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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왜 남편을 죽이고도 징역 5년을 받았나

3년간 가정폭력 시달리다 우발적 범행…국민참여재판 신청
남편과 헤어지지 않은 이유는 "화목한 시댁식구 너무 좋았다"

(춘천=뉴스1) 홍성우 기자 | 2020-02-08 08:00 송고 | 2020-02-08 10:22 최종수정
© News1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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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이 없었어요. 살고 싶었어요."

지난해 9월 28일 새벽. 살인 혐의로 체포된 A씨(41)는 경찰 조사에서 ‘왜 사람을 죽였냐’는 질문에 이렇게 울면서 대답했다.
A씨는 이날 흉기로 남편 B씨의 가슴 부위를 찔러 살해한 후 경찰에 전화를 걸어 “사람을 죽였다”고 신고해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사건은 술을 먹다 다투던 중 벌어졌다. 둘이 앉아 술을 자주 먹던 부부는 이날도 여느 때처럼 술상을 폈다. 초반 분위기는 좋았다.

허기도 채울 겸 삶은 밤을 까면서 안주 삼았다. 그러던 중 알 수 없는 이유로 말다툼이 시작됐고 말다툼은 남편의 폭행으로 이어졌다.

폭행을 당한 A씨는 두 세 차례 비명을 질렀고, 2층 집안에서 난 비명은 1층 주인집까지 울려 퍼졌다. 그리고는 침묵이 흘렀다.
A씨는 경찰조사에서 말다툼 중 “찔러보라”는 남편의 도발에 화가나 밤을 까던 흉기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했다.

식당 종업원으로 일하던 A씨는 손님으로 온 B씨와 가깝게 지내다가 2016년 가을 무렵부터 사실혼 관계로 동거생활을 시작했다.

연애시절엔 보이지 않던 남편의 폭력성은 동거 3개월 만에 드러났다.

사건 보름 전에도 가정폭력으로 경찰이 출동했었다. 가정폭력 전과가 있었던 남편은 A씨에게 거짓 진술을 요구했고 A씨는 경찰에서 혼자 넘어져 다친 것이라며 남편의 말을 따랐다.

A씨는 남편에게 폭력을 당할 때면 극도의 불안감과 공포심으로 도망치곤 했다. 주머니에 돈이 있으면 여관을, 돈이 없으면 찜질방으로 몸을 피했다.

도망친 A씨는 며칠 후 남편으로부터 연락이 오면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반복된 가정폭력을 겪고 있었다.

경찰 프로파일러 심리 결과 A씨는 폭력으로 인한 우울증과 ‘매 맞는 여성 증후군’을 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춘천지법 국민참여재판 © News1 홍성우 기자
춘천지법 국민참여재판 © News1 홍성우 기자

재판에 넘겨진 A씨는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했고 춘천지법은 이를 받아들여 지난 6일 재판을 열었다.

A씨는 검찰 심문에서 “왜 폭력을 당하면서도 헤어지지 않았느냐”는 검사 질문에 “남편도 사랑했지만 화목한 시댁 식구들이 너무 좋았다”고 말했다. 사건 전날 밤에도 시댁식구들과 술도 먹으며 놀다 들어와 남편과 술상을 편 것이다.

A씨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의 이혼으로 외롭게 커온 탓에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화목한 가정은 자신의 꿈을 이루기에 더없이 좋았다.

A씨 변호인 측은 “A씨는 가정폭력에 시달려오다가 우발적으로 범죄를 저질렀다”며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싶어하는 A씨의 소박한 꿈이 조금이라도 앞당겨 질 수 있도록 선처를 호소했다.

반면 검찰은 살인의 고의가 있었고 과잉방위도 아니며 음주로 인한 심신미약 상태에서 범행을 저지른 것이 아니라며 징역 15년을 구형했다.

배심원 9명 중 5명은 징역 5년, 2명은 8년, 1명은 7년, 나머지 1명은 4년을 평결했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몸에 발생한 상처의 모양과 가격 부위·정도, 사건 직후 이뤄진 경찰 진술 등을 고려하면 고의를 인정할 수 있다. 또 당시 상황을 고려하면 일방적으로 공격을 당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은 것으로 보아 과잉방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지금까지도 유족에 대한 피해보상과 사과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다수 의견에 따라 징역 5년을 선고한다”고 판시했다.

A씨는 재판내내 쏟아지는 눈물과 아픔에 두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괴로워 했다.


hsw0120@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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