPM 사업 등을 통해 결핵 관리를 체계적으로 해나가고 있고, 그 결과 결핵 신환자는 2011년 인구 10만 명당 78.9명에서 지난해 30.6명으로 감소했다.
PPM 사업은 2007년 시범운영으로 11개 의료기관이 우선 사업을 시작했고 이후 2011년 전국으로 본격 확대돼 올해 고려대 구로병원을 포함한 174개 의료기관이 참여하고 있다. 이 PPM 의료기관에서는 전체 결핵 환자의 81.2%(1만 5858명)를 맡고 있다. 발생 환자 10명 중 8명 이상을 관리하는 셈이다.
각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결핵관리전담간호사는 총 294명으로 이들은 의료기관에서 치료받는 결핵환자를 관리하고 비순응 환자나 치료 취약 환자가 발생할 경우 보건소에 관리를 의뢰한다. 보건소 등 지자체에는 결핵관리전담요원 595명이 결핵환자 복약관리, 맞춤형 사례관리, 다제내성 결핵 집중 관리 등을 하고 있다.
2011년 이후 지난해까지 PPM 사업 참여 병원을 통해 결핵 확진을 받은 환자는 총 45만 6816명이며, 이중 전담간호사에 관리받은 환자는 30만 7997명에 달한다. PPM 병원의 환자 치료 성공률은 80%로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지난 16일 고려대학교 구로병원 결핵 상담실에서 만난 백 간호사는 "결핵 치료는 어떤 결핵이냐에 따라 약제 구성이 달라져 충분한 설명과 관리가 필요한데, 약은 하루 한 번 정해진 시간에 복용해야 최적의 혈중 농도를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주상 인천성모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결핵은 법정감염병으로 진단이 복잡할 뿐 아니라 부작용이 많이 발생하고, 치료 과정이 매우 길다. 전담간호사는 환자를 적절히 관리해 치료중단을 줄이고 치료 성공을 높이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고 밝혔다.
PPM 사업의 중요성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결핵 환자는 줄고 있지만 치료와 의사소통의 어려움이 있는 고령 환자와 외국인 환자 비율이 매년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국내는 여전히 활동성 결핵이 많고, 특히나 65세 이상 고령층의 결핵환자 비율이 증가하고 있으며 부작용 및 동반 질환이 많아 환자 교육과 관리가 매우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14년에 걸친 결핵 사업 덕에 2011년 5만 491명이던 결핵환자는 지난해 1만 9540명으로, 다제내성결핵 발생 환자는 2011년 975명에서 2021년 371명으로 뚝 떨어졌다. 치료 중단과 실패로 재치료를 받게 된 환자 비율은 18.7%에서 13.3%로 줄었다.
이렇듯 국가결핵관리사업에 PPM 결핵관리사업이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지만 전담간호사의 급여는 일반의료기관에 비해 많이 적은 편이다. 환자 수가 줄어들며 예산이 늘어나지 못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정부의 2030년 '결핵 제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결핵 관리에 집중하는 만큼 이들에 대한 지원이 재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 교수는 "이 모든 것을 정부가 단독으로 해낼 수 없다. 특히나 우리나라는 민간 의료가 발달함에 따라 과거와 달리 민간에서 치료하는 환자의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PPM 사업은 민간의 결핵환자를 효율적으로 관리할 중요한 방안"이라며 "세계의 모범이 될 수 있는 결핵관리사업"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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