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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년 만에 벗은 누명'…여순사건 민간인 희생자 '무죄'(종합)

광주지법 순천지원, 재심재판서 "피고인 무죄" 선고
지역사회 "특별법 제정으로 진실규명·명예회복해야"

(순천=뉴스1) 지정운 기자 | 2020-01-20 17:42 송고
20일 오후 전남 순천시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에서 열린 여순사건 재심 선거공판에서 고(故) 장환봉씨에 대해 무죄가 선고된 가운데 고인의 부인 진점순씨(97·가운데)가 재심청구인인 딸 장경자씨(76·왼쪽).의 도움을 받아 재판 소감을 말하고 있다. 2020.1.20 /뉴스1 © News1 한산 기자
20일 오후 전남 순천시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에서 열린 여순사건 재심 선거공판에서 고(故) 장환봉씨에 대해 무죄가 선고된 가운데 고인의 부인 진점순씨(97·가운데)가 재심청구인인 딸 장경자씨(76·왼쪽).의 도움을 받아 재판 소감을 말하고 있다. 2020.1.20 /뉴스1 © News1 한산 기자

72년 전 여순사건 당시 희생된 민간인이 재심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으며 여순사건의 명예회복과 진실 규명을 향한 길이 열렸다.

광주지법 순천지원 제1형사부(부장판사 김정아)는 20일 내란과 국가문란 혐의로 기소된 故 장환봉씨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사건에 적용된 법조는 포고령 제2호 위반으로 포고령 2호의 내용은 적용 범위가 너무 광범위해 죄형법정주의에 위배된다"며 "형소법 제325호에 따라 범죄가 되지 않은 때에 해당해 무죄"라고 판단했다.

이어 "형법상 내란 부분에 대해 검찰은 재심 개시 결정 이후 공소사실 증명 자료를 제출하지 못했다"며 "증거가 제출돼도 불법 구금 이후에 제출된 자료로 증거능력을 상실했고 이 부분은 범죄사실의 증명이 없는 때에 해당해 무죄"라고 덧붙다.

그러면서 "장환봉에 대한 범죄사실은 범죄가 되지 않거나 범죄사실의 증명이 없는 때에 해당한다"며 무죄선고 이유를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선고 이유를 설명하던 김 부장판사는 "사법부 구성원으로서 이번 판결의 집행이 위법한 공권력에 의한 것이었음을 밝히며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하며 울먹였다.

이어 "70여 년이 지나서야 잘못됐다고 선언하게 되었는데, 더 일찍 명예로움을 선언하지 못한 것에 사과드린다"고 말해 방청석을 꽉 채운 시민 70여명의 박수를 받았다.

이번 재판에서 장환봉씨와 함께 피고인으로 이름이 오른 故 신태수, 故 이기신씨의 경우 두 사람의 재심청구인들이 각각 청구 결정이 확정되기 이전에 사망하면서 소송절차가 종료됐다.

1948년 10월 여순사건 당시 철도기관사이던 장씨는 여수 14연대 군인들이 순천에 도착한 후 이들에게 동조했다는 이유로 계엄군에 체포돼 22일 만에 처형됐다.

장씨의 딸(재심 청구인)은 아버지의 억울한 누명을 벗겠다며 재심을 청구, 대법원은 7년여 만인 지난해 3월21일 재심개시를 결정했고 한 달 후인 지난해 4월29일 광주지법 순천지원에서 첫 재판이 진행됐다.

검찰의 장씨에 대한 공소 요지는 '14연대 군인들이 전남 여수시 신월리 여수일대를 점령한 후 1948년 10월20일 오전 9시30분쯤 열차를 이용해 순천역에 도착하자 이들과 동조·합세해 순천읍 일원에서 국권을 배제하고 통치의 기본질서를 교란한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앞서 검찰은 지난해 12월23일 열린 결심공판에서 "장씨의 형법 제77조 내란죄 및 포고령 제2호 위반 국권 문란죄'에 대한 증거가 없다"며 무죄를 구형했다.

장씨의 무죄 선고에 지역 시민사회에서는 일제히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여순사건재심대책위원회는 이날 오후 2시40분쯤 광주지법 순천지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유족과 함께 고(故) 장환봉씨의 무죄 판결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대책위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1948년 당시 민간인에 대한 국법회의에서 유죄를 받은 사람은 최소 3000명에서 5000명에 이른다"며 "사법을 가장한 국가의 폭력에 신음해야 했던 사람들을 구제하는 일이 지역사회의 책무로 남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불법과 위법에 의해 학살된 여순사건 민간인 희생자들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특별법을 제정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이번 재판을 계기로 행정부와 입법부가 '여순사건 특별법'을 제정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여순민중항쟁전국연합회와 여순항쟁순천유족회도 이날 순천지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선고는 여순항쟁 중 돌아가신 희생자 영령의 죽음에 대한 무죄판결의 단초를 제공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철도공사는 장환봉씨에 대한 명예회복 과정을 실행해야 한다"며 "당시 군법회의 명령 제3호에 의해 돌아가신 분들의 억울한 죽음을 잊지 않고 추모할 공간과 위령탑 등을 국가와 지자체는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정부와 국회는 유족들과 지역민들에게 진정으로 사과하고 여순사건 특별법 제정으로 진상조사와 명예회복, 10월19일을 국가추념일로 지정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jwji@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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