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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간 문자 폭탄 신촌 그 대학생…열받은 여친이 청부 살해

'카페 리더' 여친에 커뮤니티 중독 나무라며 이별 통보[사건속 오늘]
왕따당한 남친 문자로 분풀이…"쟤 죽여도 돼" 한마디에 해결사 등장

(서울=뉴스1) 신초롱 기자 | 2024-04-30 05:00 송고
2012년 4월 30일 신촌 공원 입구 계단을 비추는 CCTV 장면. (SBS '그것이 알고 싶다' 갈무리)
2012년 4월 30일 신촌 공원 입구 계단을 비추는 CCTV 장면. (SBS '그것이 알고 싶다' 갈무리)

꽃놀이가 한창이던 12년 전 오늘, 신촌의 한 공원에서 사람이 죽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수풀 사이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젊은 남자를 발견했다. 흉기에 수십 차례 찔린 피해자 주위에는 피가 흥건히 고여 있었다. 흘러나온 피는 굳지도 않은 상태였다.

피해자는 20세 대학생 김모 군이었다. 경찰은 공원 입구를 비추던 CCTV에서 사망 전 김 군의 모습을 찾아냈다. 영상에 따르면 김 군은 사망 신고 접수 30분 전인 오후 8시 15분쯤 일행 3명과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경찰은 김 군과 함께 가던 3명(남 2명·여 1)을 살인 사건 용의자로 특정하고 36시간 만에 검거했다. 용의자는 10~20대 학생들이었다. 이른 저녁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피해자, '사령 카페' 소속 여친과 심한 갈등→이별 통보

피해자 김 군은 사건 발생 2개월 전 블로그에 여자 친구와 함께하고 싶은 버킷 리스트를 올렸다. 그가 바랐던 건 '밴드에서 합주하면서 같이 노래 부르기' '놀이공원 함께 가기' '메신저로 1대 1 채팅하다가 그대로 잠들기' '산 정상에 올라 둘이 함께 소리 지르기' 등 소소한 행복이었다.
하지만 바람은 금세 산산조각 났다. 여자 친구 A 씨의 과한 커뮤니티 활동 때문이었다. A 씨는 주술, 마법, 빙의를 관심사로 한 '사령(死靈) 카페' 회원이었다. A 씨는 친한 회원들끼리 단톡방을 만들어 매일 연락을 주고받았다. 사령 카페 회원들은 리더격인 A 씨를 '마녀'라고 불렀고, 그의 글에 신도처럼 열광하기도 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갈무리)
(SBS '그것이 알고 싶다' 갈무리)

김 군은 커뮤니티 활동을 이해하지 못했다. 결국 두 사람은 크게 다툰 뒤 이별하게 된다. 대학생인 A 씨는 본인을 따르는 10대 남녀 동생들에게 "새벽에 걔한테 차였어. 이게 꿈이었으면 좋겠고 만우절 장난이었으면 좋겠는데"라며 결별 소식을 알렸다.

◇'단톡방 나가기' 분노한 김 군, 18일간 폭탄 문자 전송

B(15) 양은 "잘 끝났어. 이제야 하는 얘긴데 사실 언니 남친 평소에도 마음에 안 들었어"라고 했고, C(18) 군도 "맞아. 그 형 성격도 너무 독단적이고 우리 무시했잖아. 잘 헤어졌다"고 위로했다.

급기야 A 씨와 동생들은 김 군과 함께 있던 단톡방을 일제히 나왔다. 홀로 남겨진 김 군은 분노에 차 단톡방 멤버들에게 따로 문자를 보내기 시작했다. 18일에 걸쳐 그가 보낸 메시지는 수백 통에 달했다.

김 군이 보낸 문자 중에는 "어이없어라. 나도 너희처럼 더럽게 참을성 없는 새끼들 싫으니까 꺼져", "그러니까 누가 나 무시하랬냐고. 진심으로 사과해라"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전 여친 A 씨 "죽여도 돼" 말 한마디에 '해결사' 등장

김 군이 보낸 메시지는 단톡방에 공유됐다. 자신의 정체성까지 부정당한 듯한 기분에 화가 난 A 씨는 "쟤 좀 죽일 수 없냐? 저 OO 죽여도 돼"라고 말했다. A 씨는 "진심이냐"는 18세 남성의 물음에 "진심"이라고 답했다.

김 군이 단톡방 멤버들에게 보낸 문자 내용. (SBS '그것이 알고 싶다' 갈무리)
김 군이 단톡방 멤버들에게 보낸 문자 내용. (SBS '그것이 알고 싶다' 갈무리)

사건 발생 6일 전 A 씨는 "죽여 그냥. 슬퍼할 자 없어"라고 말했다. 또 "발밑에 엎드려서 발가락 하나하나에 입 맞추고 사과하고 찬양한 데도 절대 용서 안 해. 그 OO 면상 안 봐"라고 말했다.

이어 "복수는 칼같이. 주술과 부적으로 까고 발라줘. 못 믿으면 친히 보여줘야지. 부적 그딴 거 안 믿는 놈은 믿음을 깨부숴서 멘붕시키고 밟아줘야 뒤 탈이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같은 날 단톡방에 있던 B 양은 평소 알고 지내던 20대 남성에게 "내가 가위손 소녀 빙의해서 목 잘라버리고 싶은 OO가 있어"라고 했고, 남성은 "주소하고 번호만 있으면 소멸해 줄게"라고 답했다.

이후 C 군은 그에게 김 군의 주소를 보내며 처리해달라고 부탁했다. 20대 남성은 온라인상에서 '해결사'로 불리는 인물이었다. 그가 개입한 뒤 이들의 계획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청부살인 공범들, 공원 유인해 목 조른 뒤 40군데 찔러

사건 당일 범행의 발단이 된 A 씨는 현장에 없었다. 김 군은 A 씨에게 연락해 "너한테 화낼 일이 아니었는데 미안하다"며 사과했다. 사과를 받은 A 씨는 범행을 망설이는 듯한 메시지를 동생들에게 보냈다. 그는 "죽이면 안 된다는 기분이 들어. 나 때문에 죽는 것 같기도 하고. 그냥 환생을 못 하게 멸할까?"라고 말했다.

이에 C 군은 "세상엔 매일 3만 건의 살인 사건이 일어나. 3만 1건이라고 달라지는 건 없다"고 말했다. C 군도 김 군에게 사과 문자를 받았지만, 살해 계획을 굽히지 않았다.

김 군은 사과의 의미로 그래픽 카드를 선물로 주겠다고 C 군을 사건 당일 창천동의 공원으로 불러냈다. 약속된 시간이 되자 C 군은 해결사를 자처한 20대 대학생, B 양과 공원으로 향했다. 두 사람은 B 양이 망을 보는 사이 김 군을 공원으로 유인해 움직이지 못하게 한 뒤 목을 조른 상태로 40군데 이상을 흉기로 찔렀다.

 (E채널 '한 끗 차이: 사이코멘터리' 갈무리)
 (E채널 '한 끗 차이: 사이코멘터리' 갈무리)

해당 사건에는 군중심리가 크게 작용했다. 이는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에 앞서 다수가 맞는다고 하면 덩달아 그들이 하는 선택을 따라 하는 현상을 뜻하는데, 다수가 갖는 감정이 어떠냐에 따라 선하거나 반대로 작용하기도 한다.

뒤늦게 자신이 내뱉은 말이 끔찍한 비극으로 흘러가는 걸 깨달은 A 씨는 범행을 철회하려 했지만, 걷잡을 수 없이 커진 다수의 공격성을 막지 못했다. 결국 A 씨를 제외한 일행 3명은 의도와 목적도 없이 끔찍한 방법으로 김 군을 살해했다.

대법원은 A 씨를 방조 혐의로 징역 7년, B 양에게 장기 징역 12년·단기 징역 7년, 20대 남성(해결사) 징역 20년, C 군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rong@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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