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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철 열사 보내고 1년…아버지는 민주주의자가 되었다

故 박정기씨 아들 1주기 추모제 위해 썼던 자필편지
아들 이어 민주화운동 투신의지 담겨…33주기에 공개

(서울=뉴스1) 황덕현 기자 | 2020-01-13 17:30 송고 | 2020-01-13 17:31 최종수정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제공) © 뉴스1 DB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제공) © 뉴스1 DB

"기록이 있다면 종철이의 혼은 이 민족이 왜 민주화운동을 하여야 하며 사람 사는 세상이 돼야 한다고 왜처든(외친) 것인지 알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민주화 학생운동을 하다가 서울 용산구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 끌려갔다가 차가운 시신으로 돌아온 아들 앞에, 아버지는 한 자 한 자 글씨를 적었다. 부칠 수 없는 편지가 돼 봉인됐던 편지는 열사 서거 33주기를 맞이해 대중에 공개됐다. 날카로운 필체, 기개 서린 글씨는 먼저 떠난 열사의 혼과 꼭 닮았다.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고(故) 박정기씨의 자필 편지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박 열사 33주기를 하루 앞둔 13일 가족에게 기증받은 박씨의 일기 원문 가운데 일부인 '막내 제1주기를 기해 보내는 글'을 공개했다. 박씨의 일기 원문이 대중에 모습을 보이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 일기장은 박 열사가 숨진 해인 1987년 12월 20일부터 2006년 8월 11일까지 20년간 박씨가 직접 보고 느낀 것을 자필로 기록한 것이다. 6월 민주항쟁 이후 20년의 역사를 담고 있어서 사료로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이번에 공개된 부분은 1988년 박종철 열사 1주기 당시 부산대학교에 진행한 추모제를 위해 박씨가 작성한 추도사다. 추모제는 기일인 1월 14일과 가까운 1월 17일 일요일에 열렸지만, 추도사는 기일인 1월 14일 새벽 5시에 완성해 옮겨 쓴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박씨는 박 열사에게 "아들아 막내야 너가(네가) 이 세상 올 때 무얼 남겨놓코 갈려고 왔느냐"면서 아버지보다 먼저 떠난 아들에 대한 아쉬움을 담았다. 또 "'이 자리는 광주 5.18 주력 5적들이 설 자리지 왜 내가 여기서 더러운 너이(너희)들 앞에서 재판을 밨아야(받아야) 합니까' 라고 외치면서 원고 없는 논술을 터트리니 판,검사 안절부절 하는 것 아버지, 누나 똑똑히 봤다"며 재판에서 당당했던 박 열사의 모습을 회상하기도 했다.

박씨는 박 열사의 뒤를 이어 자신이 민주화 운동에 투신할 것과, 박 열사가 하늘에서 민주화 운동 동지들을 응원해줄 것을 함께 바랐다.

그는 "온 국민이 온 세계가 아시다십이(아시다시피) 민중이 민주화 데여(되어) 사람 사는 새상(세상)이 데야(돼야) 한다고 말하고 있으니. 지금도 차듸(차디) 찬 간방(감방)에서 동지들이 무서운 용기로 투쟁을 하고 있구나"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 아버지(박씨)까지 민주운동 자신 있다고 하는대(하는데) 걱정 말라고. 그 영혼들에게 열심히 달래다오. 너는 친구 사기는 데는 일가견 있짜아(있잖아). 앞장서서 그런 일 잘하지 않은냐(않느냐)”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고(故) 박정기씨(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제공) © 뉴스1 DB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고(故) 박정기씨(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제공) © 뉴스1 DB

2018년 박씨 별세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청천벽력 같은 아들의 비보를 듣는 순간부터 아버님은 아들을 대신해, 때로는 아들 이상으로 민주주의자로 사셨다"며 "박종철은 민주주의의 영원한 불꽃으로 기억될 것이고, 아버님 또한 깊은 족적을 남기셨다"고 추모하기도 했다. 박씨가 단순히 박 열사의 아버지가 아닌 민주화 운동가로서 삶을 산 점을 평가받는 지점이다.

문 대통령은 또 지난 2019년 6.10 민주화 항쟁 32주년 기념사에서 "박 열사와 이한열 열사, 평생 아들의 한을 풀기 위해 애쓰다 돌아가신 박정기 아버님께 달라진 대공분실을 꼭 보여드리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2018년 7월28일 아버님이 세상을 떠난 뒤 가족들이 일기장을 사업회에 기증했다"며"옛 남영동 대공분실 터에 올해 말 착공해 2022년 하반기에 개관 예정인 민주인권기념관 건립에 있어 소중한 사료로 사용되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ac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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