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태 더 악화할 것"…'블랙리스트 유포' 전공의 구속에 들끓는 의료계

의협회장 "정부가 만든 피해자"…전북의사회 "공권력 남용"
일선 의사들도 "잘못했지만 구속은 아냐…정부 악수둔 것"

의료계 집단행동에 동참하지 않은 의사·의대생의 신상 정보가 담긴 블랙리스트 '감사한 의사'를 유포한 사직 전공의 정 모씨가 20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친 뒤 경찰과 함께 이동하고 있다. 2024.9.20/뉴스1 ⓒ News1 장수영 기자

(서울=뉴스1) 천선휴 기자 = 의료 현장에 남거나 복귀한 의사들의 신상정보가 담긴 블랙리스트를 유포한 사직 전공의 정 모씨가 구속되자 의료계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들끓고 있다.

의사 단체는 물론 일선 현장을 지키고 있는 교수들도 "명단 유포는 잘못된 행동이지만 구속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며 "정부가 악수(惡手)를 둔 것"이라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서울중앙지법 남천규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지난 20일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를 받는 사직 전공의 정 모 씨에 대해 '증거인멸 염려'를 이유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정 씨는 지난 7월 의료계 온라인 커뮤니티 '메디스태프'와 텔레그램 등에서 의료 현장에 남거나 복귀한 전공의·의대생을 비꼬는 이른바 '감사한 의사' 명단을 만들어 수차례 게시한 혐의를 받는다. 해당 게시물에는 피해자들의 실명·소속 병원·소속 학교 등이 자세하게 기재됐다.

정 씨가 구속되자 의료계는 참담한 심정을 내비치며 정부를 규탄했다.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장은 사직 전공의 정 씨가 구속된 다음날인 21일 서울 성북경찰서를 찾아 면회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구속된 전공의 그리고 리스트에 올라서 정말 피해를 본 분들 모두 정부가 만든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이어 "오늘 이 유치장에 있어야 할 자들이 과연 생명을 살리던 현장에서 잠도 못 자고 집에도 못 가고 자기 몸 하나 돌볼 시간 없이 환자들 죽어가는 현장에 있던 전공의여야 하는가"라며 "(정부가) 의사들 사이의 관계를 하나하나 다 결딴내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임현택 대한의사협회 회장이 21일 서울 성북경찰서에서 의료계 집단행동에 동참하지 않은 의사·의대생의 신상 정보가 담긴 블랙리스트를 작성 혐의로 구속된 전공의 면회를 마치고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4.9.21/뉴스1 ⓒ News1 임세영 기자

전북의사회도 같은 날 성명서를 내고 "'의료계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사직 전공의를 구속한 것을 강력히 규탄한다"며 "정부의 의료계 탄압 중단과 사직 전공의의 즉각적인 석방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밝혔다.

이어 "의료계의 목소리를 억압하고, 개인적인 의견 표출을 이유로 사직 전공의를 구속하는 행위는 명백히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며 "증거 인멸과 도주 우려가 없는 상황에서 구속은 과잉 금지 원칙을 위반한 공권력 남용과 같다"고 주장했다.

경기도의사회 역시 같은 날 서울 이태원에서 '전공의 구속 인권 유린 규탄' 집회를 열고 "의사 표현을 말살하는 북한 수준의 인권 유린"이라고 강도 높은 발언을 쏟아내기도 했다.

노환규 전 의협은 "정 씨의 행위는 스토킹 처벌법이라는 현행법을 위반한 건 사실이지만 피해를 입었다는 당사자가 아닌 정부가 나서서 서버 압수수색 등 조사를 시작했다"며 "증거인멸의 위험은 없었을테고 정 씨는 지금 어려운 가정사를 안고 있어 가족을 두고 도주할 수 없는 상황인데도 구속영장을 신청해 결국 구속시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는 정부와 사법부의 합작품"이라고 날을 세웠다.

의료현장을 지키고 있는 의사들 사이에서도 전공의를 구속까지 시킬 줄은 몰랐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서울의 한 의과대학 교수는 "이게 구속 사유가 되느냐"라면서 "전공의 대표 줄소환에 구속 수사로 협박해대면서 조건 없는 여야의정 협의체를 바라선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의대 교수도 "명단을 올리는 것은 찬성하지 않지만 구속시킬 일은 아니라고 본다"고 했다.

이 교수는 "구속 사유는 대개 일정한 주거가 없을 때, 증거 인멸 염려가 있을 때, 도망하거나 도망할 염려가 있을 때 인정되는데 이미 증거를 확보한 상태에서 증거 인멸 우려로 구속할 필요가 있느냐"며 "이 결정이 가져올 파급효과가 사태를 더 악화시킬 것은 분명해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국민 감정을 자극하며 의사 악마화를 지속하면 정권의 낮은 지지율은 잠깐 반등할지 몰라도 길게 보면 악수를 둔 것"이라고 비판했다.

sssunhu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