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특례·행정처분 철회' 한참 물러난 정부…전공의 돌아올까

의대 교수들 "혼란만 가중"…사직 전공의 "2월 사직서 수리 빠져"
환자 지킨 전공의와 형평성 논란도…정부 "비판 각오하고 결정"

8일 서울시내의 한 대학병원에 응급실 앞에 환자가 보이고 있다. 2024.7.8/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서울=뉴스1) 김규빈 천선휴 강승지 기자 = 의료계에 강경 기조를 유지하던 정부가 미복귀 전공의 등 모든 전공의에 대한 행정처분을 철회하고, 사직 후 9월 전공의 모집에 응시할 경우 특례를 적용하기로 했다. 의료계는 전공의들의 복귀 효과가 미미할뿐더러 수도권 쏠림 효과가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일각에서는 의료현장을 이탈한 이들에게 면죄부를 줬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전날(8일) 오후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에서 "모든 전공의에 대해 복귀여부에 상관없이 행정처분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며 "중증·응급환자의 진료 공백을 최소화하고, 전문의가 제때 배출될 수 있도록 수련체계의 연속성을 유지하는 것이 공익에 부합하다는 판단 하에 고심 끝에 내린 결단"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복귀한 전공의와 사직 후 오는 9월 수련에 재응시하는 전공의에 대해서는 '수련 특례'를 부여할 예정이다. 전공의 임용시험 지침에 따르면 수련 기간 도중 사직한 전공의는 1년 이내에 같은 과목, 같은 연차로 복귀할 수 없는데 전공의의 복귀를 위해 이를 완화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전문의 자격 취득 시기가 늦어지지 않도록 연차별, 복귀시기별 상황에 맞춰 수련 특례를 마련할 방침이다.

정부는 각 수련병원들에게 "오는 22일부터 시작되는 하반기 전공의 모집 일정에 차질이 없도록 오는 15일까지 미복귀 전공의에 대한 사직 처리를 완료하고, 결원을 확정해주시길 바란다"고 했다. 오는 9월 전공의 모집에서는 결원이 생긴 모든 과목을 대상으로 모집이 이뤄질 예정이다.

의료계에서는 행정처분 철회는 전공의 복귀를 위한 최소한의 조치라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강희경 서울의대·서울대병원 비상대책위원장은 "복귀를 고려하는 경우에 최소한의 지뢰를 제거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방향에는 동의하는 부분이 있지만, 재정이 확보된 것이 아니고 정책 결정 과정이 합의 또는 숙의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달려가다가 넘어질까봐 걱정이다"고 조언했다.

비교적 처우가 좋은 수도권, 인기과 전공의들만 복귀를 할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또 이번 특례 적용으로 지방 전공의들이 수도권 소재 대학병원을 지원해 '수도권 쏠림' 현상이 벌어질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수도권 소재 의과대학 교수는 "상대적으로 수도권은 복귀율이 조금 높을 가능성이 있고, 비수도권은 조금 낮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전공의들의 복귀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우세했다. 사직 전공의인 류옥하다씨(전 대전성모병원 인턴)는 "미복귀 전공의에게 행정처분을 하지 않는 것은 환영한다"며 "증원의 과학적 원점 재검토를 하지 않는 한 사직 전공의들이 돌아가기는 쉽지 않다"고 전했다.

또 다른 사직 전공의도 "사직서 수리 시점을 (전공의들의 이탈시기인) 2월로 하는 내용이 빠졌다"며 "3, 4년차 사직 전공의들에게는 '수련특례'가 이점이 될 수 있겠지만, 필수의료 수련을 포기한 전공의들에게는 별 이득이 없다"고 토로했다.

임춘학 고려대의료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은 "변한 것이 없다. 전공의들이 복귀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예측한다"며 "(전공의) 사직 처리건, (행정처분) 철회건 모두 혼란만 가중시키는 결과"라고 꼬집었다.

서울 소재 대학병원 외과 교수는 "전공의가 복귀할 이유가 없다"며 "정부의 (행정처분 철회를 전공의들이) 믿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실제로 지난달 정부가 전공의들에 대한 행정 명령 철회, 사직서 금지 명령 해제 등을 내놓았지만 전공의들의 복귀율은 미미하다. 지난 5일 기준 수련병원 211곳 전체 전공의 1만3756명 중 1092명(7.9%)만 출근 중이다.

한국유방암환우총연합회·한국환자단체연합회·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등 총 92개 환자단체 회원들이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열린 '의사 집단휴진 철회 및 재발방지법 제정 환자촉구대회'를 앞두고 피켓을 부착하고 있다. 2024.7.4/뉴스1 ⓒ News1 김진환 기자

일각에서는 의료공백, 행정처분에도 불구하고 병원을 지킨 전공의들과 형평성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조 장관은 "그동안 전공의들이 열악한 근무 환경에서 많은 고생을 했고, 앞으로 정부가 구축하려는 필수의료를 책임질 젊은 의사라는 점을 감안해서 정부가 비판을 각오하고 결정을 내리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환자단체는 수련특례 적용 등에 대해 환영하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전공의들이 많이 돌아오지 않을 것을 대비해 외국 의사 면허 소지자를 즉각 투입하는 방안을 강구해달라고 요청했다.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 한국다발골수종환우회 등 6개 단체가 모인 한국중증질환연합회는 전날 '정부의 전공의 구제 방안 발표에 대한 논평'을 내고 "정부가 전공의 복귀를 유인하기 위한 조치를 발표한 것은 고육지책으로 이해하고자 한다"며 "전공의 처우에 관한 제안을 적극적으로 환영한다"고 밝혔다.

이어 "외국의사면허를 가지고 있는 만큼 이들이 수련병원 교수 지시를 받아 일하기 때문에 오히려 전공의들보다 나은 진료도 가능하다"며 "향후 이들의 한국의사면허 자격시험은 국내 의대생들과 똑같이 한 차례 국가시험으로 치러 국내 의사카르텔을 혁파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도 같은날 입장문을 내고 "정부의 결정은 의사들의 집단행동에 대해 면죄부를 주는 나쁜 선례를 남길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되는 부분이 있지만, 수련체계의 연속성 등 환자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일 수 있다는 것 역시 인정한다"며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재발 방지 대책을 신속히 마련할 것을 촉구한다"고 했다.

rnki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