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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애증의 아이콘'…윤석민, 정상에서 먹튀 전락·은퇴까지

2011년 투수 4관왕→2014년 ML 진출→2019년 은퇴

(서울=뉴스1) 정명의 기자 | 2019-12-13 18:38 송고
KIA 타이거즈의 에이스였던 윤석민이 은퇴를 선언했다. /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KIA 타이거즈 '애증의 아이콘' 윤석민(33)이 유니폼을 벗는다. 그의 굴곡진 야구인생에 마침표가 찍혔다.

KIA는 13일 윤석민의 은퇴 사실을 발표했다. 윤석민의 은퇴 의사를 구단이 수락했다. 윤석민은 "후배들에게 기회가 가길 바란다"며 은퇴 선언의 배경을 알렸다.

2005년 프로에 데뷔해 14년만에 마운드를 떠나게 된 윤석민이다. 데뷔 초기 유망주로 큰 기대를 받다 팀의 에이스로 우뚝섰고, 메이저리그 진출에도 성공했으나 끝내 'FA 먹튀'라는 불명예 속에 은퇴하게 됐다.

윤석민은 KIA의 암흑기에 데뷔해 조금씩 성장해 나갔다. 2007년 평균자책점 3.78의 준수한 성적을 내고도 리그 최다인 18패를 떠안으며 주목받았고, 2008년에는 14승5패 평균자책점 2.33(1위)으로 최고의 투수 반열에 올랐다.

2009년 KIA의 통합우승에 일조한 윤석민. 그의 전성기는 2011년이었다. 그 해 17승5패 평균자책점 2.45 178탈삼진으로 승률(0.773) 포함 '4관왕'을 차지했다. 이는 선동열 전 대표팀 감독과 함께 윤석민만 갖고 있는 대기록이다.

국가대표로도 윤석민은 맹활약했다. 대체 선수로 발탁된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마운드의 중심축으로 9전 전승 금메달에 크게 공헌했다. 또한 2009년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준우승,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 획득 때도 대표팀 마운드를 지켰다.

소속팀, 대표팀에서 헌신적으로 활약한 대가는 FA라는 달콤한 열매로 돌아왔다. 2013년을 끝으로 FA 자격을 획득한 윤석민은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계약하며 메이저리거의 꿈에 다가갔다. 그러나 빅리그 마운드를 밟지 못한 채 마이너리그에서만 뛰다 한 시즌만에 KBO리그로 유턴했다.

메이저리그 데뷔에 실패했지만 금전적으로는 나쁠 것이 없었다. KIA가 돌아온 에이스에게 4년 90억원이라는 대박 FA 계약을 안긴 것. 윤석민도 FA 계약 첫 해였던 2015년 팀 사정에 따라 마무리 투수로 활약하며 30세이브를 수확해 '몸값'을 해냈다.

하지만 2015년이 '팔팔한 윤석민'의 마지막이었다. 2016년 16경기 등판을 끝으로 재활에 돌입했고, 2018년 복귀했으나 다시 2019년 시즌을 통째로 날렸다. 고질적인 어깨 부상이 윤석민을 괴롭혔다. 결국 윤석민의 어깨가 그의 현역 생활을 끝냈다.

KIA 타이거즈의 에이스였던 윤석민이 은퇴를 선언했다./뉴스1 © News1 황희규 기자

윤석민을 '먹튀'라고 부르는 야구팬들도 많다. 90억원 계약 이후 기대만큼의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 그러나 KIA 팬들 중에는 '암흑기를 버텨낸 에이스'로 윤석민을 기억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윤석민은 "팬들의 넘치는 사랑을 받았지만 보답하지 못한 것 같아 죄송한 마음뿐"이라며 "앞으로도 팬 여러분이 보내주신 사랑을 가슴에 새기고 살겠다"고 팬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doctorj@news1.kr