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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공백 두달] 필수의료 살리려다 K-의료 위기…출구가 안 보인다

교수들 '번아웃·우울증 호소'…병원은 희망퇴직 진행, 휴업까지 고려
의료진 부족 진료거부 사례 이어져…사회적협의체 한가닥 희망

(서울=뉴스1) 강승지 기자 | 2024-04-19 05:00 송고 | 2024-04-19 09:22 최종수정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하는 전공의를 비롯한 의료계의 집단행동이 이어지고 있는 18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응급대원들이 환자를 이송하고 있다. 2024.4.18/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하는 전공의를 비롯한 의료계의 집단행동이 이어지고 있는 18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응급대원들이 환자를 이송하고 있다. 2024.4.18/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정부의 의대증원 방침에 반발해 전공의들이 사직서를 내고 근무지를 이탈한 지 19일이 두 달째 되는 날이다. 전국 221개 수련병원에서 환자를 돌보던 1만 2000여 명의 전공의들이 한꺼번에 병원을 이탈하면서 의료현장은 대혼란에 빠졌다.

의료공백이 장기화되면서 전공의가 빠진 자리를 지키던 의대 교수들도 지난달 25일부터 집단 사직서를 제출한 상태다. 제자인 전공의들이 의사 면허정지를 당하는 것을 방관할 수 없다는 명분이지만, 실상은 업무 가중에 따른 번아웃(체력소진)을 호소하고 있다.
의사들의 집단 이탈로 수술과 외래 진료가 대폭 축소되면서 병원은 경영난에 직면하고 있다. 붕괴 직전의 필수의료, 지역의료를 회복하기 위해 시동을 건 윤석열 정부의 의료개혁이 세계 최고로 자부하던 K-의료를 위기로 몰고 있다는 자조 섞인 한탄이 나온다. 그런데도 정부와 의료계는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보다 자존심 대결을 펼치고 있다.

정부는 지난 2월 6일 2025학년도 대학 입시부터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린다고 발표했다. 1998년 이후 27년 만에 의대 입학정원이 증원됐다. 2035년까지 의사를 1만 명 늘리고 이를 통해 환자들의 수도권 집중화를 막고 붕괴 직전의 지역 필수의료 회복을 위한 4대 의료개혁 패키지가 제시됐다. 대다수 국민이 의대증원을 지지했지만 의료계 반발은 상당히 거셌다. 전국의 전공의들은 진료 거부가 아니라 2월 19일 집단 사직서를 제출하는 것으로 불만을 표출했다.

수련생 신분이지만 당직 근무 등을 도맡던 전공의 1만여 명의 이탈로 병원들은 휘청였다. 전임의나 의대 교수들이 메꾸고 있지만 역부족이었다. 병원들은 진료와 입원환자를 절반 이상 줄이고 응급실 진료까지 일부 축소됐다. 

전공의 이탈로 의료공백이 장기화하면서 의료현장을 지키던 의대 교수들도 지쳐갔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가 지난달 주 52시간 근무를 발표하고 이달 1일부터 진료 일정을 조정하겠다고 했지만 이대로 일하는 교수는 극소수에 불과한 걸로 보인다. 각 의대 교수 비상대책위원회 등이 소속 교수들을 조사한 결과 70% 이상이 주 52시간 이상 근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의 의과대학 증원 방침으로 전국 의대 교수들의 사직이 이어지고 있는 3일 서울 시내의 한 대학병원에서 교수들이 사직서를 제출하고 있다. 2024.4.3/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정부의 의과대학 증원 방침으로 전국 의대 교수들의 사직이 이어지고 있는 3일 서울 시내의 한 대학병원에서 교수들이 사직서를 제출하고 있다. 2024.4.3/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예를 들어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의 설문조사 결과 52.3%는 높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으며 89.2%는 우울증이 의심됐다. 현장을 지키는 진료 보조(PA) 간호사들 역시 '번아웃'을 호소하고 있다.

빅5 병원의 한 교수는 뉴스1에 "60세 이하는 일주일에 2~3번, 61세 이상은 일주일에 한 번 당직을 서고 있는데 9주 차에 접어들면서 인간의 물리적인 한계를 뛰어넘고 있다"며 "정말 심각한 상황이다. 정부가 '눈 가리고 아웅' 식이 아니라 제발 현장을 보고 진짜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료와 입원환자 축소로 병원의 경영난은 심해지고 있다. 대한병원협회가 500병상 이상 수련병원 50개소의 최근 경영현황을 조사한 결과 2월 15일부터 3월 31일까지 의료수입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238억 원(15.9%)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병원 규모가 클수록 수입액 감소율이 높았다.

비상 경영체제를 가동한 서울아산병원은 이날(19일)까지 희망퇴직을 받고 있다. 지방의 경우 상황은 더 심각하다. 순천향대천안병원은 "지금의 자금난이 1개월만 더 지속되면 월급 지급이 늦어지는 건 물론 병원 휴업까지 검토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사태가 길어지면서 치료받을 병원을 찾아 헤매다가 목숨을 잃는 사례도 이어지고 있다. 경남 김해에 거주하는 60대 심장질환자가 인근 병원 6곳에서 수용 거부된 뒤 부산 한 병원에 옮겨졌으나 119 접수 6시간 만에 숨졌다.

지난달 26일에도 부산의 병원 15곳에서 거절당한 50대 남성이 대동맥박리 진단을 받고 응급수술을 위해 울산 소재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수술 후 사망한 사례가 발생했다. 각 사례에 조사가 진행된 가운데 의정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는 정부와 의료계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커지고 있다.

환자들은 정부와 국회를 향해 의료현장 정상화를 거듭 촉구하고 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국회에 의료진의 조속한 복귀를 위한 중재를 요청하고, 사태 재발 방지를 위한 입법 추진을 요구하기 위해 오는 5월 4일까지 국민동의청원을 진행 중이다.

이와 관련해 환자·시민단체가 참여하는 '사회적 협의체' 구성 논의에 속도가 붙고 있다. 정부는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워원회 구성 작업을 하고 있고 야당에서는 보건의료공론화특별위원회나 4자(민·의·당·정) 협의체를 만들어 사태의 해법을 찾자는 입장이다.

정부는 지난 8일 이후 11일 만인 이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을 재개한다. 이날 브리핑에서는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위에 대한 설명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의료개혁특위 위원은 정부와 의료계를 비롯해 환자 등 다양한 인사들을 포함해 약 20명 규모로 꾸려질 전망이다. 하지만 의대 증원 철회를 요구하는 대한의사협회, 대한전공의협의회의 참여 여부는 정해지지 않았다.



ks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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