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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터 '제왕의 도읍'이라는데…대통령은 왜 나가려 할까?[부동산백서]

청와대 터 고려시대 첫 등장…일제의해 맥 끊겼다가 되찾아
현대에 와서 소통 문제 불거져…풍수지리적으로 흉지라는 주장도

(서울=뉴스1) 금준혁 기자 | 2022-03-20 08:00 송고
사진은 17일 청와대와 윤석열 당선인의 집무실이 있는 종로구 통의동 금융감독원 연수원(아래) 모습. 2022.3.17/뉴스1 © News1 송원영 기자
사진은 17일 청와대와 윤석열 당선인의 집무실이 있는 종로구 통의동 금융감독원 연수원(아래) 모습. 2022.3.17/뉴스1 © News1 송원영 기자

'대통령 집무실'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뜨겁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집무실을 이전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인데요. 윤 당선인 측은 봄꽃이 지기 전에 청와대를 국민에게 돌려주겠다고까지 말한 상황입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청와대를 벗어나겠다고 말한 대통령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청와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은 부지에 지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진 분들이 많을 겁니다. 그렇다면 왜 좋은 부지를 두고 대통령은 청와대를 벗어나려고 할까요. 
◇천년 세월 견딘 청와대 터…현대사에서는 '수난'

청와대의 전신을 일제의 조선총독 관사와 경무대로 알고 있는 분들도 많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얘긴데요. 청와대 터를 어느 시점부터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등에 의하면 지금의 청와대 자리는 고려 남경(서울)의 이궁(수도 밖의 별궁)이 있던 곳입니다. 청와대 터에 처음으로 궁궐이 자리 잡은 시점인데요. 1067년에 고려 문종이 궁궐을 짓고 1104년에 고려 숙종이 천도 계획까지 세웠습니다.
당시 고려에는 삼각산 아래 지역이 제왕의 도읍이 될만하다는 내용의 지리도참설이 유행했고 남경으로 천도해야 한다는 주장은 고려 말, 조선 건국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후 태조 이성계가 이궁의 남쪽에 경복궁을 건립하고 세종이 경복궁의 북문 밖인 이 일대를 후원으로 지정하며 경무대라는 이름을 얻게 됩니다. 자연스레 과거시험, 무술대회 등이 열리는 곳으로 사용하게 되는데요.

안타깝게도 그 이후의 역사는 시련의 연속입니다. 1592년 임진왜란으로 경복궁이 폐허가 되며 일대는 270년 동안 방치됩니다.

또 고종이 경복궁을 중건하고 여러 건물을 세웠지만 일제에 의해 헐리고 조선총독의 관사가 건립됩니다. 풍수지리상 맥을 끊고 민족정기를 말살해 영원히 지배하겠다는 이유에서였는데요.

높은 곳에서 보면 청와대 터에 있던 총독 관사가 大(대), 청사는 日(일), 서울시청은 本(본)의 형상을 해 세 곳을 연결하면 대일본이 됩니다. 일제의 의도가 그대로 보이는 구성입니다.

광복 후에는 한동안 주한미군 사령관이 사용하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며 경무대라는 이름을 되찾고 대통령 집무실로 자리 잡습니다. 경무대는 윤보선 대통령이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 후에 이름을 바꾸며 지금의 청와대가 됐습니다.

참고로 역대 대통령의 집무실과 관저로 사용되던 구 청와대 건물은 1993년에 철거되고 지금의 푸른 기와 지붕을 가진 본관이 들어섰습니다.

◇문제는 국민 소통…美 백악관·英 다우닝가 따라갈까

지금도 청와대 터를 명당으로 봐야 하는지에 대한 의견은 엇갈립니다. 단순히 풍수지리적인 이유에서는 아닙니다.

윤 당선인의 경우 구중궁궐에 갇히지 않고 국민과 소통하겠다는 것이 집무실 이전의 가장 큰 명분입니다. 기존 청와대 집무실은 민심으로부터 동떨어져 있고 소통 부재를 유발했다는 지적입니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도 소통을 위해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열겠다고 공약을 내세웠다 여러 이유로 철회하고 여민관으로 집무실을 옮겼습니다. 김영삼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도 집무실 이전 공약을 내건 적이 있습니다.

공통적으로 기존 청와대 위치가 국민 소통에 불리하다는 지적이 나오는데요. 내부적으로는 대통령이 근무하는 본관과 참모가 있는 여민관이 떨어져 있어 접촉이 어렵고 외부적으로도 집무실이 국민 근처에 없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주요 국가 정상의 집무실은 시민과 가까이 있습니다. 미국의 백악관, 영국의 다우닝가 10번지 모두 업무공간이 밀집해있고 시민과 접점이 마련돼 있습니다.

풍수지리상 흉지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실제 유홍준 광화문대통령시대위원회 자문위원은 "풍수상 불길한 점이 있어 장기적으로 옮겨야 한다"고 하며 이를 공식적으로 언급한 바 있습니다. 

역사가 깊은 풍수지리를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효율성의 측면에서 접근하는 방식도 중요한 것으로 보이는데요.

결국 대통령 집무실이 명당으로 이름나려면 집무실의 주인도, 집무실의 위치도 '국민 소통'을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한다는 점은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해답인 것 같습니다.


rma1921kr@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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