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 깨고 또 물러선 정부…이젠 전공의가 손 내밀 때 [기자의 눈]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8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 결과를 발표한 뒤 고개숙여 인사하고 있다. 2024.7.8/뉴스1 ⓒ News1 허경 기자

(서울=뉴스1) 천선휴 기자 = "정부가 진작 이런 발표를 했다면 휴진을 안 했을 텐데,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8일 오후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복귀 여부에 상관없이 현장을 떠난 모든 전공의에 대한 행정처분을 하지 않겠다"고 발표한 뒤 서울의 한 의과대학 비상대책위원장을 맡고 있는 교수가 기자에게 가장 먼저 건넨 말이다.

정부는 이날 복귀한 전공의들뿐만 아니라 복귀하지 않은 전공의들에게까지 모두 법적인 처분을 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난 후 각종 명령을 쏟아내며 강경 기조를 이어가던 정부와는 180도 달라진 모습이었다.

전공의를 비롯한 의료계로서는 너무나 당연한 발표였을지 몰라도 다른 정부 기관의 공무원들은 이 발표에 적지 않게 놀란 눈치였다. 한 정부기관 관계자는 "원점 재검토만 안 했을 뿐이지 결국 또 자존심 다 버리고 전공의 요구를 다 들어준 셈"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강경한 태도로 각종 명령을 남발하던 정부가 갑자기 자존심을 꺾은 건 그만큼 전공의의 복귀가 간절하기 때문이다.

'공중보건의, 군의관으로도 의료 공백을 충분히 메우고 있다'고 떵떵거리던 정부가 전공의들의 마음에 닿지 않을 걸 알면서도 '9월 수련 재응시 특례'를 내놓은 것도 전공의가 복귀하지 않으면 당장 이 의료 체계가 오래 버티기 힘들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이에 조 장관도 남아 있는 전공의와의 형평성 문제에 대해서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앞으로 정부가 구축하려고 하는 필수의료를 책임질 젊은 의사라는 점을 감안해 정부가 비판을 각오하고 결정하게 된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물론 전공의들이 넉달 동안 정부의 강압적인 태도와 다그침에 깊은 상처를 받았다는 걸 알고 있다. 개인의 삶을 버리고 병원에서 살다시피 하며 환자의 곁을 지켜왔지만, 이번 사태로 환자들의 원망과 비난을 들으며 받았을 상처 또한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다.

또 기형적인 의료체계의 문제점을 뻔히 알면서도 긴 시간 방치해 온 정부와 병원, 그리고 선배들에 대한 분노도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미 2025학년도 의대 증원 절차는 끝이 났다. 시간을 되돌렸다간 더 큰 혼란을 불러올 수 있는 불가역적 사안이기에 더 이상 번복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아직도 '원점 재검토' '전면 백지화'를 주장하는 것은 대화하지 말자는 얘기와 다름없다. 설득력이 떨어지면 국민의 지지 또한 얻지 못한다.

정부는 의료계와 2026학년도 이후 의대 정원은 의료계와 함께 논의하겠다고 한발 물러섰다. 또한 의료수가 개편, 전공의 처우 개선, 필수·지역의료 정상화 등에 대해서도 의료개혁특별위원회에서 함께 논의하겠다고 거듭 밝혀왔다.

물론 정부가 제시하고 있는 의료개혁 대책들이 성에 안 찰 수 있다. 의료계 말대로 정부 말을 믿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더욱더 논의의 중심으로 들어와 문제점을 짚고 현장의 목소리를 내야 할 필요가 있다. 전공의들이 사태 초기부터 펼쳐오고 있는 전략인 '탕핑'(躺平·누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음)이 현재의 상황에서도 통하는 묘안일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때다.

sssunhu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