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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살해 치매노인에 효용없는 '처벌' 대신 '치료' 택한 法

중증 60대男, 징역5년→집유5년간 전문병원 입원 명령
문제 해결에 초점 둔 '치료적 사법' 국내 첫 사례 주목

(서울=뉴스1) 박승주 기자 | 2020-02-10 16:55 송고 | 2020-02-10 18:18 최종수정
10일 경기 고양시 일산의 한 병원에서 아내를 살해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은 이모씨의 선고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은 재판을 시작하기 전 재판부와 피고인, 검사와 변호인의 모습/법원 기자단 제공 ©뉴스1
10일 경기 고양시 일산의 한 병원에서 아내를 살해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은 이모씨의 선고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은 재판을 시작하기 전 재판부와 피고인, 검사와 변호인의 모습/법원 기자단 제공 ©뉴스1

아내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60대 남성이 2심에서 징역형의 집행유예로 감형받았다.

살인죄가 인정된 사람에게 집행유예 선고는 흔치 않다. 하지만 법원은 '무엇이 올바른 처벌인가'보다 '무엇이 올바른 해결책인가'에 초점을 두고 이러한 판결을 내렸다.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정준영)는 10일 살인 혐의로 기소된 이모씨(68)에게 징역 5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다만 이 판결로 이씨가 '자유의 몸'이 되는 것은 아니며 집행유예 기간 보호관찰을 받으면서 치료를 이어나가라고 명령했다. 주거는 치매전문병원으로 제한됐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계속 치료를 받도록 하는 것이 '모든 국민이 인간으로서 존엄을 가진다'고 선언한 헌법과 조화를 이루는 것으로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이는 국내에서 최초로 알츠하이머 치매환자에 대한 '치료적 사법' 절차에 따른 판결이다. 치료적 사법은 1987년 미국 웩슬러의 연구에서 출발한 이래 캐나다, 영국, 호주, 뉴질랜드, 독일 등까지 확산됐다.
기존의 형사재판이 피고인 처벌을 목적으로 하는 데 반해, 치료적 사법은 피고인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번 사건의 경우에는 '살인죄'에 대한 처벌이 아닌 문제의 근원인 '치매'를 치료할 기회를 주고자 하는 것이라고 재판부는 설명했다.

범행 당시 이씨는 치매 등으로 인해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상태에 있었다. 이러한 상태는 범행 후 더 나빠져 구치소를 찾아온 딸에게 "왜 엄마와 같이 오지 않았냐"고 묻는 등 중증의 증상을 보이기도 했다.

피해자의 자녀들은 이씨의 선처를 바라면서 '치료를 받게 해달라'고 법원에 적극 탄원했고, 검사도 치료적 사법의 필요성에는 공감했다고 한다.

재판부는 "치료가 필요한 피고인에게 처벌을 해 형사재판 절차가 '효용이 없는 처벌'이 되는 현상을 막고자 했다"며 "형사사법이 범죄자와 피해자에게 치료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념이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판결을 내린 재판부는 '치유법원 프로그램'을 처음으로 시행한 재판부이기도 하다. 음주운전 뺑소니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30대 남성을 풀어주면서 '3달간 절대 금주'를 제안했고, 피고인이 약속을 지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절제력과 책임감을 키워 '범죄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지 않도록 한다는 점에서는 치료적 사법과 차이가 있지만, '문제 해결'을 지향한다는 점에서는 유사하다.

이번 이씨의 항소심 선고는 이씨의 상태 등을 고려해 그가 입원해있는 경기 고양시 소재 한 병원의 병동에서 진행됐다. 선고가 법정이 아닌 병원에서 진행되는 것도 전례를 찾기 힘들다.


parks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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