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선 담배 못 끊어요"…전자담배 현실 못 따라오는 금연 정책
[금연! 이제 다 바꾸자⑤] 정부 클리닉 참여율·이수율 '뚝'
"20년 전부터 해온 금연 정책, 사회 변화 맞춰서 진화해야"
- 천선휴 기자
(서울=뉴스1) 천선휴 기자 = "반차까지 쓰고 보건소 금연클리닉까지 갔는데… 다시 피우고 있습니다. 이것저것 주면서 또 오라는데 직장인이 보건소 운영 시간에 맞추기 쉽나요? 아니면 전화 상담을 하라는데 그걸로 설득될 것 같으면 보건소 가지도 않았어요. 이젠 그냥 전자담배로 갈아타려고요. 전 그냥 죽어서야 끊을 수 있나 봅니다."
'담배 끊은 사람하고는 상종도 하지 말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금연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호기롭게 금연을 다짐하고 국가금연지원서비스를 통해 금연을 시도했다가 외려 '나는 안될 사람'이라며 절망에 빠져 금연 시도조차 하지 않게 되는 경우들이 종종 있다.
현재 운영되고 있는 국가금연지원서비스는 △병의원 금연치료 △보건소 금연클리닉 △금연 상담전화 △온라인 금연지원 서비스 △찾아가는 금연지원 서비스 △금연캠프 등 7가지다.
하지만 이 국가금연지원서비스를 이용하는 흡연자들은 날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서비스에 참여한 후 끝까지 프로그램을 이수한 흡연자는 30%대에 불과하다.
◇참여율도 이수율도 '뚝'…흡연자들도 외면하는 국가금연지원서비스
실제로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대표적인 국가금연지원서비스 중 하나인 병의원 금연치료의 경우 참여자 수는 2019년 28만 9651명→2020년 21만 2283명→2021년 17만 8004명→2022년 15만 5021명으로 3년 새 약 46% 감소했다.
12주 동안 6회 상담을 채우거나 약제 투약을 다 끝낸 이수자 또한 2019년 44.44%에서 2022년 35.94%로 급감했다.
병의원 금연치료가 아닌 보건소에서 실시하는 금연클리닉의 사정도 비슷하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9년 이용자 수는 35만 8966명이었지만 2020년 16만5482명→2021년 14만 6611명→2022년 15만 4702명으로 3년간 약 57% 줄었다.
또 6개월 성공률도 2019년 12만 710명에서 2022년 4만 4885명으로 3년 새 약 63%나 급감했다.
이 같은 부실 성적표에 병의원 금연치료를 담당하는 건강보험공단과 금연클리닉을 관할하는 보건복지부는 어떤 진단을 내리고 있을까.
건보공단 관계자는 병의원 금연치료의 이수율이 떨어지고 있는 데 대해 "2019년까지는 56일 이상 투약하면 이수로 봤지만 2020년부터는 84일 이상 투약을 해야 이수가 되는 것으로 기준이 높아졌다"고 했다. 약제 투약 이수 기준이 높아지면서 이수율 하락에 영향을 미쳤다는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또 △코로나로 인한 의료 이용 감소 △성인 흡연율 감소 △전자담배의 등장 역시 병의원 금연치료의 참여율과 이수율 감소에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복지부도 금연클리닉의 이용자 수와 이수율이 떨어진 것에 대해 이 세 가지를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코로나 때문에? 흡연율이 줄어서?…잘못된 진단에 금연 예산 '반토막'
하지만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코로나로 인한 의료 이용 감소 △성인 흡연율의 감소를 원인으로 두는 데는 크나큰 오류가 있다는 지적이다.
먼저 코로나19 기간에 보건소에서 금연클리닉을 제대로 운영할 수 없어 이용자가 줄었다는 진단은 코로나19 이전 시기 금연클리닉 이용자 수를 분석해보면 곧바로 거짓임이 드러난다. 확인 결과 2015년 57만 4108명에 이르던 이용자 수는 2018년 36만 8274명으로 3년간 약 36% 감소했다. 같은 기간 6개월 성공률도 26만 9345명→12만 6525명으로 3년 새 약 53% 줄었다. 코로나 유행 이전에도 국가금연지원서비스 이용자는 줄고 있었던 것이다.
두 번째 원인으로 지목된 '성인 흡연율의 감소'도 착시에 따른 것이다.
질병관리청이 매년 실시하는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성인의 현재 흡연율은 2018년 22.4%→2020년 20.6%→2022년 17.7%로 내리막을 걷고 있다. 하지만 이 조사는 궐련형 담배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전자담배는 커버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질병청의 설명이다.
실제로 기획재정부가 공개한 연도별 담배 판매량을 보면 흡연율과 같은 양상을 보이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다.
2014년 43.6억갑이던 궐련담배 판매량은 담뱃값이 4500원으로 오른 2015년 33.3억갑으로 뚝 떨어졌다. 이후 2016년 36.6억 갑으로 살짝 증가한 담배 판매량은 궐련형 전자담배 아이코스가 국내에 상륙한 2017년 34.4억 갑에서 2018년 31.4억 갑→2019년 30.6억 갑→2020년 32.1억 갑→2021년 31.5억 갑→2022년 30.9억 갑→2023년 30억 갑으로 꾸준히 감소했다.
하지만 궐련형 전자담배 판매량을 합친 총 담배 판매량은 2023년 36.1억 갑으로 아이코스 등장 전인 2016년 36.6억 갑과 별반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철민 서울대학교병원 강남센터 가정의학과 교수는 "금연 시도율 데이터들을 보면 새로운 담배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던, 또는 기존 담배와 함께 사용했던 층에서 담배를 많이 끊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2020년 내가 발표한 논문을 봐도 궐련형 전자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일반 담배를 피우는 사람보다 약 16% 금연 시도율이 낮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문제는 국가금연지원서비스가 흡연자들에게 외면을 받고 있는 사이 금연 관련 예산은 매년 쪼그라들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사업비에서 지출되는 병의원 금연치료 서비스 예산은 2019년 768억 원에서 2024년 302억 원으로 5년 새 절반 이상의 예산이 사라졌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참여자 수가 줄다 보니 배정된 예산 집행률이 떨어져 예산이 계속해서 줄어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병의원 금연치료 서비스를 제외한 금연지원서비스에 배정된 예산은 국민건강증진부담금에서 배정된 국고로 운영되는데, 2020년 1220억 원에서 2024년 1000억 원으로 몸집이 줄었다.
특히 2024년 예산에서 가장 많은 감소세를 보인 것은 금연 홍보 및 캠페인과 관련된 예산이다. 지난해 241억 원에서 180억 원으로 61억 원이 깎였다.
◇최고 성공 사례 '노담 캠페인' 정작 흡연자들 마음 훔치는덴 실패
'담배는 노답, 나는 노담'이라는 슬로건으로 잘 알려진 '노담 캠페인'은 공공 캠페인 중 최고 성공 사례로 손꼽힌다.
그도 그럴 것이 2020년 노담 캠페인이 시작된 이후 최근 4년간 대한민국광고대상, 올해의 광고상, 그랜드에피, 소비자가 선택한 좋은 광고상 등 국내외 광고상을 휩쓸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노담 캠페인은 2020년 등장 후 2023년까지 변화를 거듭하며 4년간 이어져왔다.
복지부도 노담 캠페인의 주요 성과에 대해 "노담 브랜드 론칭 이후 과거 대비 금연 광고 호감도가 상향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또 금연자와 비흡연자 집단 심층면접 결과 '주제에 공감, 과거 위협소구 광고에 비해 거부감이 없다'는 결과를 얻었고, 빅데이터 분석에서 노담 캠페인 감성어 분석 결과 평균 61% 이상 긍정 반응을 보였다고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노담 캠페인도 정작 가장 중요한 흡연자들의 마음을 훔치지는 데는 실패했다.
복지부는 노담 캠페인에 대한 흡연자 집단 심층면접에서 '신선하고 재미있게 느껴지지만 흡연자의 금연효과는 미미하다'는 반응을 얻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복지부는 올해 국가금연홍보 및 캠페인 계획에서 성인 흡연율에 대해 '일반담배 흡연율은 지속 감소하고 있으나 액상형 및 궐련형 전자담배 사용률은 증가하고 있다'고 평가했고, 청소년 흡연율에 대해서는 '일반담배 흡연율은 답보상태이며 액상형 및 궐련형 전자담배 사용률은 빠르게 증가, 특히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률은 성인 수준에 근접했다'는 분석을 내놨다.
이러한 담배 소비 행태 변화에도 불구하고 복지부는 새로운 금연 사업을 계획하고 있지는 않다고 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궐련에서 전자담배로 많이 갈아타고 있는데 금연 홍보나 광고 제작할 때 전자담배편을 추가로 송출하고 청소년 대상 흡연 예방 교육을 할 때도 전자담배에 대한 내용을 포함해서 하고 있다"며 "전자담배와 관련한 금연 정책은 담배 규제 정책으로 하는 게 맞다"고 했다.
이에 전문가들은 담배 형태의 진화와 개개인의 흡연 성향에 발맞춘 세밀한 금연 유인 정책 및 지도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최재욱 고려대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금연 정책은 20여 년 전부터 꾸준히 해왔는데 이제 전자담배가 생기면서 금연 정책도 변화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서 "금연사업의 경우 계속 해나가야 하는 건 맞지만 방향을 바꿔 또 다른 대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신규로 흡연하는 사람들을 줄이기 위한, 특히 청소년들이 흡연하지 않도록 하는 사업을 철저히 해야 한다"며 "전자담배 관련 이슈를 하루라도 빨리 정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sssunhu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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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담배? 끊긴 끊어야지." 흡연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해봤을 법한 말이다. 몸에 좋지 않다는 걸 뻔히 알지만 '난 괜찮겠지'라는 자기 확신에, 참을 수 없는 욕구에 담배를 손에서 놓지 못한다. 문제는 담배의 종류는 더욱 다양해졌고 흡연자들의 금연 의지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금연정책도 이런 세태에 발맞춰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뉴스1이 국내 흡연 실태와 금연 정책을 돌아보고 흡연자를 금연의 길로 인도할 기획 시리즈를 준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